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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2016 SIWFF 미리보기] 프랑스 여성영화 120년




프랑스 여성영화 120년, 1896-2016


-   알리스 기-블라쉐에서 뉴 제너레이션까지   - 







세계 최초로 극영화를 만든 감독은 누구일까?


① 뤼미에르 형제   ② 토머스 에디슨   ③ 조르주 멜리에스   ④ 알리스 기-블라쉐   ⑤ 에드윈 포터





아마 영화사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이들은 조르주 멜리에스나 에드윈 포터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세계 영화사를 다룬 다수의 서적에서도 조르주 멜리에스를 세계 최초로 극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기술하고 있다(참고로 뤼미에르 형제는 세계 최초로 [극장을 위해] 영화를 제작·상영한 감독이다). 물론 초기 영화 시기에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짧은 기간에 수많은 혁신이 일어났기 때문에 최초를 가리는 질문이 큰 의미가 없거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이 질문의 좀 더 정확한 답은 '④ 알리스 기-블라쉐'이다. 대중에게 영화를 공개한 것은 멜리에스가 먼저일 지라도, 세계 최초로 극영화를 제작 감독한 것은 분명 알리스 기-블라쉐(1873-1968)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영화를 전공한 이들에게도 알리스 기-블라쉐의 이름은 낯설다. 영화 탄생부터 여러 단계에서 벌어진 영화계의 고질적인 여성 차별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스튜디오인 고몽은 자신들이 제작한 초기 영화의 카탈로그 작업을 하면서 영화 스튜디오를 세우고 진두지휘 했던 기-블라쉐의 이름을 빠트리거나 지웠으며(현재는 모두 복권되었다), 남성중심적인 영화사 연구자들은 초기 영화에 큰 기여를 했던 기-블라쉐의 업적을 완전히 무시하고 생략해 버렸다. 기-블라쉐 역시 뤼미에르 형제와 멜리에스처럼 프랑스인이며, 고몽에서 영화제작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기-블라쉐에 대한 연구와 역사기술이 미진한 것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제외하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편향된 역사쓰기에 대한 보완은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씨네페미니스트 영화학자들과 영화사가들이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지워졌던 여성영화 선구자들을 발굴하고 역사 다시 쓰기 작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는 부족하고, 일반적인 영화의 역사를 다루는 정보나 서적들은 기-블라쉐를 적절히 기술하고 있지 않다. 2016년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6.2.~6.8.)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프랑스 여성영화 120년, 1896-2016: 알리스 기-블라쉐에서 뉴 제너레이션까지"를 통해 프랑스의 첫 여성감독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감독이었던 1896년의 알리스 기-블라쉐부터 2016년 동시대 영화감독들까지 풍부하고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프랑스 여성영화를 감상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갖는다. 특히 초기 프랑스 여성영화에서 기-블라쉐의 영화뿐만 아니라 20년대 실험영화 감독 제르멘느 뒬락의 페미니스트 영화 <미소짓는 마담 보데>(1922), 4-50년대 프랑스에서 장편 극영화 여성감독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던 재클린 오드리의 프랑스판 <제복을 입은 처녀>(독일, 1958)라 할 수 있는 <올리비아>(1951)를 국내 최초로 자랑스럽게 선보인다. 무성영화인 기-블라쉐의 영화와 <미소짓는 마담 보데>는 피아노 라이브 연주(!)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미소짓는 마담 보데>(1922)


 


<올리비아>(1951)




여성영화의 선구자, 알리스 기-블라쉐


1895년 당시 이미 사진 카메라 개발 및 제작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고몽영화사에서 타이피스트 겸 비서로 일하던 21세의 알리스 기-블라쉐는 사장인 레옹 고몽과 친분이 깊던 뤼미에르 형제의 V.I.P. 시사회에 초청되어 누구보다 먼저 세계 최초의 영화를 감상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뤼미에르 형제나 고몽과는 달리, 영화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체에서 본 기-블라쉐는 영화를 보고 오자마자 그다지 내켜하지 않던 고몽 사장을 설득해 1896년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고몽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당시 사운드 싱크가 가능한 카메라와 영사기 발명에 더 몰두하고 있었으며, 영화제작 그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영화를 제작해도 좋다는 허가 외에 회사에서 다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기-블라쉐는 제작과정을 모두 책임지고, 제작자, 감독, 각본, 미술의 역할을 직접 수행해야 했다. 심지어 비서업무에 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약속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세계 최초의 극영화가 제작된다. 양배추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유럽 민담을 극화한 1분 짜리 영화로, 제목은 <양배추 요정 The Cabbage Fairy>(1896)이었다.

  

이후 영화가 크게 인기를 얻자 고몽은 1897년 본격적으로 영화제작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이미 영화에 대한 열정과 노하우를 갖고 있던 기-블라쉐를 총괄 제작자(head of studio)로 임명했다. 기-블라쉐는 여전히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1907년 고몽 미국지사 대표로 발령 나기 전까지 고몽 스튜디오를 총괄하게 된다. 이 당시 제작된 고몽의 영화는 거의 모두 기-블라쉐의 손을 거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최첨단의 기술을 앞장서 활용하고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적용했다. 이러한 면은 영화에서 여성들이 '감정은 잘 다루나 최신 기술을 다루는 면이 부족하다'는 남성들의 지적이 실제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풍부한 이야기와 화려한 시청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던 제작자답게 크로노폰 사운드 싱크 시스템(Chronophone system, 유성영화 제작을 위해 개발된 고몽의 사운드 시스템으로 기-블라쉐는 이 시스템으로 뮤직 비디오를 비롯 100여편 이상의 사운드 싱크 영화를 제작), 칼라 틴팅(필름 프레임에 직접 색칠을 해서 칼라 영화를 만드는 기법), 다인종 캐스팅(기-블라쉐는 조역 전원에 흑인이 출연하는 영화를 세계 최초로 제작한 바 있다), 다양한 특수효과를 직접 실험(기-블라쉐는 이중인화superimposition 기법을 처음으로 사용한 감독이다)하며 영화의 미래를 가늠하고 선도해 나갔다.



크로노폰 시스템을 활용해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 지휘를 하고 있는 알리스 기-블라쉐

 


또한 당시 대표적 제작자였던 뤼미에르, 멜리에스, 포터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코미디, 트릭, 판타지, 슬랩스틱, 서부극, 추리수사물, 멜로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종교영화, 역사극, 여행기,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기-블라쉐는 초창기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뤼미에르의 <물 뿌리는 사람> 같은 코믹 상황극이나 마술사가 등장하는 멜리에스의 트릭 영화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일한 반복은 아니었으며, 그녀는 여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기-블라쉐는 트릭 영화에서 멜리에스와 달리 마술사로 여성을 등장시키거나, 마술 소재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혹은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변신을 자주 사용했다. 기-블라쉐가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져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는 여성으로서 많은 영화들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으며, 여성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와 경험을 각본에 녹여냈다. 그녀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여성 감독이 당연하게 여성주의적 주제를 소화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기-블라쉐의 어떤 작품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심지어 반여성주의로 독해될 수도 있다), 세상의 반이 여성인 세계에서 왜 여성 감독이 필요한지를 체득하게 된다. 그녀의 영화는 유행에서 최첨단의 길을 가면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 당대의 남성 감독들과는 미묘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그녀의 영화에는 19세기말 20세기 초 근대화 시기의 뜨거운 화제였던 신기술과 발명품에 대한 묘사와 풍자 뿐만 아니라 성과 계급, 인종에 대한 인식의 급진적 변화가 어떻게 근대적 주체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했는지가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몇몇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임신과 출산을 관장하는 양배추 요정 시리즈    

<양배추 요정>(1896)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상류층을 위한 산파 Midwife to the Upper Class>(1902)에서는 젊은 부부가 양배추 요정에게 아이를 구매하러 온다. 비약일 수 있지만 이러한 묘사는 인공자궁과 공동체 양육을 주장했던 1960년대의 페미니스트 학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나 유전자를 디자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를 만드는 SF의 19세기말 판타지 버전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 계급과 인종 문제가 끼어든다. 젊은 부부(남장을 한 여배우가 남편 역할을 한다)는 상류층에 걸맞는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 아기를 고르고 또 고른다. 양배추 요정은 각기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양배추에서 꺼내 보여주지만 부부는 유색인종인 아이를 극렬하게 거부하고, 백인 아이를 선택한다. 이 영화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매혹적인 모더니즘적 상상력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인종차별주의적 관점을 내비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당시 여성들의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와 계급과 인종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그 밖에 <식탐 Madame Has Her Cravings>(1906)은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갖게 된 임신부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야외 거리에서 촬영한 <식탐>은 엄청난 식욕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액션 편집과 클로즈업을 거침없이 활용한다. 그녀는 결국 양배추 밭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식탐>은 임신으로 인한 여성의 몸의 변화를 유쾌하고 활기차게 보여준 놀라운 작품이다.

 

좌. <양배추요정>/우. <식탐>



 - 강한 여성과 페미니즘    

기-블라쉐의 영화에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다. 그리고 그 여성들은 대부분 적극적이고 강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히로인>(1907)은 4살의 소녀가 숨은 영웅이 되어 경찰을 포함해 온 동네 사람들을 돕고 다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적인 신여성을 마냥 옹호하지만은 않는다. <페미니즘의 결과 The Result of Feminism>(1906)는 폐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과 남성의 역할 및 위상이 뒤바뀐 가상 세계를 그린다. 그 결과는 일종의 미러링이다. 육아와 가사일에 지친 남성들과 대비되어 여성들은 남성 출입이 금지된 여성전용클럽에서 담배를 피고 담화를 나누며 놀고 있다. 영화에서 과장되게 그려진 페미니즘은 근대의 새로운 발명품 중 하나로써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억압에 결국 저항하며 봉기하는 남성들을 보았을 때 이 영화는 현실의 성적 불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되기도 한다. 미국으로 이주해 만든 <미국시민 되기 Making an American Citizen>(1912)는 동유럽 혹은 러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이반 오를로프라는 남자가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아내에 대한 상습적인 폭력과 학대를 교정받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의 '야만 대 문명'이라는 대비는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 여전히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구시대적 이반은 현대적 문명인인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 인종적 편견 및 미국중심주의와 페미니즘이 묘하게 뒤섞인 이 영화는 당시의 여러 이데올로기가 결합된 복잡한 텍스트이다.

 

 - 크로스드레싱과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싱과 트랜스젠더는 기-블라쉐의 중요한 작가적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트릭영화에서 남성-여성 성전환을 마술의 소재로 삼고 부부의 등장이나 구애댄스에서 남성 역할에 남자배우가 아닌 남장한 여배우를 캐스팅 했다. 미국에서 제작한 잠입수사를 하는 수사관들의 고충을 다룬 코미디, <헨더슨 경관>(1912)에서는 헨더슨의 여장이 너무 완벽한 나머지 여러 오해를 받는 상황을 그린다. 영화 스크린 속 최초의 게이 캐릭터로 알려진 <광부, 알지>(1912)는 너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의 부모에게서 결혼을 허락받지 못한 알지가 '남성다움'을 배우기 위해 광산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에서 알지는 마초스러운 광부를 만나고 우연히 그를 도와주면서 남성다움을 발휘한다. 이 영화의 서브텍스트에는 선명한 게이 브로맨스가 흐르고 있다. 젠더 및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자의식이 근대의 주체를 세우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기-블라쉐는 여성으로서 이 영화들에서 예민하게 포착한다.

 

남장 여자배우들


 - 계급    

계급 역시 기-블라쉐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그중 <상류층을 위한 산파>, <사랑의 위계 The Hierarchies of Love>(1906), <우표 붙이는 여자 A Sticky Woman>(1906), <바리케이드 앞에서 On the Barricade>(1907), <파업 The Strike>(1912), <쪼개진 집 A House Divided>(1913)은 직접적으로 계급의 문제를 극화한다. <사랑의 위계>에서는 군인인 남자와 한 여자가 데이트 하던 중 지위가 더 높은 또 다른 군인을 만나게 되고, 그 남성이 이 여성을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장군까지 계속 지위가 높은 군인들을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물건처럼 이 남자에게서 저 남자로 넘겨지게 된다. <우표 붙이는 여자>는 주인과 우체국에 간 하녀에게 생긴 코믹한 상황을 묘사한다. 엄청난 우편물을 처리해야 하는 주인은 하녀의 혀를 길게 빼놓고 우표에 침을 묻힌다. 층층이 쌓인 오해로 부부싸움을 하게 된 중산층 젊은 부부를 그린 <쪼개진 집>에선 고전 할리우드 멜로드라마가 집의 미장센을 통해 성적, 사회적 갈등을 표현했던 것처럼 집 내부가 성별과 계급에 따라 어떻게 구획되는지를 보여준다. 임신, 연애, 가족 등 사적인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미묘한 계급문제의 표현은 기-블라쉐의 정교하고 세련된 코미디 연출에서 빛을 발한다.

 

<우표 붙이는 여자>


 - 신기술과 과학에 대한 풍자    

신기술과 과학은 초기영화의 중요한 소재이자 풍자대상이었다. 최초의 SF 영화라 칭해지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을 봐라. 여기서 우주여행을 계획하는 과학자들은 그저 선망의 대상은 아니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는 이들로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술과 과학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당시의 장르적 클리셰였다고 할 수 있다. 기-블라쉐 역시 그러한 태도를 취한다. '홈즈 시리즈'에서 홈즈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얼굴을 단장하고 밥을 먹지만 안하니만 못하게 되거나 발자국과 머리카락 등을 채취하는 식으로 과학적 수사를 하지만 감정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범인을 지목하게 된다. 기-블라쉐는 초기 작품에서 신체를 절단해 재조립하는 의료기술과 물과 기름으로 모자와 소시지를 생산하는 만물자동기계를 소개하며 과학과 마술 간의 경계를 흐린다. 하지만 이후에 제작된 오 헨리 소설의 각색물 <마지막 잎새 Falling Leaves>(1912)에서 아픈 소녀를 최종적으로 구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붙인 잎새가 아니라 언니에게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떨어진 나뭇잎을 나뭇가지에 붙이고 있던 소녀에게 감명을 받은 병리학자가 처방해준 신약이다.

 

<마지막 잎새>


 - 슬랩스틱 액션과 추리물   

코믹 액션과 추리물은 기-블라쉐의 카메라와 편집기술이 돋보이는 장르였다. <통 굴리기>, <움직이는 침대>, <안락의자에 앉은 소녀> 등은 기-블라쉐의 다이나믹한 액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들 중 하나다.

 


솔랙스 스튜디오


기-블라쉐는 1907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고몽 미국 지사의 대표를 맡았다가 독립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솔랙스'라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장편을 포함해 1000여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한다. 그러나 남편의 재정관리 실패로 '솔랙스'가 파산한 후 기-블라쉐는 영화사에서 잊혀진다. 그녀는 1953년 프랑스에서 레종 도뇌르를 수상하고 프랑스 시네마테크에서 기념전을 열기도 했지만 언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했다. 사실 초기 영화 시기 활발한 활약을 보였음에도 이같은 대우를 받은 여성 감독/제작자는 기-블라쉐 뿐이 아니었다. 미국 무성영화 시대에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로이스 웨버를 비롯해서 독일, 스웨덴 등 선구자의 길을 걸었던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성들의 이야기는 잘 들려지지 않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의 기-블라쉐 작품의 상영과 연구는 그 이야기의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동시대 프랑스 영화를 이끄는 뉴 제너레이션 

 

그밖에 이번 특별전에서는 화려한 프랑스 여성영화사를 잇는 뉴웨이브의 기수, 아네스 바르다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6)에서 동시대 프랑스 영화에서 중요한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는 80년대 생 여성감독들까지, 프랑스 여성영화의 독창적이고 다채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가능한 기존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에서 많이 소개되었거나 정식 개봉한 영화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작가와 작품들을 발굴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클레어 드니, 카트린드 브레야, 마그리트 뒤라스, 델핀 세리그, 위르실라 메이에나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1985)의 콜린 세로의 계보에 속하는 도미니크 카브레라, 앤 폰태인, 니콜라스 가르시아, 엠마누엘 베르코, 줄리 델피, 상드린 베이세, 아네스 자우이, 또 다른 뉴 제너레이션 감독인 노에미 르보브스키, 발레리 돈젤리 그리고 셀린 시아마는 이미 상당수의 작품이 개봉되었거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깊이 있게 소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특별전에서는 제외했다(위의 목록 중 앞의 감독들은 작가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감독들이고, 뒤의 감독들은 작가 영화와 블록버스터 사이에 위치한 중간 규모의 영화에 특화된 여성감독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들을 가리켜 '중간 영화 films du milieu'라 부른다.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클레어 시몽과 솔베이그 안스파치의 영화들이 여기에 속하는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셀린 시아마는 퀴어와 소수인종을 주로 소재로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녀의 영화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모두 상영된 바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 보게 될 동시대 여성영화는 미아 한센-로브의 신작이자 베를린 감독상 수상작 <다가오는 것들>(2016, 미아 한센-로브는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발레리 돈젤리, 노에미 르보브스키 등과 더불어 현재 프랑스 영화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뉴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감독이다)을 비롯해 배우이자 감독인 멜라니 로랑의 <숨 막히는 Breathe>(2014, 배우와 감독을 겸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은 프랑스 여성영화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고가며 프랑스 특유의 철학적 태도로 사회 문제를 성찰하는 클레어 시몽의 신작 <숲이 이룬 꿈 The Woods Dreams Are Made of>(2015), 반항적인 청소녀 레아 세이두를 볼 수 있는 <디어 프루던스Dear Prudence>(레베카 즐로토브스키, 2010), 아이슬란드 출신이면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솔베이그 안스파치의 <룰루의 일탈 Lulu in Nude>(2014, 정체성의 위기를 맞은 여성들을 따듯하고 코믹하게 풀어 냈던 안스파치 감독은 안타깝게도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떴다), 프랑스 여성감독들의 소중한 인터뷰와 역사를 담은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시네아스트 Cinéast(e)s>(2014) 등이 상영된다.


또한 여성영화제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끄레테이유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제키 뷔에와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학자인 주느비에브 셀리에 교수가 패널로 참여해 프랑스 여성영화에 대한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며, 이번 특별전의 상영작을 포함해 그밖의 중요한 작품, 감독, 주제에 대해 프랑스의 대표적 영화 평론가와 학자들이 직접  쓴 평론과 논문을 담은 동명의 책이 출판될 예정이다. 이번 특별전은 영화상영 뿐만 아니라 공연, 포럼, 출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니 한껏 감상하고 놀고 배우며 프랑스의 분위기에 빠져 보시길 바란다. 

 

이 영화들과 이벤트들을 통해 여러분은 당신이 알지 못했던 영화사와 세계영화를 이끌고 있는 뛰어난 동시대의 프랑스 여성감독들, 그리고 프랑스의 색다른 면모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조혜영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