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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INTERVIEW] 한국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 시안 미첼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

시안 미첼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막을 내린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영화와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여성주의적 영화제작과 관람에 대한 깊은 대화가 이어지는 풍경을 내내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장편경쟁부문은 국내 여성 감독들이 만든 장편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경합의 장으로, 올해 본선에 오른 7편의 영화에는 극, 다큐멘터리, 실험 등이 고루 포함되었다. 또 이번 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여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를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각국의 연구자와 비평가, 활동가가 모여 남성 중심적으로 쓰인 영화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여성주의적 영화사 쓰기에 대한 실천의 언어를 나누기 위해 기획된 자리였다. 영화제를 갈무리하며 한국장편경쟁 부문 심사위원이자 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한 시안 미첼(Sian Mitchell)을 만났다.

 

 

8일간의 영화제가 끝난다. 영화 관람과 행사 참석 등 다양한 활동을 했을 텐데, 전반적으로 어떤 경험이었는지 궁금하다. 또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놀라운 경험이었다. 한국영화 특히 여성영화와 그 역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많이 배워갈 기회가 되었다. 한국 여성영화인의 관심사와 관점을 통해 동시대 한국의 문화와 여성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특히 화요일에 참석했던 국제 학술회의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영화비평가, 연구자들의 견해에서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은 멜버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영화제에 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멜버른여성영화제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영화제다. 내년이면 4회를 맞는다. 페미니즘에 관한 학술적 견해와 더불어 호주의 여성 감독들의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여성영화인, 특히 여성 감독의 수가 적고 스크린 안팎으로 남성 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러한 안건을 강조하고 끌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기 때문에 영화제를 만들게 되었다. 여성 감독들의 영화를 보여주고 영화계 내에서 여성 영화인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올해의 멜버른여성영화제는 어땠나.

아주 성공적이었다. (웃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보다는 작은 규모로 4일간 개최됐다. 처음에는 2일간의 영화제로 시작해서 벌써 두 배가 된 거다. 관객들이 놀라운 힘을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단편 부문 등 다양한 섹션을 만들었고, 영화 상영을 포함 워크숍이나 토론의 장도 마련했다. 또한 학생영화까지 포함하고 있어, 여성들 간의 연대와 지지를 통해 빠르게 성장 중이다.

 

 

영화제는 프로그래밍부터 소통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 행사다. 여성영화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내부적, 외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부적으로는 영화제의 목적에 공감하고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팀을 꾸리고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적으로는 산업적 지원이 중요하다. 멜버른 시에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영화제 개최가 가능했다. 영화계 내에서 여성영화라는 주제로 영향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그런 내외부적 요소가 모두 큰 역할을 한다. 어려움은 역시 지원금을 확보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지금은 여러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가며 진행 중인데,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만큼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다.

 

 

9월 3일 화요일엔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국제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은 ‘한국 영화 100년: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Korean Film 100 Years: Rewriting Film History from the Feminist Perspective)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어떤 자리였고, 당신은 어떤 이야기로 토론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정말 흥미로운 주제의 내용들이 발제되었다. 특히 동아시아와 한국의 상황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까 언급했듯 한국 영화비평가들의 관점을 알게 되고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와 영화제작에 관한 상호교차적인 접근 또한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여성영화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토론에 참여했다. 영화계 내에 존재하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와 영화사의 정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여성영화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기에 여성영화제의 존재가 중요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제1회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미망인>(1955)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 또한 페미니즘 운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기회가 된다. 여성 영화인들이 항상 존재해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성주의적으로 영화사와 영화산업을 다시 본다는 말에는 다양한 층이 존재하는 것 같다. 서사와 이미지 등 영화의 표면에 드러나는 것부터 자원과 인력 등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말이다. 현재 그런 연구와 활동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가. 또 당신이 특별히 더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알려 달라.

스크린 안팎으로 여성이 과소평가되는 것과 관련된 연구는 확실히 점점 더 이루어지는 추세다. 스크린에서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모두에서 여성이 부족하고 긍정적으로 재현되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문제점일 것이다. 학술회의 발표 중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충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호주에서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인상에 남았다. 영화사를 가르치면서 영화계 내에 여성이 항상 존재해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 동시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멜버른여성영화제에서는 다음 세대 여성 비평가들을 위한 멘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홀로 동떨어진 기획이 아니라 비평에서 제작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연결점을 찾아 나가는 프로그램이다.

 

 

당신은 한국장편경쟁부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총 7편의 영화가 본선에 올랐다. 심사 기준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했나.

극, 다큐멘터리, 실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공정한 심사 기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려웠다. 다만 여성의 목소리와 관점이 영화를 통해 명시되었는가를 중점적으로 보려고 했다. 또한 시네마틱한 요소들도 알맞게 표현되었는가를 생각하며 영화를 보았다.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인 ‘벽을 깨는 얼굴들’에 초점을 맞추어, 슬로건에 맞는 여성의 이야기가 영화 내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많이 보려고 했다.

 

 

본선에 진출한 영화들을 통해, 동시대 한국 여성 감독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 같다.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 목소리에 주목하고 그들의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관점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고충을 보여주면서도 함께 소통하는 과정이 드러나 있더라. 특히 현재는 미투 운동을 포함해 전 세계의 여성들이 소통하고 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인데, 전반적으로 그러한 주제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본선 진출작들의 어떤 지점, 면모들을 긍정적으로 보았는지 궁금하다. 반면 아쉬웠던 지점은 무엇인가.

긍정적으로 본 부분은 이미 다 언급한 것 같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가 강하다고 생각했고, 어떤 영화들을 보면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본선 진출작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좋은 만듦새를 보여준 영화들이었다. 다만 여성이 주연이 되는 액션영화나 공포영화도 경쟁 부문에서 보고 싶었다. (웃음)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는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매우 중요한 영화제다. 모두가 함께 참여해 성공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제적으로도 조금 더 유명해지고 명성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  손시내(리버스)

사진  홍보팀 변지은

통역  김한얼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