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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여성영화제가 제겐 배움의 장이에요" 심사위원 맡은 김동명 감독 인터뷰


"여성영화제가 제겐 배움의 장이에요"

아시아단편경선 심사위원이자 상영작 <거짓말>의 김동명 감독



 비가 올 듯 흐린 날이었다. 약속 장소는 상수역 근처의 한 카페. 카페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로 맞아준 김동명 감독은 인터뷰 전 찾아본 포탈에 실린 사진의 강한(?) 인상과는 너무 다른 온화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소탈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김동명 감독은 단편 <전병 파는 여인>(2007)으로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비평가주간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에는 첫 장편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를 연출했다. 2011년 연출한 두 번째 장편 <피로>는 제30회 밴쿠버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상영되었고, 작년에는 세 번째 장편 <거짓말>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올해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거짓말>을 상영하고 ‘아시아 단편 경선’ 본선 심사위원까지 맡게 된 그녀를 만나보았다. 



<거짓말>―가장 자본주의적인 병에 대해 말하다

Q. <거짓말>이 세 번째 장편이세요.

A. 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단편은 2002년부터 작업을 해왔고 실험 영화를 주로 만들었죠. 첫 장편은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2008)예요. 그거 찍고 재능이 없다는 자괴감도 들고, 이렇게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영화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만두려고 했었죠. 근데 어쩌다 보니 벌써 세 번째 장편 영화네요(웃음).



Q. <거짓말>은 언제부터 제작하신 건가요?

A.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을 받았던 게 2011년이었나 그랬어요. 시나리오는 좀 오래됐거든요.

 이것도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아요. 두 번째 장편 <피로>에 제 얘기를 녹여냈었는데, 그전에는 영화에서 제 얘기를 절대 안 하려고 했거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는 게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해서요. 근데 슬럼프가 오고, 그러면서 내 얘기를 해봐야지 마음먹으니까 편해지더라구요. 

 시나리오의 첫 제목은 <남쪽의 기억>이었어요. 왜 <남쪽의 기억>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제작사에 있는 지인한테 시나리오를 보여주니까 제목도 그렇고 탈북 이야기로 바꿔보는 건 어떠냐고 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 바꾸는 작업을 계속했죠. 새터민이 북한에서 내려와 자본주의를 배우는 단계에서의 거짓말, 이런 식으로. 새터민 인터뷰도 하고요.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이 없어지더라구요. 왜냐하면 의도적으로 그분들한테 다가가서 이야기를 캐내는 것 같으니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옳은 일인가 싶고.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서 원래 하려고 했던 걸 하자고 마음먹었죠.  

※ 영화 <거짓말>에 대한 구체적인 인터뷰 내용은 영화제 기간에 배포되는 ‘데일리’를 통해 공개됩니다.



Q. 임신 중에 제작을 하셨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A.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받을 때 보험도 들고, 계약서도 써요. 후에 영화가 제대로 안 나오면 돈을 다시 돌려주기로 약속하거든요. 영화진흥위원회 일정을 맞춰야 하는데 이미 기간 연장도 했고, 못 맞추면 돈을 다시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오니까 그렇게 됐었죠.

 힘든 건 오히려 스태프들이었을 거예요. 저는 좀 편했어요. 객기도 있었고(웃음). 예전에는 촬영 나가기 싫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거짓말>을 만들면서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스태프들이 힘들다는 말을 못했죠. 현장에서 임신한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까.



Q. 예전에 부산국제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거짓말> GV를 하셨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대체적으로 남자 관객분들이 적대적이셨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 속 남자 캐릭터가 너무 찌질하고 답답하니까.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도 속다니, 이런 거였죠. 반면에 여성분들은 그런 친구들 많이 봤다, 공감한다 이런 분들이 많았어요. 

 여담이지만 제게 GV는 좀 어려워요. 긴장되기도 하고,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들키는 느낌이랄까요. 지금까지 공격적인 질문이 많진 않았는데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나오지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하고 있어요. 



여성영화인―김동명

Q.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A. 대학 시절, 영화를 전공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동아리에 속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다가 졸업하면 못할 테니까 그전에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국독립영화협회 사이트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도와주게 되었어요. 

 그때 촬영한 영화가 <반변증법>(2001, 김선, 김곡)이에요. 만약 그 친구들이 영화의 모든 세팅을 갖춰놓고 찍었으면 저는 감히 영화를 못했을 것 같아요. 근데 다행히(?)도 카메라는 집에 있는 캠코더 들고 오고, 조명도 오징어잡이 배에 쓰는 그런 유의 조명을 마대자루에 꽂아가지고 들고 다니면서 찍고 그러니까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때 재미를 느껴서 수렁으로 빠졌죠(웃음). 

 근데 하다 보니 점점 재미도 없어지고, 영화를 왜 찍는지도 모르겠고 제겐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군다나 사람들이랑 대화도 잘 못하니 트러블도 생기고 힘들었죠. 그렇게 영화는 내 업이 아닌가 보다 좌절하고 있었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장비도 다 필요 없고, 예전으로 돌아가서 그냥 내가 카메라 들고, 몇 명이서 오붓이 한 번 찍어보자’ 그렇게 나온 게 앞서 말한 <피로>라는 작품이에요. 저에게는 두 번째 장편 영화였는데 배우 1명이랑 도와주는 친구 1명, 이렇게 셋이 찍었어요. 배우 친구가 지방에서 직장을 다녀서 주말마다 저희 집에 모여서 찍곤 했어요. 그때도 이거 하고 그만둬야지 그랬는데, 그게 또 발판이 되더라구요(웃음). 찍으면서 재미있기도 했고, 영화의 맛이 이런 거구나 새로 느끼기도 했고. 



Q.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여하신 적은?

A. 출품한 적은 있지만 이상하게도 연이 닿지 않아 이번에 처음 참여하게 돼요. 사실 좀 삐져 있었어요. 영화를 몇 번 보여 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그 이후엔 감감무소식이라서. 탈락자에게도 연락을 주세요(웃음). 



Q. 심사위원은 처음 해보시는 건가요?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시나요?

A. 본선 심사위원은 처음이에요. 인디포럼에서 예심은 본 적 있어요. 남의 작품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하는데 저도 영화를 만드는 입장이니까 돈도 많이 들고, 상황이 열악한 걸 알기 때문에 심사하기가 참 어려워요. 심사 섭외가 올 때마다 이거 내가 해도 자리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기대되는 건 육아를 시작한 이후에 영화를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 아기 재우고 나면 저도 TV를 보거나 그냥 누워서 쉬거나 그렇게 수동적으로 되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제 심사는 저에게 배움의 장이 될 것 같아요. 요즘 감독들은 어떻게 만드나, 스토리가 유행을 많이 따르기도 하는데 그것을 감독이 어떻게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 보여주나 궁금해요. 저는 스킬도 중요하지만 소재에 어떻게 접근하나를 좀 더 봐요. 아무리 얼기설기하더라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제대로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 걸 유심히 보면서 저도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무척 기대돼요.



Q. 육아 전과 육아 후가 다를 것 같은데 여성 감독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A. 사실 아이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전혀 계획에 없던 상황들이 몇 년간 벌어진 거라 지금 좀 혼란스러워요. 애가 생기니까 시댁도 생기고.

 아무래도 영화 작업에 대해 우려가 많이 돼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육아 환경뿐만 아니라, 제작 환경도 모르겠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돈이 있고 육아만 해결하면 되는 상황이면 명확하게 얘길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가지 문제가 같이 가는 거니까. 올해가 지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제작 환경만 만들어지면 아이를 들쳐 엎고서라도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에요.



Q.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A. 저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처음이니까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해요. 어떤 영화들이 모일까, 관객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실까. 관객분들도 저처럼 기대하고 계시겠죠? 많이들 오셔서 좋은 영화 같이 보면 좋겠어요. 



인터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팀

인터뷰 정리: 이슬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