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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 주유신 위원장 인터뷰





Q. 영화진흥위원회 창사 최초로 성평등소위원회가 구성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러한 소위원회가 만들어졌는가?


A.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소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통해서 특정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소위원회(이하 소위) 설치를 명문화하고 있다. 소위는 7인 이내의 위원회 위원 및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고 위원의 임기는 1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영진위는 그동안 여러 종류의 소위를 설치, 운영해왔는데, 성평등과 관련된 소위는 이번에 최초로 설립되었다. 


보통 영진위 비상임위원들이 1개 정도의 소위를 맡아서 운영하는데, 이번에 새로 소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제가 ‘한국영화성평등소위’ 구성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각급 영화단체로부터 소위 위원을 추천받았고, 그 결과 본인을 포함하여 7인의 위원으로 2018년 9월에 소위가 출범했다. 이 소위는 1. 영화산업 내 성평등 기반 조성 2. 영화업계 내 성평등 환경 조성 및 성평등 재현 한국영화 지원정책 개발 3. 성평등 및 다양한 소수자 집단 영화정책 자문 등을 주요 직무로 한다.



Q. 성평등소위원회에서는 누구와 함께 일하고 있는가?


A. 영진위 위원으로 제가 들어갔고, 외부 전문가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선아 집행위원장과 조혜영 프로그래머, 김선아 단국대 교수, 서은정 프로듀서, 박현진 감독, 김진 프로듀서조합(PGK) 운영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장은 제가 맡았다.


소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참여 여부, 독립영화 분야나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 추천인의 참여 여부 등이 논의가 되었으나, 남성의 경우에는 기존에 한국영화의 성평등 이슈와 관련하여 지속적인 발언이나 활동을 한 분들을 찾기가 어려웠고, 현재 상업영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 부문은 여성 영화인의 활동이 더 활발한 편이라서 우선은 상업영화에서 한국영화의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에 주력하자는 입장에서 현재와 같은 소위의 구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Q. 성평등소위원회가 발족한 후 지난 몇 달 동안 어떤 일을 했는가? 


A. 우선 소위는 장기적인 목표로 3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1개년: 성평등 지원 사업 중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에 집중해 여성 중심 서사 그리고/또는 핵심 창작 인력

         (감독, 프로듀서, 작가)의 여성 비율을 50%까지 올린다.

2개년: 영진위가 운영하는 모든 직접 지원 사업으로 위의 원칙을 확대한다.

3개년: 모태펀드를 포함하여 영진위에서 운영하는 모든 간접 지원 사업까지 위의 원칙을 확대한다.


그리고 첫 번째로 2019년 하반기부터 영진위의 모든 사업의 심사위원 성비를 여성 50% 이상으로 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위해 2019년 상반기에는,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 심사위원의 풀을 최대한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2019년에 다양한 계획과 실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선 영진위의 한국영화 기획개발 사업,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젠더 다양성 확대를 위해서 심사 운영 세칙의 개정을 통해 여성 참여 프로젝트가 절반 이상 선정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성평등의 관점에서 한국영화가 얼마나 불균형한 상태인지,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득하고 호소하는 캠페인 영상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의 일부 위원들이 참여하여 ‘(가칭) 국내 여성영화인의 산업 진출 현황 및 단계별 방해요인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용역을 약 6개월 동안 진행할 예정이다. 


작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과 함께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포럼’을 공동 개최하여, 성평등 이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향후의 대략적인 활동 계획 등을 발표했다.



Q. 성평등소위원회의 관점에서 한국영화 역사 100년 동안 가장 커다란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작년에 <씨네 21>이 ‘영화계 성폭력’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연재했던 인터뷰들에서 한 영화 스태프는 “오랜 영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난 100년간 영화만 생각했고, 5년 동안 노동을 생각했고, 이제 막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아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1960년대의 첫 번째 르네상스, 1970~80년대의 긴 침체를 겪은 후에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어쩌면 한국영화의 두 번째 르네상스라고도 할 수 있는 시대를 보내고 있다. 즉 산업, 문화, 인력, 자본 등의 모든 면에서 발전하고 다양화되고 성숙한 반면에 젠더 인식과 감수성은 여전히 변화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동안 제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게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지는, 여성 캐릭터를 찾아보기 힘든,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 흥행작 혹은 화제작들의 포스터들을 모아 놓은 한 장의 사진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여성이라는 젠더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관객들이 수용하게 되는 이야기와 관점에 있어서 젠더 불균형이 극심한데,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남성 영화는 흥행이 보장된다’는 근거 없는 공식, ‘남성의 스토리는 남녀 관객 모두에게 인기가 있지만, 여성의 스토리를 남성 관객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무의식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고, 이는 여성 중심의 서사나 여배우 캐스팅을 꺼리는 현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더 나아가서 종종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성적 묘사나 가학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여성 관객의 불편함이나 젠더 간의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한 개인은 물론이고 한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한 사회의 문화 다양성의 중요한 지표가 되는 영화는 분명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즉 사적 소유나 특정 기업의 독점 대상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공유와 향유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 만큼 특정한 젠더에 속한다는 이유로 영화 산업 내에서 기회의 상실이나 유무형의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관객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인간에 대한 성숙한 이해를 담고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제 영화정책의 한 원칙으로 ‘성평등’은 자리매김 되어야 하며, 이럴 때 한국 영화는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유능한 여성 영화인들의 진입으로 풍부해진 인력풀은 더 다양한 시선과 더 풍부한 스토리들을 내장한 콘텐츠의 창작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영화의 양적 확장과 질적 성장을 담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Q. 전 세계적으로 ‘스크린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구 구성 대비 특정 성별인 남성이 지나치게 많은 스크린(시간)을 점유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최근 한국 영화는 그 몸집을 키우고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는 와중에 여성차별적인 기획이나 제작이 속출하고 있다. 즉 스크린 위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무의식과 욕망만이 난무하는 반면 여성의 경험과 시선을 진정성 있게 천착하는 영화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소수의 특정 기업들에 의한 산업 독과점으로 인해 다양한 부문과 주체들 간의 평등한 관계와 공생의 가능성이 크게 저해 받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시장의 자체적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재의 산업적 구조 속에서는 무엇보다 영화산업 주체들 간의 공생과 동반 발전을 위한 협의, 공적 자금 지원, 정책적 해결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큰 영화와 작은 영화, 투자-제작-배급-상영 등 영화산업 전 분야의 상생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이 필요한 동시에 한국영화의 다양성 증진과 관객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한 방안 역시 모색되어야 한다. 제작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에 대한 제작 지원 확대와 중소규모 배급사와 제작사를 위한 정책적 지원 역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다.


그런데 최근 여성주의적 목소리가 강하게 사회 전반에 퍼지는 분위기 때문인지 한국 영화의 지형도에도 약간의 균열이나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아울러서 일부 영화들이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매력적이고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선보이거나 여성 간의 관계 혹은 여성의 에로티시즘에 집중했고, 여성의 시각을 통한 역사 쓰기를 시도했으며, 십 대 소녀들이 처한 다양한 사회적 현실을 힘 있게 묘파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은 여성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내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배제하거나 침묵시키는 혐오의 정치, 남성성의 재수립과 남성 연대의 공고화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사회적 불안을 무마해버리는 시대역행적인 시도 그리고 여성의 경험과 스토리를 재현의 장에서 비가시화시키는 반여성적 분위기에 대한 한국 영화의 문화정치적 대응이자 답변이라고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다.



Q. 성평등소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에서 상위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체육부 등 유관기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현재 한국 영화산업이 보여주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습은 남성 중심적 산업문화의 지속, 우수한 창작 인력의 영화계 이탈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여성의 영화계 진입과 영화계에서의 생존 모두를 위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장기적 발전의 가능성까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한국 영화는 그 문화적 대표성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에 걸맞은 모습, 즉 다양성에 기초한 새로운 상상력과 시민 사회를 고르게 대변하는 민주성을 갖출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의 완수를 위한 정책적 개입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본다면, 그러한 책임과 고민의 최전선에 서 있는 주체가 바로 영진위이다. 영진위는 과연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생태계가 장기 지속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담보해주는 것인지, 그 산업적 발전과 문화적 수혜가 평등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 영화산업을 불균형하고 불건강한 것으로 구조화하는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그리고 ‘흥행 양극화와 중예산 영화의 약화’가 중요한 쟁점인데, 이의 해결은 영화계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안철수는 의원이었던 2016년에, 조승래 의원은 2017년에 각각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영화 상영업 겸업 제한, 특정 영화의 스크린 점유 제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설치 의무화 등을 담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영진위와 문체부가 영화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성평등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기 내에 꼭 이루고 싶은 정책 등이 있다면 말해달라. 여러 개여도 상관없다. 


A. 우리는 이미 해외 여러 나라들이 성평등 정책에 있어서 성공한 사례들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분명히 배울 지점들이 있는 동시에 한국적 현실에 걸맞은 정책의 필요성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영진위 성평등소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3개년 계획이 꼭 실현되기를 바란다. 


사실 영진위 비상임위원으로서 저의 임기는 올해 10월까지이다. 남은 몇 달 동안 이룰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성평등소위의 위원장이 되는가를 떠나서, 향후에도 영진위가 한국영화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또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큰 틀에서의 성평등 정책을 두 가지 방향으로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2019년∼21년에 이르는 3년 안에 공적 기금의 남녀 동수 지원이라는 50:50 타깃제(target)를 달성하기 위한 장단기 계획의 수립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영화진흥위원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그리고 여성영화인모임이라는 세 주체의 적극적인 협력과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2019년에는 영진위 심사위원 제도의 개선, 성평등 캠페인 시행, 성평등 정책 관련 연구 등의 구체적인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