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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동두천> 김진아 감독 인터뷰

 

 

VR(Virtual Reality)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VR시네마 <동두천>에 대해 잘 알고 계실텐데요, 지난 9월 막을 내린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베스트 VR 스토리상(Best Virtual Reality story)’을 받으면서 <동두천>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베니스국제영화제보다 한 발 앞 서 <동두천>을 발견하고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로 상영한 영화제가 있었으니! 바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입니다. 지난 6월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VR프로젝트 포럼-<동두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동두천> 상영과 함께 김진아 감독, 강지영, 김선아 프로듀서, 전우열 촬영 감독 등을 초청하여 생생한 제작과정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동두천>은 최근 제58회 그리스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VR상을 수상하는 등 올해 최고의 VR화제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UCLA 영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진아 감독에게 수상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며 <동두천>에 대한 전화 인터뷰를 나누었습니다.

 

 

Q: <동두천>1992년 발생한 '윤금이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을 극영화 작품이 아닌, VR 작품으로 제작하시게 된 이유 또는 계기가 있으신가요?

 

 

A: 1992윤금이 살해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저는 대학교 1학년이었어요. 사건 자체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더 충격 받았던 지점은 윤금이씨 사체 사진이 아무렇지 않게 언론에 노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퍼뜨려야 한다는 측과 노출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측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그때부터 재현의 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어요. 하지만 영화 매체가 근본적으로 관음의 미학이 내재되어 있다 보니 피해사건의 이미지가 남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던 중, VR을 접하게 되었고 VR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라면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VR1인칭 시점이 가능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완전하게 그 상황 속에서 적극성을 가질 수 없는 수동적인 자세가 가능합니다.

수동적인 입장이지만 경험이 공유되어지는 모순적인 명제를 가지고 <동두천>제작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으로 <동두천>은 관람객이 피해자도 아니고 그저 관음하는 사람도 아닌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Q: 일반적인 영화 촬영과 편집과는 다른, 360VR촬영과 편집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360도 촬영이다 보니 프레임이 없는 것 자체가 생소했어요. 어떻게 보면, 영화의 프레임자체가 반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거기에 편집이 더해지면 감독의 권한이 무한정 커지게 되죠.

그런데 VR은 프레임이 사라지면서 관객이 어느 방향이든지 다 볼 수가 있어요. 관객들이 모든 방향을 자유롭게 바라보면서 작품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촬영을 할 때도 이러한 점들이 그대로 반영이 되죠. VR에는 프레임은 없지만 메인뷰가 있습니다. 관객들이 정면을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장면을 메인뷰라고 하는데, 촬영할 때 메인카메라를 메인뷰 위치에 두고 찍습니다.

그런데 메인뷰를 찍고 나면 메인뷰를 중심으로 앞, 뒤 장면도 모두 마음에 들어서 다 찍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이미 메인뷰를 촬영할 때 앞, 뒤 장면이 모두 한꺼번에 촬영되었기 때문에 다시 찍을 필요 없이 해당 촬영본을 그대로 사용하면 되는거죠.

그리고 편집을 할 때 샷 길이를 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적당한 샷 길이를 찾기 위해서 같은 클립을 여러 번 보면서 편집을 해나갔습니다. 그런 뒤, UCLA 교수들과 함께 시연 테스트를 하며 그때마다 나오는 코멘트들을 메모하면서 편집의 방향성을 잡아 나갔습니다.

 

 

 

Q: 서울국제여성여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 상영은 물론이고 미국, 이탈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동두천>은 상영되었습니다. 해외에서 <동두천>을 접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관객들은 반응은 같지만, 달랐어요. “파격적이다라는 공통적인 반응은 있었지만 공포감을 느끼는 정도가 모두 달랐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당시, 한국 여성관객들은 모두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UCLA 시연 테스트 당시에는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접한 VR콘텐츠는 바다 속에서 물고기를 보는 체험이었는데 전혀 무서운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서움을 느꼈어요. VR을 접하는 관객들이 무서움을 느끼는 이유가, 관람객 자신의 몸은 사라지는데 시선은 살아 있는 원초적인 공포심이 있는 것 같아요.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공간이 주는 공포감이 있습니다.

<동두천> 제작을 위해 동두천을 꽤 여러 번 갔는데, 조감독, 제작실장, 저 이렇게 3명이서만 갔던 적이 있어요.

그때 두 명은 카메라로 테스트 촬영을 하고 저는 배우의 역할이 되어 동두천 밤거리를 걷는데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멀리서 미군이 걸어오기만 해도 너무 무서운거죠. 한국여성들에게는 사건에 대한 공포심이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동두천>을 보며 공포감을 느끼는 정도는 한국여성들에게 압도적으로 크고 다음이 아시아 여성들, 유색인종 여성들, 그리고 한국 남성들, 백인 남성들 순인 것 같습니다. 이는 후기 식민주의적 감정과도 연관된다고 봅니다. 피해자로서 누가 더 깊게 공감하는가에 대해 지독하리만치 정확하게 나뉘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Q: 한 인터뷰에서 "VR은 한 마디로 타자와 완전히 공감하는 경험을 유도하는 매체다"라고 말씀해 주기도 하셨는데요, 감독님의 다음 VR프로젝트에서 전달하고 싶은 공감 경험의 주제는 무엇인지요?

 

A: <동두천>과 같은 주제로 확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미군 범죄들, 가해 당사자들이 의도를 가졌든 그렇지 않았든 수 없이 발생했던 미군관련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성희롱 관련된 뉴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희롱 같은 경우에는 개념이 모호하고 애매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는 성희롱을 예방하는 교육의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말로서 교육될 수 있는 부분에는 명확하게 한계가 있어요.

그리고 이미지가 범람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범죄인지 아닌지 모호한 지점들이 생기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최근에 재미있게 본 VR연구 작품이 있습니다. 다른 인종이 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인종이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변화를 느껴보는 작품입니다. 공감을 키워드로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죠. 이러한 체험은 나와 너를 구분 짓는 경계들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런 순간에 자신이 노출되었을 때 공감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며 교육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진아 감독은 여성의 몸을 화두로 하는 여성 중심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기작 준비와 함께, <동두천> 상영요청이 물 밀 듯 들려와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동두천>은 현재 30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은 상황이며, 전 세계에서 한 주에 4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네덜란드 필름뮤지엄 아이(Film Museum EYE)와 함께 <동두천>을 주제로 자체적인 포럼을 준비할 만큼 <동두천>이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과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영화를 VR로 확장해 나가며 영화 속의 여성, 영화로 표현되는 여성, 영화의 주제를 밝게 빛내는 여성으로 전 세계에서 이름을 떨쳐 나가고 있는 김진아 감독님을 응원합니다!

 

 

 

정리: 손지현 교육사업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