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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1회(2009) 영화제

[손프로의 마이너리그] No.5 - 캐릭 열전 2탄 - ‘모험’ 그 아름다운 이름: 색다른 도전자들1

 



드디어 이틀전,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티켓 예매가 오픈했다. 날개 돋힌 듯(?)이 팔리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아직까지는 큰 주목을 못 받고 있는 영화도 있다. 현재 예매 1위는 (오프 더 레코드로... 아핫핫) <에브리원 엘스>라는 독일 영화다. 아마도 200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과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작품이라는 네임밸류가 영화의 인기를 끌어 올리는데 한몫 한 모양이다. 나는 못 봤지만, 담당인 권은선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매우 지적이며 웰메이드한 영화라는 평가. 영화제 기간 중 (그럴 리는 없지만) 시간이 난다면 극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 중 한 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마렌 아데 감독의 이전 작품 <나만의 숲>이 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소개가 되었었는데, 그 작품도 꽤 좋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캐릭 열전 2탄, <'모험' 그 아름다운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여러분이 만나볼 수 있는 '색다른 도전자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색다른'이라고 하면 얼마나 '색다를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어디서 저런 용기가 생겼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들을 해 낸 여성들을 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색다른 중에서도 가장 색다른' 모험을 시작하는 이부터 소개하자면... 뭐니 뭐니 해도 '퀴어 레인보우'에서 소개되는 <베이비 포뮬라(The Baby Formula)>의 아테네와 릴리스 커플이다.




인공수정에 실패하고 슬퍼하는 아테네와 릴리스. 10회 때 소개했던 '서큐버스'의 한 장면.





아네테와 릴리스는 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서큐버스(Succubus)>라는 단편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었다. 캐나다에서는 동성 결혼이 합법이기 때문에 아테네와 릴리스는 '합법적'인 부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자 주인'이라는 제 3자가 개입해야 하고, 이 과정은 언제나 혼란스럽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인 아네테는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해서 난자 두 개로 임신이 가능해 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지만, 동물구조원인 릴리스는 언제 성공할지도 모르는 줄기세포 연구를 기다리다가 늙어죽을지도 모른다고 윽박지른다. 결국 릴리스는 밤에 몰래 아테네의 친오빠 래리의 집에 침입해 들어가 고양이 마취제로 그를 재운 뒤 정자를 훔쳐 나오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임신을 시도한다.

그리고 1년 뒤... <베이비 포뮬라> 속 다큐멘터리 감독은 임신에 성공한 아테네를 인터뷰한다. 줄기세포 연구에 성공한 아테네가 릴리스의 난자로 정자를 만들어 자신의 난자에 수정하면서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가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릴리스 역시 아테네의 난자를 이용해 임신을 했다는 사실. 아테네 혼자 임신을 하는 것에 남모를 질투를 느꼈던 릴리스는 아테네에게 말하지 않고 자신도 임신을 시도했던 것이다. 결국 세계 최초로 난자로만 임신에 성공한 여성이 둘씩이나 탄생한다. 그러나 갑자기 래리가 나타나 <서큐버스>에서 릴리스가 자신의 정자를 훔쳐갔던 일을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떠벌리며 자기가 이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라고 주장하기 시작하고...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되기 시작한다.




아테네와 릴리스가 신나서 춤 추는 모습. 안경을 쓴 것이 아테네, 배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릴리스다.





요즘 북미 퀴어씬(Queer Scene)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역시 퀴어 커플의 임신과 출산이다. 특히 경제적인 능력을 갖춘 레즈비언들 사이에서는 자기의 생물학적 아이를 임신하고 파트너와 함께 양육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한다. (L워드가 '완전 뻥'은 아니었던 셈.) 하지만 언제나 정자은행을 통하거나 게이 친구를 구슬리거나 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때때로 두 사람만의 '생물학적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픈 일로 느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생물학적 자식에 대한 욕망이 하나도 없는 나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런 나의 반응에 L.A.에 사는 '돈 많은 레즈비언' 친구는 "나이가 40이 다 되어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너도 달라질 거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나의 반응은 "글쎄..."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만의 난자를 이용해서 아이를 임신한 아테네와 릴리스는 역시 '레즈비언 커플의 임신과 출산'에 있어 색다른 도전에 성공한 선구적인 사람들 되시겠다. 여기까지가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한 근미래 캐나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큐멘터리인 척 하는 픽션) <베이비 포뮬라>의 아테나와 릴리스 소개.


'임신'에 있어 새로운 도전을 한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다. '천 개의 나이듦'에서 만날 수 있는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의 감독 자넷. 자넷은 이성애자로서 '남자 없이 애 가지기'에 도전한 용기있는 '싱글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용기있는 도전 과정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 자전적 다큐멘터리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Maverick Mother)>를 완성했다. 자넷이 워낙에 실험영화 쪽에서 이름이 있는 감독이라 장르는 다큐이면서도 굉장히 다채로운 연극적 화면과 픽션적 요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지적이고 재주많은 다큐멘터리다. (강추 작품이랄 수 있겠다.)









마흔이 다 된 자넷은 어느날 문득 자신의 생물학적 시계가 띵똥 띵똥 울리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난자가 점점 고갈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남자는 없고... 정자은행에 신청을 해보지만, 뭔가 진행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어느날 밤, 클럽에서 신나게 즐긴 자넷은 '원 나이트 스탠드'로 드디어 임신을 하게 된다. 아이는 물론 혼자서 독립적으로 양육할 계획이지만, 그래도 '윤리적인 책임감'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는 지레 겁을 먹었는지 연락 두절. 자넷은 그를 비아냥거리면서 출산 준비를 착착 해 간다. 보수적인 어머니는 딸이 '싱글맘'의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기겁을 하고... 똑똑하고 독립적이며 경제적인 능력도 갖춘 자넷은 조금씩 주변인들을 설득해 나간다. 그리고 드디어 열달 후. 귀여운 아기 '알로'가 태어난다.





자넷과 알로





스스로 싱글맘이 되기로 결정하고 이 결정을 용기있게 실행하는 자넷은 자신을 '엄마계의 이단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여성이 가족 시스템 밖에서 혼자서도 출산과 양육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넷과 알로는 이 영화와 함께 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는다. 우리 안코디는 벌써부터 알로에게 무슨 한국말을 가르칠지 고심 중이다. 이제 한국 나이로 4살이 된 알로. 영화 속에서 어찌나 귀여운지, 벌써부터 그를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자넷의 '용감한 싱글맘'되기와 사회적 시선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토크 인 씨어터 '사회의 시계, 몸의 시계, 그리고 나의 시계'에서 더 자세히 펼쳐진다.



'출산'의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좀 더 '섹시'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이제 소개할 사람은 70세가 다 된 나이에 40살 연하의 남자와 열애 중인 우리의 베티여사. 




베티와 그녀의 애인... 이름을 잊었다. 흠.





베티는 '천 개의 나이듦'에서 소개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Still Doing It)>라는 다큐에 출연하는 여섯명의 섹시한 고령 여성 중 한 명이다. <여전히...>는 '성해방'을 외쳤던 60년대 히피문화 속에서 청춘을 보낸 여성들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작품이다. "별 재미없는 섹스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라는 해리엇, 요양원에서 만난 남자와 불타는 사랑에 빠진 프란세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커밍아웃한 엘렌 등 매력적인 여성들이 40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불연애 중인 베티와 함께 등장한다. 사실 이 작품에서 제일 매력적인 인물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주아니타. 그녀는 '홀리'하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서 매력적인 웃음으로 "하나님도 내 섹스는 용서해 주실 거야"라고 말하는데, 그 장면에서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영화 속 여성들은 ('폐경기'라고들 하는) 완경기를 맞이하면 마치 여성으로서의 삶은 끝이라는 듯 떠들어 대는 세상을 향해 '그렇지 않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영화를 통해서 '재생산성'을 토대로 '여성의 가치'를 논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나이가 들 수록 '성'으로부터 남성보다 더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조건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통찰의 기회를 안겨준 베티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련다. 이릿히.


다음으로 소개할 여성은 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내가 소개하는 모든 영화들 중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황무지의 추수기(Harvesting the Wasteland)>의 마릿이다.




나의 '알흠다운' 마릿




삼십대인 나는 사실 '할머니' 이미지에 대한 어떤 판타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아직 '고령(보통 65세 이상을 이렇게 부르더라만)'이라고 부르는 나이대와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더욱 그런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 판타지 속에서 할머니는 언제나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통통한 얼굴과 작은 입술, 큰 가슴, 겹치는 뱃살, 그리고 얇은 다리의 조합들. 솔직히 말하자면 마릿은 외모상 나의 '이상 할머니형'이랄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매력적인 것이 단지 이런 외모때문만은 물론 아니다. 노르웨이 북부 한 농장에서 남편과 100살에서 딱 4년 빠지는 나이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마릿은 한 집에 3대가 모여 사는 이 갑갑한 생활에 지쳐버린다. 마릿에겐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너무도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40년 만에, 마릿은 드디어 '공간 독립'을 선언하고 농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마련한다. 마릿의 남편은 그런 그녀의 선택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선택은 그녀의 몫"이라고 하지만, 되려 크게 섭섭함을 느꼈던 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마릿의 시어머니 구리. (이름 참 귀엽다.)




마릿의 시어머니 구리.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노인 요양소에 가지 않는다"며 여전히 자신의 삶은 스스로 돌보는 여성.

 


96살인 구리는 일찍 떠난 남편을 그리워 하면서 아직도 잠이 들때면 남편의 사진을 꺼내들어 품안에 안는다. 남편과 함께 심은 나무를 바라보며 눈물을 적시는 구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멀쩡히 살아있는 남편을 떠나 독립적인 공간을 갖겠다는 마릿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릿은 '이혼'이 아닌 '독립'을 요구한 것이지만, 구리에게 이 '발칙한 독립 선언'은 이혼보다도 가혹한 것이다. 구리는 이제 '버림받은' 아들이 불쌍해 또 눈시울을 적신다.

마릿과 구리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는 잔잔하면서도 이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북부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함께 보여준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북부 유럽의 자연을 담은 화면이 보여주는 유리질의 차가움과 선명함을 꽤 좋아한다. <황무지의 추수기>. 한국어 제목을 이따구로 지은 내 탓으로 관객들의 열렬한 관심을 얻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후후후) 영화제 안에서는 '다큐멘터리판 <엄마가 뿔났다>'라는 별명을 붙여준 영화 되시겠다.



다음으로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는 그녀, 최현숙.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7기 수상작인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의 최현숙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정치인으로 2008년 4월에 치뤄졌던 총선에 진보신당 후보로 종로구에 출마했다.



박연차 리스트 관련해서 소환되었다 귀가조치되신 박의원님 되쎄요~




이분이랑 같이 출마해서 이분은 당선되시고 최후보는 천 여표 획득에 그쳤지만, 역시 여성영화제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당선 여부는 아니다. 그건... 큰 용기가 필요한,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도전,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우리 최후보의 호방한 웃음 보시라.





그녀는 전면적으로 성소수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내걸고, 성소수자로서 총선에 도전한다. 그녀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화두들은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건강한 커밍아웃이 거의 불가능한 이 사회에서 큰 소리로 "나는 레즈비언이다"라고 소리쳤던 것만으로도 그녀의 도전은 꽤 감동적이다. 그녀의 좌충우돌 정치도전기를 둘러싼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프리미어 상영 후 진행되는 토크 인 씨어터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모험' 그 아름다운 이름: 색다른 도전자들>편 1부는 여기까지. 역시 스크롤의 압박은 포스팅을 하는 사람한테도 부담스럽다. 후훗. 여성영화제 상영작을 소개하면서 캐릭터 열전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영화 속에서 나를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는 요소가 무엇보다 '인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여성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영화들 속에서 인물의 생명력은 그 영화의 생명력, 그리고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생명력하고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어찌되었거나 색다른 도전자들 2부는 다음에 또.







덧: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영화제 검색 순위 4위에 올랐다. "여성영화제 검색 순위 1위 만들기" 이런 거 한번 해 봤으면 좋겠는데, 동참하고 싶으신 분은 네*버로 가셔서 한번씩 검색 해 주시길. 이릿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