본문 바로가기

[크리틱]

[2016 SIWFF 미리보기] 새로운 물결


여행, 떠나는 떠나지 않는



여행의 뜻을 찾아보면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객지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나온다. 한자 '여행 旅行'은 '나그네로 떠돌거나 다니는 행위'를 말한다. 여행은 관광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용되지만 둘을 굳이 구분하자면 '관광'은 '경치나 풍물을 보면서 즐기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관광은 여행에 포함된 한 종류라고 할 수 있고, 여행은 관광처럼 여가 활동이나 즐기는 행위로 국한되지도 않는 더 큰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인생은 여행이다'라고는 하지만 '인생은 관광이다'라고는 하지 않듯이 말이다. 한편 떠나는 행동 자체를 여행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상당히 광범한 행동을 포함할 수 있는 데, 일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지금의 시공간을 이동하는 모든 떠돎과 그 행동이 일으킨 정동까지 포함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리어스 게임 A Serious Game>(페닐라 오거스트, 2016,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 <홍콩은 언제나 내일 Already Tomorrow in Hong Kong>(에밀리 팅, 2015, 홍콩•미국)

들뢰즈는 영화 평론가인 세르주 다네에게 '낙관, 비관, 그리고 여행' 이라는 편지를 보낸 바 있는 데 그는 이 편지에서 여행의 몇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하나는 공간을 떠나는 우주여행일지라도 그것이 유년의 추억이나 일상적인 대화를 유지하는 한 일상과는 완전한 '결별'이 아닌, 결별이 될 수 없는 여행의 유형이다. 두 번째 여행은 방랑적 이상을 쫓지만 그 이상을 결코 채우지 못한 채 끝나 버리는 유형의 여행이다. 즉 뭔가 새로운 것을, 자신이 이전과는 달라질 것을 기대하며 떠나지만 그 기대는 기대로만 끝나는 그런 유형의 여행일 것이다.

 

 

<화장 여행 Burn Burn Burn>(차냐 버튼, 2015, 영국) / <바다의 뚜껑 There is No Lid on the Sea>(토요시마 케이스케, 2015, 일본)

 

세 번째는 확인을 하러 떠나는 여행이다. '영혼으로부터, 꿈 혹은 악몽으로부터 나온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확인하러 가는' 그런 여행이 이에 속한다. 형언할 수 없는 초록 광선이라든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자연과 대기가 진짜로 존재하는지 알아보러 가는 것이다. 들뢰즈는 프루스트를 인용하면서 '진정한 몽상가는 무엇인가 확인하러 가는 자' 라고 말한다.

들뢰즈는 여기에 덧붙여 네 번째 여행의 유형을 명확치는 않지만 덧붙이는 것 같다. 영화가 창조한 이미지이기에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미지가 보존하고 있을 뿐인 미와 사유를 확인'하러 떠나는 여행이 그것이다(그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난>에서 깃발을 펄럭이게 한 바람이 실제 현실에서 부는 바람이 아니라 풍력 발전기에서 나오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예로 든다).

 

 

<휴일 Ferien(Holiday)>(버나뎃 놀러, 2016, 독일) / <고려아리랑:천산의 디바 Sound of Nomad:Koryo Arirang>(김정, 2016, 한국)

 

그러나 동시에 들뢰즈는 위의 여행자와는 정반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가 여행자 즉 나그네 혹은 방랑자(Vegabond) 라고 말한다. 척박하고 헐벗은 땅에서 불안정하고 위험한 삶을 영위하기에 그 삶이 곧 방랑자의 삶이 될 터이다.

 

 

 

<체로노빌의 할머니들 The Babushkas of Chernobyl>(앤 보거트, 2015, 우크라이나•미국) / <후쿠시마 내 사랑 Fukushima, Mon Amour>(도리스 되리, 2016, 독일)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노마드처럼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여성 여행자들과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이라는 척박한 땅에 머무르려는 '방랑자'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는 이미지로의 여행을 떠나면서 그 여행의 이유를 각자 물어보면 어떨까.

 

 

 

 

글: 김선아 (집행위원장 / 수석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