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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보라]

예울마루 여성영화산책, 2015년 여수로 여행을 나선 여섯 편의 여성 영화


안녕하세요. 아카이브 보라입니다. 2016년 1월 이례적인 한파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추위와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어 아침저녁으로 길이 막히고 여행지에 고립된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거리를 메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품만을 꼭 쥐고 땅을 보며 바쁘게 이동하겠지요. 이 살을 에고 몸을 마비시키는 추위, 그리고 눈과 얼음으로 미끄럽고 위험한 도로들. 이렇게 사람들을 꽁꽁 묶어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으니, 올 겨울이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외롭고 무섭게 할까봐 걱정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따뜻하게 껴입고 단단히 무장하고 나서 주변의 사람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온기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회원 분들에게 깃들길 기원합니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교류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기쁨이란 참 사람들을 신나고 힘차게 만들어 주는 것 같은데요. 2015년 7월에서 12월까지 아카이브 보라는 여수에서 여섯 차례의 상영회를 진행하며 이런 교류의 기쁨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GS칼텍스 예울마루는 여수에 설립된 문화공간입니다. 이곳은 여수 시민들뿐 아니라 인근 순천이나 광양까지 아우르며 시민들에게 좋은 예술문화들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2015년 하반기에는 예울마루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동주최로 여섯 차례의 상영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함께 하는 예울마루 여성영화산책"을 통해 여수 시민들에게 다양한 여성 영화를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상영회는 총 300여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진행되었는데 이곳이 때로는 매진을 이루고 평균적으로 100여명 안팍의 분들과 함께 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새로운 영화, 또 여성 영화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생각에 아카이브 보라에서는 반갑고 분주한 마음이 새록새록 드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여성영화산책이라는 이름처럼 저희도 여수 시민 분들도 낯설지만 설레는 산책길을 나섰는데요. 그 산책길을 내어 준 작품들은 <할머니와 란제리>, <세컨드 마더>, <골든 차일드>, <토헤즈>, <마이 스키니 시스터>, <반짝이는 박수소리> 이렇게 여섯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작품감상 후에는 작품과 관련한 대화를 이끌어줄 분들을 한 분씩 모시고 여수 시민 분들과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여수 시민 분들이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호기롭게 작품에 대해 소감을 묻고 질문을 하시던 순간들이 생생합니다. 작품을 통해 어떤 삶의 형태나 문제들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 앞에서 저희는 늘 고맙고 감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상영회였던 <할머니와 란제리> 관객과의 대화 때는 가장 많은 소감들이 공유되었던 것 같은데요. 이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연대하는 영화의 노력에 보내는 관객 분들의 박수와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저희 여성 영화들이 더욱 열심히,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해야겠다는 의지가 일고는 합니다. 


 그리고 7월에서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2시에 진행된 상영회 시간으로 인해 관객 분들의 연령대는 30대 이상인 경우가 많았는데요. <마이 스키니 시스터> 때에는 독특하게도 많은 고3 학생 분들이 단체관람을 통해 자리를 해주었습니다. 현대 경쟁사회가 낳는 병과 그것을 앓는 마음을 섬세한 터치로 보듬는 작품을 통해, 수능을 마치고 이제 온갖 새로운 고민들에 직면하게 된 학생들에게 작게나마 그들의 건강한 삶을 응원하는 대화를 건넬 기회가 주어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상영은 <반짝이는 박수소리>가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직접 와주셔서 아주 생생한 이야기 시간이 꾸려질 수 있었답니다. 또 여수에 있는 농아인협회에서도 여러 분이 함께 해주셔서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정상'이라고 설정해놓은 기준들이란 것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 그 보잘 것 없는 기준으로 인해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닫히는지, 그리고 자신을 그러한 잘못된 기준에 맞추지 않고 살아가는 게 외롭거나 슬픈 게 아니라 얼마나 반짝이고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작품과의 만남, 그리고 그 생각을 단단하게 풀어내주신 감독님과 관객분들의 진솔한 대화 덕에 값진 시간으로 상영회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언덕 한 중간 탁 트인 곳에 위치한 예울마루 정문을 나서면 그 앞으로 조용하고 고운 바다가 펼쳐집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 한복판에서 바쁘게 지내다 만나는 그 하루의 예울마루는 반갑기도 하고 질투나기도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KTX를 타고도 꼬박 3시간이 걸리는 여수 분들에게 저희 영화들을 소개할 수 있다니 반갑고 기뻤다면, 한편으로는 한 달 30일 일 년 365일 내내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에서도 영화를 통해 이렇게 탁 트인 산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예울마루에 질투 아닌 질투를 품어보기도 했던 것입니다. 2016년에는 2월부터 두 달에 한 번 역시 여섯 번에 걸쳐 만나게 될 여성영화산책에서 더 깊고 친밀하게 우리의 문제들을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반갑고 질투나는 하루가 한 달에 이틀로 삼일로 늘어나 결국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아카이브 보라의 많은 작품들이 곳곳에서 상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손에 응원 수술을 손에 쥐고, 정신 바짝 차려 다양한 여성과 삶의 문제들에 손 내미는 영화를 찾고, 가슴으로는 저희와 함께 산책하실 분들을 기다리며, 올 한해에도 아카이브 보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두 화이팅! 


글: 채희숙 (아카이브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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