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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이 땅에 삐라를 허하라_퀴어인문잡지『삐라』

 

트위터를 통해 퀴어 잡지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오~ 좋아!!'

얼마뒤 그 잡지가 퀴어인문잡지로 출판된다는 소리를 들었을땐 '어? 인문잡지??'

그리고 사무실로 도착한 분홍색 책 한권 퀴어인문잡지『삐라』 01 연애

책을 본 영화제 사무국장은 '이 잡지 만든 사람들 인터뷰 하자!' 외쳤고 

이렇게『삐라』를 받아본 여성영화제 사무실이 술렁거렸습니다.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은 세가지 퀴어, 인문, 종이책을 완전 '까리'하게 뭉쳐놓은 퀴어인문잡지『삐라』를 만든 편집위 연경, 다제이, 이서하님을 인터뷰 했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Q. 소개

 

연경: 글 쓰는 일과 영상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제이: 문학을 공부하고, 랩을 합니다.

 

이서하: 출판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기를 잘 잡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다제이, 연경, 이서하님>

 

 

 

Q. 계기

 

연경: 퀴어인문잡지 『삐라』는 동시대 퀴어담론이 어떠한 문형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퀴어담론 관련 리딩 리스트에 대한 갈급이 있기도 했고요.

 

이서하: 퀴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다들 다르게 쓰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다르게 쓰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셋이서 술을 마시다가 이 기획이 처음 나왔는데 그 때에도 셋이 다 달랐거든요.

 

다제이: 퀴어라는 단어의 용법에서 시작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거나 선언하는 방식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발화되는 것들을 한 데 모아보는데 중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하나의 완성된 글들이 묶여서, 또 다른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내길 바랬던거죠. 그리고 그건 꼭 하나로 합의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Q.  막강 필자들

 

전원: 필진들이 모이게 된 계기는 다양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필진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썼던 기존의 글을 읽고 참여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연경: 블로그, SNS, 웹진, 그리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인상적인 활동을 하고 계셨던 분들께 작업을 같이 하고 싶다고 프로포즈 했습니다.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자격보다는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느냐가 중요했었죠.

 

이서하 : 언젠가 한 번 이 사람의 글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반짝반짝하던 친구들 그리고 혼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던 연구자들을 지면으로 끌어내보고 싶었어요.

 

다제이: 필진 전부가 저희의 지인도 아니었고, 필진들끼리도 서로 다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삐라』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본거죠.

 

 

 

 

Q. '연애'

 

이서하: (창간호 주제를 연애로 하자는 것에) 나는 별로 그렇게 동의하진 않았는데 (하하)

 

연경: 연애라는 것 자체가 만나서 바뀌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꼭 사람들끼리의 연애를 지칭했던 건 아니고 각자가 품고 있던 열망과 욕망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제이: 첫 주제에 대해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연애 아닐까 생각했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이런 연애 자체가 『삐라』의 모습이랑 상당히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애를 하고 싶기도 하고요. (하하)

 

이서하: 결과적으로는 저도 만족합니다. 예쁜 『삐라』와 독자들과의 연애가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Q.  인문잡지?

 

연경: 우선 사유 역시 운동의 한 방향이라고 생각했던게 컸습니다. 그 사유를 극한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좀 더 학술적인 논의들이 오고 가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죠.

 

다제이: 일단 개인적으론, 제가 기획하고 편집할 수 있는 잡지의 분야가 제 전공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었기도 했고요. 확실히 퀴어담론이 국내에서 연구분과로서 역량을 발휘할만한 지면이 없다는 생각이 컸어요. 저조차도 퀴어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이것을 어디에 기고해야할지 막막했거든요.

 

이서하: 우리가 아니면 당분간은 누구도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푸하하)

 

 

Q. '혜진이 쓰지 못한 글을 대신해' 그 이후

 

(삐라』의 마지막 글 제목은 '혜진이 쓰지 못한 글을 대신해'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단체 Gender Dynamix에 활동하는 트렌스젠더 활동가 혜진은 퀴어 운동의 세계적 흐름속에서 단어 '퀴어'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글을 『삐라』창간호에 쓸 예정이었다. 그러나 혜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6월에만 여덟 명의 LGBTI가 살해되었으며 그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메일을 삐라측에 보냈다고 한다.  그 이후 혜진은 이틀 동안 세 명의 레즈비언들이 더 희생되었으며 그녀는 그것에 관해 행동해야 하며 원고를 마무리 짓지 못할 것 같다는 메일을 전하고 더이상의 메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서하: 혜진과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걱정이 많이 됐죠. 최근에 다시 연락이 닿아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LGBTI’의 존재가 굉장히 가시적인만큼 그와 관련한 증오범죄도 많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갈등상황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는 않아요. 다음 호에서는 혜진의 목소리로 더 상세한 상황을 듣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The BOOK,『삐라』

 

연경: 개인적으로는 책이 주는 물성을 좋아하고 신뢰합니다. 종이에 밑줄을 치면서 읽어야 글이 잘 소화되더라고요. 이것은 일종의 연대불가능한 공동체가 서로를 향해 쓴 우정의 편지/기록이기도 하니까 선물하는 행위를 통해 교환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했어요.

 

이서하: 저는 『삐라』가 작은 화면에 숨겨놓고 몰래몰래 읽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종의 기호(sign)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제이: 잡지의 기획자로서는 사유의 엄밀함을 띤 글을 원했기 때문에 논의를 살피기 위해서 지면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요. 또 아무래도 웹은 익명성의 공간이기 때문에 글을 쓴 사람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글이 제멋대로 해체되고 발췌되어 흘러 다니는 걸 막고 싶었어요.

 

 

 

 

Q.  재정적 동력 

 

전원: 재정적 기반은 다양한 루트로 구축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현재까지는 『삐라』 판매수익과 공적기금이 주된 재정적 동력입니다.

 

 

 

 

Q.  앞으로

 

전원: 현재 『삐라』 창간호가 절판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하) 더북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 알라딘 등등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삐라』 창간호와 더불어 연계프로그램인 퀴어캠프를 진행했었는데 이와 비슷하게 『삐라』와 연계한 세미나 혹은 작은 학술대회도 꾸려 보려고 합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2호를 발행할 계획입니다.

 

 

 

Q. to.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제이: 저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관객 중 한 명인데, 내년에 영화 같이 즐겁게 보고요. (하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객분들 중에서 『삐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트레온 뒤 판자집에서 술 한 잔 해요.

 

연경: 벚꽃 흐드러지는 계절에 화사한 표지의 『삐라』 한권씩 들고 영화제에서 만나면 반가울 거예요. 들고 계시는 것 보면 꼭 아는 척 할게요.

 

이서하: 『삐라』 다음 호 표지를 무슨 색으로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습니다. 많은 의견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