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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보라]

3.8 여성의 날 맞이 아카이브 보라의 숨은 보물 찾기


안녕하세요, 아카이브 보라입니다. 아직은 춥지만 그래도 봄기운이 넘실거리는 3월이 되었습니다. 사무국은 이제 100일도 남지 않은 영화제를 준비하느라 활기차고 분주한 모습인데요, 아카이브 보라에서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함께 보면 좋을 아카이브 보라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려 합니다.

 

매해 3월 8일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는 여성의 권리 증진과 사회 모든 분야로의 여성 진출 확대를 모토로 하는 행사가 개최됩니다. 이렇게 범세계적 움직임이 된 여성의 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857년 미국 뉴욕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거리로 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인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지금까지 150년이 훌쩍 넘어가는 세월동안 끝없이 싸워온 여성들에 대한 영화가 아주 많습니다. 특별히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그동안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영화들을 엄선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남자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Man Makes History>

샐리 보스로이드 / 호주 / 2008 / 3‘

 

인류의 시작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샐리 보스로이드의 애니메이션 영화 <남자가 역사를 만들었다고?>는 고작 3분 남짓한 러닝타임동안 인류의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었는지를 풀어내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잔 다르크가 화형당한 1431년까지 여자는 필요 없으니 나대지 말라고!



무려 기원전 7억 5천만 년 전 단세포 생물의 출현에서부터 연대기 순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는 남성 나레이터가 있습니다. 이 나레이터는 역사가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는 건 고대인이 등장하는 백만 년 전부터라며, 대륙의 이동과 공룡의 등, 퇴장 등등 지구의 수 억년 역사를 제 멋대로 건너뛰어 버립니다. 이 남성의 역사에서 여성은 불의 사용과 함께 남성이 잡아온 사냥감을 요리하기 위해서 비로소 등장합니다. 남성의 잘난척하는 태도에 불쾌해진 ‘그녀’는 남성의 역사는 무시하고 여성만의 새로운 연대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히스토리가 아니라 허(Her)스토리라나 뭐라나...” 남성 나레이터가 투덜거립니다.



(2) <성난 그녀 아름답다 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

뉴욕 뉴스릴 / 미국 / 1967 / 17‘

 

1960년대 미국에서는 급진적인 사회 분위기와 아울러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 아래 새로운 페미니즘의 물결이 넘실거렸습니다. 여성들은 가사 및 돌봄노동, 출산과 낙태, 임금격차, 패션과 언어 사용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비정치적 영역에 머물던 자신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 억압으로 인지하고 삶의 조건 전반을 바꾸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완벽한 구조가 또 있을까? (중략) 1969년에만 천 끼를 차려냈고 설거지는 만 번 

청소는 150번 빨래 75번 장보기 99.5회 육아 백여 시간 애들 옷 수선하고 기저귀 갈고 단 한푼도 안 받고!



<성난 그녀 아름답다>는 60년대 미국에서 사회문제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 주류 미디어에 대항해 당시 벌어지던 저항운동의 양상을 대신 알리는 작품들을 제작했던 뉴스릴 운동의 일환으로 탄생했습니다. 작품 속 여성들은 뉴욕의 낙태권 집회에 참여해 게릴라 연극을 공연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의 허울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본이 이윤창출을 위해 여성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특히 흑인 여성들에게는 어떤 다중의 억압이 가해지는지 낱낱이 고합니다. 거의 반 세기 전 여성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사무치게 다가온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거리의 열린 무대를 둘러싼 여성들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호응할 때, 시공간을 뛰어넘는 뭉클함이 전해집니다.

 

(3) <레즈보포비아 Lesbophobia>

미 발케스탈, 세피데 아바사데, 애드리안 링스트롬, 아비드 버그만 / 스웨덴 / 2013 / 34‘

 

이번에는 좀 더 먼 나라까지 가보겠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4년 넬슨 만델라의 대통령 취임 전까지 오랜 시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리는 악명높은 인종차별정책이 존재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젠더, 성적 기호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국가임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며, 벌써 10년 전인 2006년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헌법이 뭐라던 사회가 상관 않는 게 문제예요


하지만 <레즈보포비아>를 보면 그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도가 시민들의 의식을 고양하고 진보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레즈비언들의 증언은 동성애자에 대한 살해와 강간 등의 극악한 혐오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엄혹한 시절부터 가족, 친구, 이웃을 포함한 남성들의 폭력에 노출되었을 레즈비언 여성들은, 시간이 흐르고 제도가 마련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은 급진적이죠. 그래서 레즈비언이 강간당할 수도 있습니다.


법적 장치가 존재함에도 혐오범죄로부터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정은 차별 금지법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결국 철회당하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함께 한 번 생각해볼만 합니다. 제도와 사회적 인식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요?


(4) <여성은 좋은 영화를 만든다 Women Make Great Films>

야스밀라 즈바니치 / 독일 / 2015 / 7‘

 

마지막으로,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특별 상영된 <여성은 좋은 영화를 만든다>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전 영화 제작자고, 제겐 질이 있죠. 영화계 많은 이에겐 이게 큰 문제가 돼요.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방해된 적이 없음에도요.



2015년 68회를 맞이한 칸 영화제는 사상 최초로 여성 감독의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제를 68번이나 치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성 감독이 연출한 개막작이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동안 여성 영화인의 작품 중엔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영화진흥위원회가 공개하는 주간 박스오피스 상위 20편의 영화 중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좋아해줘>(박현진 감독), <순정>(이은희 감독), <쿵푸팬더3>(여인영 공동감독)까지 3편 뿐입니다.


 <여성은 좋은 영화를 만든다>에 목소리를 모은 여성 감독들은 여성 영화인으로서 겪은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여성 영화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영화인들이 오랜 시간을 노력해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기반을 다진 유명 감독이거나 제작자라는 사실은 그들이 여성이라서 겪게되는 부당함을 타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이들도 이러할진대 이제 막 영화의 길로 들어선 수많은 젊은 여성 영화인들은 어떨까요.


작년 한 해 한국 여성들이 이룩한 수많은 성과 중 하나이면서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쟁점 섹션과 오픈 토크에서도 만나보았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지난 2월 25일로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아무리 지쳐도 포기할 수 없었던 1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물고 늘어져야 할 것들이 많겠지요. 올해 여성의 날이 새로운 기운을 끌어모아 진열을 재정비해서 한 걸음 더 내딛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카이브 보라도 함께 합니다!


글: 김민경 (아카이브 보라)


아카이브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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