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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보라]

씨네 페미니즘 학교가 던지는 질문

씨네 페미니즘 학교가 던지는 질문




4월 15일 저녁 7시, 올해로 세 번째 해를 맞이한 씨네 페미니즘 학교가 ‘여성주의 실험영화’로 2014년 첫 수업을 시작하였다.

<여성, 영화로 실험하다: 씨네 아방가르드에서 미디어 아트까지>



조금은 낯선 용어들로 이루어진 강좌명과 커리큘럼으로 인해 참여자들이 씨네 페미니즘의 문턱을 높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담당자의 걱정은 기우였다. 모집인원을 훌쩍 넘겼고, 강좌에 모인 참여자들은 예술관련 전공자뿐만 아니라 대학생, 미술관 직원, 상담센터 활동가 등 다양했다.

이번 강좌를 맡은 조혜영 강사는 초기 실험영화에서 뉴미디어 시대의 미디어 아트까지 ‘여성주의 실험영화’를 재조명하며, 미학적이고 매체적인 실험을 통해 여성주의 실천을 보여준 영화를 소개한다. 조혜영 강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2009-2011) ‘트랜스-미디어스케이프’라는 제목 하에 새로운 여성영화 미학에 도전하는 영화들을 소개한 바 있다.

첫 수업에서는 여성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정의와 담론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여성주의 실험영화가 주류 미디어에 대항하면서 부상하게 된 배경을 논하였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식’ 혹은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씨네 페미니즘 학교가 ‘여성주의 실험영화’를 강좌 주제로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20대에서 40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이 강좌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처음 열던 2012년, 이 강좌들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담당자로서도 사람들이 과연 ‘씨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질지는 의문이었고, ‘영화’와 ‘여성’ 모두를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강사의 섭외가 가능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러한 걱정 속에서 기대감도 새록새록 돋아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커리큘럼이 하나하나 완성되어 2012년 씨네 페미니즘 학교는 4개의 강좌로 구성되었다.


김선아, 임옥희, 남다은, 권은선 등 각각의 강사와 함께 영화에 질문을 던졌던 <여성적 시선, 우리 시대 영화 읽기>, 

이 시대의 여성혐오 현상들을 <엑소시스트>, <캐리>, <소름> 등 공포영화와 정신분석학에서 찾아본 손희정 강사의 <여성괴물, 공포영화로 살펴보는 이 시대의 여성혐오>,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는 퀴어 재현을 둘러싼 담론화 경향과 재현 전략을 영화와 함께 살펴본 김일란 감독의 <영화와 성정치학>

그리고 ‘씨네 페미니즘’의 대표적 영화들을 살펴본 심혜경 강사의 <씨네 페미니즘 미학, 서구 씨네페미니스트 이론과 실천>


여덟 명의 강사가 함께 준비한 2012년 씨네 페미니즘 학교에는 무려 129명의 참여자들이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찾았다. 첫 강좌였던 만큼 참여자들의 기대도 다양했을 것이고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힘들었겠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모여서 ‘씨네 페미니즘’과 그 외의 것들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들’이 드러났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였다.


이렇게 첫 발을 내딛은 씨네 페미니즘 학교의 두 번째 해, 2013년은 더 중요한 시기였다. 씨네 페미니즘과 여성주의 대중문화 비평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서로의 존재를 알았으니 이제 이 소중한 관심을 지속시킬 새로운 질문들과 담론이 필요했다. 어떤 주제, 어떤 형식의 강좌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현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리하게 표현하는 국내 여성 감독들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2013년 5월에 진행한 집중 강좌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스터 클래스>는 경순, 김일란, 류미례, 이숙경, 이영, 이혜란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대한 비평적, 이론적 접근 뿐 아니라 제작 현장에서의 실천적인 고민들을 나눈 시간이었다. 

하반기에 진행한 대중 강좌 <비정규직 시대의 여성 로맨스 판타지>에서는 황미요조 강사가 최근 몇 년간 TV와 영화에서 인기를 모았던 <꽃보다 남자>, <파견의 품격>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여성주의로 흥미롭게 분석하는 강좌로 젊은 세대들의 많은 관심과 높은 출석률을 나타내었다.



     



2013 씨네 페미니즘 학교의 강좌에 모인 참여자는 195명. 

2012년보다 늘어난 숫자에 주목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씨네 페미니즘 학교' 안에서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새로 들어오고, 나가고, 그리고 또 다시 모이며 '지속된다'는 것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씨네 페미니즘 학교'는 여성영화 혹은 씨네 페미니즘에 대한 분산된 지식과 관심들을 지속성 있게 연결하는 공통의 주제와 공감의 장으로서 작게나마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은 미미해보이지만, 영화 전공학과에서 씨네 페미니즘에 대한 강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값진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씨네 페미니즘 학교는 '로라 멀비'나 클레어 존스톤' 등 이전에 빛났던 씨네 페미니즘 담론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거나, 혹은 국내 여성주의 감독의 작품들을 재조명하거나 최근 대중문화에 대한 여성주의 문화비평 강좌 등을 진행해오면서, '더 새로운 담론'이나 '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기다리며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느끼게 된다.



     

   좌측부터 1,2. 마야 데런 <오후의 그물(Meshes Of The Afternoon)> 캡쳐, 3. 샐리 포터 <스릴러(Thriller)>, 4. 마사 로슬러 <부엌의 기호학(Semiotics of the Kitchen)>


그래서 2014년 씨네 페미니즘 학교는 '여성주의 실험영화'를 첫 번째 강좌로 시작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가부장적인 혹은 전통적인 질서에 저항하기 위해 형식을 파괴하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던 여성주의 실험영화와 미디어 아트들을 살펴봄으로써 여성적 이슈에 대한 그들의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정신들을 탐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아직도 무언가에 저항해야 하기 때문에 20대에서 40대의 다양한 참여자들이 이 강좌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그들의 ‘여성주의적 영화 실천’에 과연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씨네 페미니즘 학교'는 여성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계속 던질 것이다. 그 질문에 반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더 새로운 담론, 그리고 더 도발적인 움직임들을 씨네 페미니즘 학교에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디어교육실 팀장 권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