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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5회(2013) 영화제

10대가 이야기하는 그 작품 : <잔인한 나의, 홈>

10대기 이야기하는 그 작품 : <잔인한 나의, 홈>

-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이틴즈 리뷰 

* 아래 글에는 해당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인한 나의, 홈>

아오리 | 한국 | 2013 | 77' | HD | color |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영화를 보기만 했는데도 진이 다 빠져 버릴 만큼 나도 모르는 사이 돌고래 님에게 이입되어 있었고, 재판결과에 따라 함께 울고 웃고 있었다. 내 혼을 쏙 빼 버린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GV에 무대로 올라오신 돌고래 님을 보고 한 번 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생각보다 더 밝고 예쁜 분이어서,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저런 예쁜 분이 그 힘든 시간들을 견뎌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먼저 반응 한 것 같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다큐를 보면서 계속 우리가족에게 상황을 대입시키며 남일 같지 않은 마음으로 그 가족들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동생들의 입장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엄마와 아빠, 할머니 등등 어른들은 돌고래님에게 등을 돌릴 지라도, 동생들만은 언니의 편에 서서 언니를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동생들만큼은 언니의 말을 믿어주고 지지해 주겠지, 언니인데. 그런데 내 예상과 완전 정반대로 엄마와는 연락을 하면서 동생들과는 연락도 하지 않고 동생들이 언니를 만나기 싫어한다는 내용이 나와서 적잖이 놀랐다. 그래서 그 뒤로는 계속 동생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왜 만나기 싫어했을까? 같은 부모의 자식입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언니를 제일 잘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 정반대로 행동을 할까? 난 동생도 둘이나 있고, 언니도 있기 때문에 언니가 친족성폭력을 당했을 때, 나와 내 동생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계속 상상해봤다. 그랬더니 동생들이 어느 정도는 점점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중1이라는 어린 나이에, 언니가 너무 미워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진짜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들도 모두 그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 사실이 진짜든 아니든, 믿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니와 아빠의 계속 되는 재판 끝에 아빠가 결국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자, 아빠가 안 계신 불안정한 가정도 모두 언니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단란해 보였던 가족에게 균열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되는 언니를 한껏 미워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워할 대상이 있는 것이 미워할 대상조차 없는 것보다는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줄테니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동생들과 돌고래님의 관계가 더욱 안타까워졌다. 하루 빨리 사이좋은 자매로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한다. 동생들과 돌고래님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매끼리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빠와의 재판을 진행하는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정말 힘들고, 주변에 의지할 곳이 많지 않아서, 사람들이 처음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정말 힘들었을 텐데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 주신 돌고래님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 3년간의 다큐를 찍으면서, 그 기간 동안 계속 다큐에 집중하느라 다른 일도 못하게 되어 금전적인 문제도 생기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돌고래님과도 친해지면서 다큐를 찍을 때 카메라를 끄고 먼저 돌고래님을 위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셨을 텐데, 그 모든 어려움들을 다 극복하시고 그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신 아오리 감독님께도 정말 감사드린다. 

나중에 GV가 끝나고 아오리 감독님과 잠시 만났을 때, 감독님께 3년 동안 다큐를 찍는다는 것이 정말 힘드셨을 텐데, 어떤 원동력으로 끝까지 찍을 수 있으셨는지 여쭈었었다. 그 때, 감독님이 살짝 눈물을 보이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다큐를 찍으면서 자신이, 자신의 다큐가 친족성폭력 피해자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용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확실하게 들어서, 그 분들을 돕고 싶어서 다큐를 끝까지 찍게 되었다고. 

하고자 하시는 것이 확실하고 자신이 이 다큐를 왜 만들고 있는 것인지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주제의식이 강한 다큐가 나오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이런 자세가 다큐를 찍으려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 영화와는 달리 다큐는 촬영하는 도중에도 주제적인 측면에서 길을 잃기가 더 쉽기 때문에 주제의식을 가지고 주제를 정확히 알아야지만 그 다큐가 가진 울림이 더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다큐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다큐이기도 하다. 

이 다큐를 보신 다른 분들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테지만, 특히 나에게는 이 다큐가 더 각별하게 다가 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른이 싫어서, 어른들의 세계가 싫어서 어른이 되기 싫다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나에게, 처음으로 그 생각에 변화를 준 다큐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정말 올바른 어른이 되어서 나도 이런 다큐를 찍어야겠다고. 그래서 나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의 변화를 가질 수 있도록, 변화를 가지지 않더라도 그 관객을 더 올바른 길로 더 나은 길로 유도하고 싶다는 목표도 설정해 주었다. 아오리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정말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나도 아오리 감독님 못지않게 울림이 큰 다큐를 찍을 수 있도록 열심히 배워나가야겠다. 


글 : 아이틴즈 배희경





잔인한 나의 홈은 일단 다큐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첫 번째 충격을 안겨준다. 최근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성폭행관련 범죄를 자주 접하게 된다. 매우 끔찍하고 수치스럽지만 무의식  중에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치부하게 되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또한 알지도 못 할뿐더러 잘 보도되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잔인한 나의, 홈>이 보여주는 그 이후의 일들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고통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시작한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관객과 하나가 된다. 1심 재판에서 가해자가 풀려나게 되자 객석에선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항상 밝던 돌고래님이 눈물을 흘리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관객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 영화의 힘은 감독님과 돌고래님의 용기에서 나온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왜 아직도 성폭행 관련 처벌이 미약한 것인가에 대한 분노에 휩싸였다. 돌고래님에게 그렇게 심한 짓을 한 가해자는 고작 7년형을 받는다. 다른 나라의 법에 비하면 정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여성인권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장면이 몇 가지 나온다. 첫 번째로는 돌고래님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이다. 가족들은 돌고래님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상처를 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이유가 무엇일까 같은 여성이면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은 어떤 심리가 작용한 것일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가해자 측 변호사가 감독님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이다. 과연 그 변호사는 감독님이 건장한 남자였다면 그런 태도를 취했을까?

<잔인한 나의, 홈>은 현실 속에서 성폭행피해자들이 받는 상처와 고통에 대한 간접경험 그 자체였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여성이 살아가기에 참 힘든 나라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각인되었고 어서 빨리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멋진 용기를 보여주신 아오리 감독님과 돌고래님에게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글 : 아이틴즈 임재은




영화가 시작되고, 돌고래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들을 상상하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고 어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고통을 겪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담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GV를 위해 우리들 앞에 선 그녀의 얼굴에 또다시 울컥했다. 그녀가 그렇게 생기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설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홀로 견뎌왔을까. 친족 성폭력. 민감해야 하지만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무뎌진 것일지도 모르는 세 단어 앞에 어째 낯선 단어가 앞에 붙었다. 

돌고래는 친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그녀가 ‘처음 삽입당했던 때는’ 이라고 표현했을 때,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당당히 재판을 시작했고, 1심에서 ‘무죄’라는 말도 안되는 판결에도 굴복하지 않고 승소해냈다. 2~3년 동안 그녀는 셀 수 없이 많게 사람들에게 그녀가 당한 일을 진술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씩씩하고 밝았다. 더 이상 그녀가 외롭지 않길 응원한다.

가해자가 그녀의 아빠기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딸이기에 가족들은 그녀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왔고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엄마와 여동생들이 돌고래의 등을 돌리고 아빠의 편에서 그녀를 질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같은 여자로서 어찌 저럴 수 있나. 하지만, 그 상황이 아니어보고서야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내 동생에게,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돌고래도 그래서 최종 판결에 ‘그’가 7년형을 받았지만 그녀의 남은 가족들 때문에 계속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가 벌인 일이다. 또 누군가 재판을 시작한 돌고래가 가정파괴를 자초했다고 하지 않길 바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녀가 당한 아픔이 거짓으로 몰린 것이 돌고래에게는 여전히 고통일지 모르겠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어도 가족만은 오로지 믿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믿음’이 어디를 향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면에서 아오리 감독은 돌고래에게도 또 다른 많은 피해자들에게도 힘이 될 것 같다, 힘이 됐으면 좋겠다.

처음 영화의 제목을 보고는 무슨 내용이기에 ‘잔인’하다고 말하는 걸까 궁금했다. 그리고 ‘잔인’하다는 표현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기나긴 싸움을 이겨낸 돌고래님과 이 과정을 함께하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을 아오리 감독님의 모습에 GV가 끝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오리 감독님은 그들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재판과정을 세밀히 다루셨고 그래서 나도 아이틴즈도 제도에 대한 분노를 많이 느꼈다. 1심에서 돌고래처럼 무죄 판정이 나고 끝나는 사건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검사가 다시 재판을 원하지 않으면 사건은 종료된다. 더구나 성폭력 가해자들의 2.1%만이 신고한다고 하는데, 그들 중에도 이토록 쉽게 사건이 종료되는 게 흔한 일이라면, 정말 잔인하다. 영화를 보면서 여기 이곳에서 앞으로 여성으로서 살아가야함에 두려움과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통해서 올바른 여성으로서의 삶을 바라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여성이기에 더 민감하게 살아가야함이 억울하지만 돌고래님의 씩씩함과 아오리 감독님의 눈물을 보면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그렇게 짐승들에게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글 : 아이틴즈 김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