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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그녀들의 근황: 유령처럼 귀환하는 트라우마의 전경 <거미의 땅>




<거미의 땅>철거를 앞둔 경기 북부 기지촌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세 여성에 대한 영화이다.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형성되었다가, 이제 다시 집단적으로 말소되어가고 있는 공간인 기지촌에는 양색시 라는 이름으로 타자화된 여성의 삶과 역사가 곳곳에 묻혀 있다. 당사자들만 기억하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이 제 거미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간다. 

영화의 전반부, 거의 이동이 없는 고정된 카메라는 두 할머니의 느릿느릿한 이동성과 시간성, 상처의 무게감을 관객으로 하여금 체험케 한다. 거의 말이 없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읊조리는 두 할머니의 낮은 울림은 폐휴지 위에 그 려 놓은 그림들, 깊은 숲 속에서 내지르는 악다구니 속에서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울린다. <아메리칸 앨리>, <나와 부엉이>를 통해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을 담아온 감독들의 카메라는 <거미의 땅>을 통해 다시 한 번 오랜 시간 천착해온 주제의식을 펼쳐낸다. 긴 시간 관계해온 주제의식, 그리고 대상과의 관계성 만큼이나 오랜 시간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적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섹션에서 상영된 <거미의 땅>은 동시대 영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독보적인 작품으로 지난 1월 14일 전국 주요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개봉했다. 제국 일본의 종군위안부, 해방 이후 기지촌 여성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영화적 공간으로 재창조해내는 <거미의 땅>은 세계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제13회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경쟁 부문에 초청됨은 물론, 특별상까지 수상하여 화제를 모았으며, 이후에도 '제17회 이흘라바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16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뉴욕현대미술관 MOMA'등 세계 각지에 연달아 초청된 바 있다. 

놀라운 미학적 성취로 관객과 평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거미의 땅>이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