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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한국의 여배우들

욕심 많던 그녀, 트로이카 문희

욕심 많던 그녀, 트로이카 문희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15탄 문희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문희는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다요즘도 어떤 행사 같은 데서 만나면 모습과 용모는 변했는데 눈은 그대로 옛날과 같아 곧 알아볼 수가 있다. 나는 이만희 감독의 <흑맥>에서 데뷔한 문희 영화를 못 봤다그래서 1969년 정연희 원작 <석녀>에서 처음으로 같이 일하게 된다.



    영화<신부일기>의 문희 ©한국영상자료원

 



문희는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카메라 앞에 서면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를 되찾는 여배우다. 체격은 작은 편이지만 스타일이 좋고 연기가 섬세하다. 그때 트로이카 여배우들의 상대역은 거의 신성일 혼자서 맡고 있었는데 이 젊고 매력적인 남배우가 누구와 짝을 이루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남정임과 신성일은 어쩐지 남녀 관계보다는 시나리오의 배역에 가까운 콤비가 된다. 윤정희는 신성일의 애인 같은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육체적인 관계를 관객은 쉽게 상상한다. 그런데 문희는 늘 신성일을 몸 달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남자를 유혹한다고 할까 여자의 향기가 남성을 제압한다. 가령 이들의 정사 신 같은 것을 촬영할 때 세 사람이 다른 것은 앞의 두 배우는 남자에 의존해서 연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신성일은 섬세한 주의사항을 늘 말한다. 그런데 문희의 경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액션으로 들어간다. 그런데도 나무랄 데 없는 완성도가 생긴다.



작년 최은희 씨 생일날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 술을 마셨는데 문희가 가져온 술이 유난히 맛이 있었다. 이천에서 도자기를 하는 조 모 씨가 특별히 양조하는 것인데 그는 감독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누굴까? 문희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 배우를 조금 했다고 한다. 배우를 조금 하다니? 그때 나는 10여 명의 배우를 대동하고 <일본인>을 촬영하러 동경에 간 일이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문희를 본 어떤 교포 학생이 병이 나서 누웠는데, 소원이 문희하고 영화 촬영을 하는 것이란다. 나는 상대도 안하고 촬영 일정을 따라갔는데 그 학생의 부모가 날마다 찾아와 애원한다. 외아들을 살려달라며 제작비는 자기네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가 어디 밥 먹듯 되는 일인가! 동행했던 김승호가 말했다. 영화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목숨도 중하다고. 촬영이 끝나서 스태프를 서울로 보낸 나는 문희와 그 학생을 데리고 촬영지로 떠났다. 일광(日光)의 게곤노 다끼(華嚴の), 그곳은 일본의 문호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 之介)가 투신한 폭포였다. 하늘을 진동하는 폭포 앞에 두 사람을 세워놓고 시나리오 구상을 하느라 땀 흘린 생각이 난다. 그 소년이 조국에 돌아와 사업에 성공하고 지금도 문희와 교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진짜 영화 같지 않은가! 영화는 모름지기 만드는 사람도 그것을 관람하는 관객도 자기가 아는 만큼 참여한다.



1970년 나는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크랭크인 했다. <석녀>, <신부일기>에 이어 세 번째 문희 영화다.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다 테스의 슬프고도 허무한 사랑 이야기를 설명할까마는 신성일과 문희는 성환 목장에서 한여름을 보내며 야심을 불살랐다. 그런데 완성된 필름에 제작자는 <청춘무정>이란 전근대적 타이틀을 붙였다.



문희는 결혼 후 영화 출연을 끝냈다. 지금은 손자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할머니지만 그때 그 시절 관객들 가슴에 새겨진 영상들은 아직 살아있다. 요즈음은 아름다움을 무기로 삼는 배우들이 우리 눈을 가리고 있지만 문희만큼 자연산 미인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글: 김수용 감독


 

문희 1947년 서울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와 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 여성최고지도자과정 수료. 예대재학시절 친구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이만희 감독에게 발탁되어 65년 <흑맥>으로 데뷔, 71년 결혼한 뒤 은퇴. 73년 개봉된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씻김불>을 마지막으로 300여 편에서 주연. 93년부터 사회활동을 재개하여 한국일보 이사, 한국종합미디어 대표이사,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등을 거쳐, 2003년 이후 현재까지 백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김수용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0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 1958년 육군 대위로 예편 후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 이후 50여년 간 109편의 영화를 만듦. 1984년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동경 국제영화제, 아세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회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민원로회의 의원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