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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아시아단편경선 작품상 & 관객상 <자유연기> 김도영 감독 인터뷰




김도영 <자유연기>


Q. 여배우로서 김도영의 경력과 삶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독립영화에도 다수 출연한 여배우로서 한국 독립영화 현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저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극단을 중심으로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독립영화와 몇 편의 상업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상업영화는 주로 학교 선배님들 작품에 출연했고요. 독립영화는 이숙경 감독의 단편 <다시>를 찍은 것을 계기로 장편 <어떤 개인 날>까지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의 독립영화는 선후배들이나 몇 인연이 있는 감독님들 작품에 조·단역으로 촬영하였고, 심혜정 감독님 작품에 몇 편 출연하면서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영화의 현장은 모인 사람들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작업환경만을 놓고 보자면 제작비가 여유로운 곳은 아니어서 몸이 아주 편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늘 만들고자 하는 열정과 의의로 가득 차 있어서 정신적으로는 자극도 되고 흥미로운 현장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제가 참가했던 영화 작업 현장에서는 대체로 상업영화 현장보다 훨씬 배우에 대한 존중도가 높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던 거 같습니다. 



Q. 감독 데뷔작인 단편 <자유연기>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쟁 대상 수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A. 우선 처음 제 영화에 주목해 주셨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얼떨떨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덜덜 떨면서 수상소감을 말씀드렸던 기억도 납니다. 이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다른 영화제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던 거 같습니다.


<자유연기>는 제 자전적 작품이었는데 제 인생에서 한 번은 털어내고 가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매우 놀랐고, 공감하셨던 수많은 여성들의 삶에 대해 제 자신도 깊게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혼을 담아 연기해 주셨던 강말금 배우님도 이후에 배우로서의 길을 잘 닦게 되어서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김도영 감독



Q. 감독님께서는 이숙경 감독의 <어떤 개인 날>(2008)에서 주인공을 맡은 바 있는 연기자 출신 영화감독이십니다. 연기자와 연출자 간의 차이는 무엇이며, 배우에서 감독으로 경력을 바꾼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제 경우, 연기자와 연출자의 입장 두 가지를 다 경험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는 어느 곳에 서서 작품을 바라보느냐였던 것 같습니다. 연기자일때는 제가 맡은 배역의 입장에서 전체를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연출을 할 때는 작품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전체를 조망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배우로서는 바라보면 배역의 디테일들이 좋아지게 되고, 연출로서 바라보면 전체적인 밸런스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에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싶어서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연기 수업 시간에 보는 마법 같은 장면들에 끌려서 연기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연극을 계속하다가 잠깐 연극을 쉬는 동안, 간단한 단편 영화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을 임신 기간 내내 편집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영화제에 가면서 영화 연출에 대한 막연히 좋은 기억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출산 후, 무대로 복귀하고 싶었지만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연극은 오랜 기간 연습을 하고, 주로 밤에 공연을 하니까요. 결국 육아를 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쓰는 글이란 게 문장력이 필요한 글이라기 보다 제가 평생 익숙했던 희곡이나 시나리오 형태의 글이었습니다. 시나리오의 글이란 결국 만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 영화 연출을 결심했습니다. 이후 한예종 전문사 연출 과정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연출할 때 배우로서의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요? 앞으로 감독님처럼 배우에서 감독으로 전업을 원하는 여성 영화인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아무래도 배역의 디테일이나 캐릭터의 묘사에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신 대사가 많아져서 종종 고생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영화를 전공한 친구들보다 시각화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면을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배우들이 대사와 캐릭터를 보는 면이 아무래도 많이 훈련되어 있어서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배우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영화 연출로 진출하는 것이 영화계 토양을 풍부하고 훌륭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양한 서사를 경험할 수 있고, 다양한 시선들이 들어오니까요.



이숙경 <어떤 개인 날>


Q. 많은 여성들이 미투 운동 이후 가부장제에서 오는 일상의 억압에 반대하는 직접적인 행동을 용감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페미니즘에 대해 최근에야 살펴보게 되면서 놀라는 점은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가와 세상은 얼마나 잘 변하지 않는가였습니다. 억압 속에서 일생을 보낸 여성이 어느 날 눈을 떠서 자신이 어떤 모양의, 어떤 지형의 땅 위에 서있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건 매우 의미 있고  용감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최근에 ‘페미니즘 : 닫힌 문을 열고’라는 다큐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0년 전에 여성 운동 시위에 나왔던 분이 딸과 함께 다시 시위에 나오면서 아직도 그대로라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떤 분은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냐고 이야기합니다.


쉽지 않은 걸음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실제로 미투 이후 몇 년 동안 한국의 지형도 크게 변화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걸음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서 우리 후세의 세상은 좀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Q.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를 꿈꾸는 여성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나 경험에서 오는 지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감히 조언을 할 위치는 아니고요, 다만 자신의 미덕을 믿고, 내면의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원하는 방향에 서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결국 어느 만큼 높이 올라가는가가 아니라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가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마음 편하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결코 늦은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 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이는 48세였습니다. 제 인생 가장 용감한 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디 꿈을 잃지 마시고,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