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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1회(2009) 영화제

[I-TEENS] <세리와 하르>


 

 세리의 성은 박 씨다. 박세리다. 아빠가 박세리 닮으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다. 세리도 골프가 배우고 싶다. 골프도 잘 치고 돈도 많이 버는 박세리가 좋다. 그런데 남들과 다른 생김의 엄마는 창피하다. 베트남에서 온 엄마는 피부색도 다르고 한국말도 잘 못한다. 세리는 그런 엄마가 부끄럽다. 하르는 불법체류자다. 아빠가 불법체류자라 그렇다. 그치만 누가 뭐래도 하르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왜 아니야. 그런데도 하르는 주민등록증을 ‘갖고 싶어’해야 한다.

 건조한 영화였다. 감정도, 대사도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도 한 대의 카메라인 듯, 멀찍이 인물들을 지켜보기만 하던 앵글은 거의 바뀌지 않고 컷의 호흡도 길다. 쉽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음 ..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편들고 싶다.

 관객의 입장에서, 혹은 그들의 자리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한 타자의 입장에서, 세리와 하르는 분명히 연대해야 할 ‘같은 편’으로 보인다. 우리가 지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열서넛의 여자아이들이기에 언뜻 그것은 더욱 쉽고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이 다툰다. 큰 악의는 없다하더라도 무심한 한마디마다가 서로에게 치명적이다. 돌이켜보자면, 그것은 서로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일 것 같다.

 물론 나이와 별로 상관없는 일일 것 같기는 하나, 그래, 그 열서넛 무렵에는 조금이라도 찌질해 보이는 것 보다는 죽는 게 낫다. 자신이 이미 찌질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기서 벗어나야한다. 쿨한 아이들과 어울려 계급상승을 해야 한다. 설사 F4와는 못 어울릴지라도 F4의 친구의 친구 정도와는 어울려줘야 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다시 먹기라도 한 듯, 사춘기가 닥치면서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불 지펴지고, 쭉 서로 곁을 지켰던 오랜 친구가 더없이 지긋지긋하고 찌질해보인다. 왜? 그 친구가 나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찌질해 못 봐주겠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이상 찌질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지긋지긋한 따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부러 하르를 괴롭히는 세리의 모습은 오히려 자신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쪽에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그것은 세리가 끊임없이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맥을 같이한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의 나를 차마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무서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소녀가 다시 조심조심 화해해 나가는 모습은 더욱 마음에 닿는다.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곧 자기 자신과 화해해 나가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 따뜻하고 그래서 참 북받친다. 세리와 엄마와의 화해에서도 마찬가지다. 세리가 가만히 엄마나라의 노래를 엄마에게 불러주는 장면은 더없이 아름답다. 엉엉 울고 싶다. 그와 동시에 이것은 갓 10대를 맞이한 낯선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공명할 수 있기도 했다.

 끊임없이 등장하던, 오히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제 적어도 내게는 쓸모가 없다. 피부색이 같지 않아서, 원래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서 덩달아 참 밉고 원망스럽기만 했던 자신과 조심히 다시 화해하는 이 친구들의 모습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모습을 편들란다. 다만 그 화해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이, 있는 자리에 주저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 한걸음을 내딛기 위한 힘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