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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FEATURE] <까치발> 권우정 & <어른이 되면> 장혜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부문에서 상영되는 <까치발>은 권우정 감독이 들고 온 오랜만의 신작이다.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며 관객들을 만나는 감독의 삶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뻐하고 걱정하는 새로운 삶으로. 그런 삶의 변화가 <까치발>의 토대다. 미숙아로 태어난 딸 지후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까치발로 걷는다. 이는 뇌성마비의 징후일 수 있지만, 확진이 가능한 시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불확실한 시간을 통과하며 권우정 감독은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영화는 그렇게 타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며, 불안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끈질기고 용감하다. <농가일기>(2004)와 <땅의 여자>(2009) 이후,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 권우정 감독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2018)에서 동생 혜정의 탈시설 이후를 카메라에 담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함께 살기를 희망했던 장혜영 감독을 대화에 초대했다. 

 

 

<땅의 여자> 이후 오랜만의 영화입니다. 장애 가족의 이야기가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감독 자신이 자기 삶 속 인물로 직접 등장한다는 점에서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장혜영_ 그럼, 어색하지만 자기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웃음) 늘 두 종류의 자기소개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되면>을 만든 감독 장혜영’이라고 창작자로서의 저를 소개하지만, ‘2017년에 동생의 탈시설을 돕고 지금 쭉 같이 살고있는, 발달장애 당사자의 비장애 형제입니다’라고 덧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둘 다 저한테 소중한 것이고요. 감독님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권우정_ 저는 9살 난 한 아이의 엄마고요. (웃음) 8년 만에 다시 영화로 만나게 된 권우정입니다.

 

장혜영_ 어떠세요? 8년 만에.

 

권우정_ 마음이 앞서가는 걸 누르려고 해요. 독립영화의 달라진 현실도 있고, 하루는 붕 떴다가 하루는 실망했다가 감정이 계속 오가는 부분들이 있죠. 그럼에도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었던 건,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권우정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걸 포기할 수 없었던 거죠. 8년 동안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배우자로, 쉬지 않고 워킹맘으로 살아왔지만, 그것만으로 저를 규정하는 데엔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있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자꾸 그렇게 다시 돌아오는 감독이 있을 때, 다른 여성 감독들도 아이를 낳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계속 자기 삶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장혜영_ 사실 돌아오신 것 자체가 하나의 뉴스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으로서의 삶, 아이를 키운다는 것, 사회적 약자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삶인 장애’ 이 세 가지가 중요한 화두인 시기 같거든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8년 동안 달라진 여러 가지도 있겠죠.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예상과 비슷하던가요?

 

권우정_ 관객을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에요. 저는 이 영화가 엄마나 여성의 이야기로만, 아니면 지극히 개인의 일상이나 장애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누구나 자기 위치에서 자기 삶을 응시하고 솔직해질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전주에서 관객들이 저에게 그런 피드백을 해주셨죠.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특정한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편집할 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죠. 제가 가편을 많이 만드는 편이라 그때마다 제 모습을 수십 번 수백 번 봐야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다큐멘터리 감독의 삶은 영화와 계속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 도가니 같았던 변화의 삶을 영화로 정리하지 않으면 다시 다음 단계로 가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완성했던 것 같아요.

 

권우정 ⓒ이영진

<까치발>을 만드는 데 있어 8년이란 시간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8년 동안 내내 영화 작업을 하신 건 아닐 텐데요.

권우정_ 처음부터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개인의 내밀한 일상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죠. 어쨌든 아이가 뇌성마비일 수 있다는 얘길 듣고, 돌 때부터 계속된 불안이 제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장애나 장애의 삶에 대해 알게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애 당사자와 평생을 같이하는 부모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했죠. 그렇다고 <땅의 여자> 때처럼, 빈집을 구해서 1년 반을 거기 살면서 영화를 만들었던 방식으로는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분들 스스로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참여형 다큐 방식을 생각한 거예요. 그게 팟캐스트였죠. 2013년에는 그렇게 일종의 참여형 다큐 위주로 촬영했어요. 그런데 피칭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왜 굳이 이걸 찍는지를 묻잖아요. 이유를 말하니까 거기 묻어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제 가족의 비중이 커지고 오랫동안 안 하려고 했던 이야기들을 드러내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8년이 걸린 거죠.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중 하나에는 아이의 입학도 있었어요. 거리 두기를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게 8살이겠다고 생각해서 엔딩은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거로 끝내려고 했죠.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장혜영_ 괜히 8년이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봤던 것 같아요. 특히 “내가 만들려고 했던 건 이런 거였는데 점점 변하고 있고, 내가 이걸 왜 찍는 거지. 완성할 수 있을까...”  영화가 이 변해가는 과정을 다 보여주잖아요. 또 중간에 지후 씨나 남편이나 감독 자신의 모습도, 어떻게 해석될지 모르지만 엄청 솔직하게 드러내고요. 그러기까지 생각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고 시간도 많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영화를 이렇게 끝맺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게 언제쯤인지 궁금해요. 자기 자신을 거리 두고 볼 수 있게 되는 부분에서 출구가 보인다고 생각했거든요.

 

권우정_ 영화가 편집되기 전에 이미 촬영하는 과정에서 상담도 하고 여러 가지 겪었잖아요. 틀거리는 이 방식으로 쭉 갔던 것 같아요. 그 전부터 그런 센 장면을 포기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웃음) 제가 50여 명의 많은 부모님 인터뷰를 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지만, 편집하면서 볼 때는 그게 제 얘기하고 자꾸 안 붙는 거예요. 그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좋은 말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런 좋은 말이 나오기까지 이분들이 감정적으로 얼마나 많은 부딪침과 여러 과정이 있었겠어요. 그런 단계를 밟아서 이제야 거리 두기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아무런 일상이나 감정의 노출과 갈등 없이 들었을 때는 별로 이입이 안 되는 게 당연한 것 같더라고요. 나 또한 겪고 있는 그 감정들을 보여주지 않으면 관객들은 공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그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죠. 그분들의 인터뷰가 왜 중요한 지점인지 우리 가족을 통해 이야기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솔직하고 강한 장면들은 처음부터 빼려고 고려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거기에 인터뷰가 어떻게 붙을 수 있을지가 편집의 가장 큰 포인트였죠.

 

장혜영_ 그런 완급조절이 전 되게 좋더라고요.

 

권우정_ 사실 제가 욕먹는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웃음) 오히려 이렇게 저렇게 빼면 더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았죠. 제가 솔직한 것만이 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혜영 ⓒ이영진

장혜영_ 부모가 장애 당사자인 경우도 있을 텐데, 장애 자녀를 둔 비장애 부모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신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권우정_ 집중했다기보다는 일단 제가 너무 궁금했던 거죠. 그분들을 통해서 답을 얻고 싶었으니까요. 처음에는 까치발의 불안을 아이의 불안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느 시점에서 엄마들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지 궁금했죠. 그런데 그렇게 극복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장혜영_ 그런 돌파하는 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납득하고 싶어”라고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남편분은 정답 비슷한 얘길 해주시잖아요. 남이 답을 줄 수는 없다고요. 그런데 나는 납득이 안 되고 불안한 거죠. 그런 자신의 해결 안 되는 감정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납득이 될 때까지 가져가신다는 게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들을 표현할 때, 감독님이 영화에 자기 자신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감독’과 ‘나’ 사이에서 고민스러웠던 부분도 있었을 텐데요.

권우정_ 이중적 시선이 사실 항상 고민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어쨌든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으로서의 시선도 보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다른 장치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편집하면서 어떤 돌파구가 있었으면 했죠. 그때는 이미 편집하고 있는 감독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관객들도 이 밀폐된 가족의 공간에서 좀 거리를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렇다고 너무 뚱딴지같은 외부의 공간은 아니었으면 해서, 뭐가 있을까 하다가 찾은 게 놀이터였어요. 거기서 감독의 시선이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장혜영_ 이건 <어른이 되면>이 개봉하고 꽤 많은 사람과 대화하면서 느꼈던 저만의 답답함인데요. 이게 어쨌든 영화인데, 영화로 만들기 위해 장치나 내러티브를 꽤 많이 고민했는데 그런 부분들은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장애 가족으로서의 생각과 아이덴티티와 삶’에 대해서만 조명받았던 것 같아요.

 

권우정_ 맞아요. 그런 부분이 있죠. 사실 <땅의 여자> 때도 사람들은 자기 삶의 가치관대로만, 보고 싶은 프레임으로만 영화를 보는구나 싶었어요. 그것까지 내가 억지로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것일 테고요. <까치발>도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몇 가지 대사만이라도 사람들한테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까치발>

장혜영_ 어떤 대사인가요?

 

권우정_ 저한테 큰 임팩트가 있었던 건, 장애 당사자인 김지수 선생님의 말이었어요.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괜찮아”였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지후한테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싶었죠. 그건 단순히 지후한테만이 아니라 저에게도 그렇고요.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괜찮다는 얘기를 못 해줬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또 하나는 초반에 질문했다가 나중에 정리하면서 다시금 느낀 건데요, 정점순 장애 자녀 어머님의 말이죠. 저는 계속 이 힘듦과 어려움을 다른 거로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이 어떤 거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고 얘기하잖아요. 그게 마치 비관적으로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게 그냥 삶이라고 말씀하셨던 거죠. 그게 저한테는 아이하고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과정이기도 하고 제가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해요.

 

장혜영_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장애가 개인한테 귀속되는 거라고만 생각하지만, 이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래서 잘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인 메시지나 변화가 필요한 것이잖아요. 그런 부분을 전달하고픈 유혹이나 충동은 없으셨어요?

 

권우정_ 그전 작품부터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땅의 여자>도 그렇고 <농가일기>도 그렇고요. 각자 감독에 맞는 작업 방식과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액티비즘적인, 사회고발을 하면서 그걸 풍자할만한 쾌활한 감독은 아니기 때문에. (웃음)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는 게 제 몫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제 얘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혜영_ 전 보면서 저희 어머니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안에 나오는 수많은 어머니의 공통점을 많이 갖고 계시고 아직도 “괜찮아”라는 말을 못 하세요. 하지만 그런 어머니를 제가 객관화해서 이야기하기도 참 어렵죠. 그게 상처가 되기도 할 테니까요.

 

권우정_ 그럼요.

 

장혜영_ 그런데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면, 그 안에 있는 자신을 여러 번 만날 것 같고 자기와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와 비슷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것으로요. 제가 부모들의 인식 교육 같은 걸 하는 데 가서 조심스럽게 꺼내는 얘기가, 사랑하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이 영화 안에 그 주제가 너무 잘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엄청 소중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까치발>

그것이 녹아있기까지 감독님이 겪은 혼란과 고민의 시간이 많았던 거잖아요. 그 중에서도 딸 지후와 함께 감독님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엄마처럼 살기는 싫어’라는 딸의 마음 같은 게 있는데, 그 부분을 건드리는 장면이거든요.

권우정_ 그렇죠. 저는 너무 신기했던 게, 마녀 루시가 나오는 동화책을 지후가 너무 좋아했던 거였어요. 그게 보편적인 동화는 아니에요. 외국 지인에게 받은 외국 동화거든요. 그걸 제가 많이 읽어주니까 아이가 외워서 얘기하고 그랬죠. 그런데 그 내용이 우연히도, 서로 너무 다른 존재인 마녀 루시와 천사 엠마의 이야기인 거예요. 다른 존재랑 같이 살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서로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웃음) 나와 아이의 삶이 계속 그 책처럼 가고 있는 게 재미있기도 하면서 ‘아, 내가 마녀였구나.’ 싶은 거죠.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서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는 건 마녀와 천사가 평생을 같이 사는 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그건 아이뿐만이 아니라 남편이나 동거인 누구하고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지후가 “노력해볼게”라고 하는 것처럼 평생 노력할 수밖에 없겠고요. 사실은 엄마하고의 감정도 그래요. 노력해야 하는 사이죠. 엄마한테 제 마음을 고백하기까지 쉽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걸 드러내는 게 매우 중요했어요. 그럼으로써 내가 그동안 엄마에게 가졌던 애착의 관계를 또다시 딸에게는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지점인 것 같아요.

 

장혜영_ 많은 사람이 볼수록 더 많은 걸 발견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권우정_ 그랬으면 좋겠는데, 포커스를 맞추지 않으면 배급이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계속 내 입장을 고수하면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아니면 타협해야 할 부분이 있는 건지 참 고민이에요.

 

장혜영_ 맞아요. 저도 같은 고민이 있었어요. 저는 마지막까지 예고편이 안 나오더라고요. 계속 제가 생각한 영화의 매력은 그게 아닌데 싶었던 거예요. 영화에서 저는 되게 우울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고, 발랄하고 엉뚱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제 동생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어렵고 지겹게 만들면 동생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농담을 툭툭 던지고, 그 템포로 영화가 앞으로 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튼 많은 사람이 <어른이 되면>을 장애인의 감동적인 극복 이야기로 보는 지점이 있었죠.

 

<까치발>의 예고편을 상상한다면, 어떤 예고편이었으면 하시나요?

권우정_ 음 사실 제가 가수 시와 씨와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땅의 여자> 예고편에 그분의 음악이 들어가면서 서로 알게 됐는데, <까치발>에도 그 노래가 나와요. 영화에 어머님들의 인터뷰만 나오다가 그분들이 자녀와 함께하는 일상이 나오잖아요. 그때 저희 아이 입학식에 가기도 하고요. 그 장면에 나오는 노래예요. ‘작은 씨’라고. 다들 가슴속에 불안한 까치발을 품고 있지만, 그렇게 대수롭지 않고 평온하게 보내는 일상의 모습들이 되게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빛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모든 사람이 사실은 극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정서가 슬픔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평온함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저한테 되게 힘이 됐던 것 같거든요. 아 나도 이렇게 가겠구나, 싶은 거죠. 예고편은 제 몫이 아니긴 하지만. (웃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바로 그런 감흥을 주는 것 같아요. 딸 지후가 멀리까지 갔다가 다시 뛰어오잖아요. 말씀하신 일상적이면서 슬픔으로 귀결되지 않는 그런 정서가 들어있죠.

권우정_ 그건 정말 찍어놓고도 너무 고마웠어요. 지금은 절대 안 그렇거든요. 나를 위해 돌아보지 않아요. (웃음)

 

장혜영_ 지후 씨는 영화를 봤나요?

 

권우정_ 지후는 아직은 못 봤어요. 조금 더 큰 다음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좀 흐른 다음에 이 영화를 보면,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가 너를 사랑한 방법과 그 사랑을 지켜낸 방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장혜영_ <까치발>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요?

 

권우정_ 한 문장이요? 이게 참 8년의 시간을 정리하려니. (웃음) 음... 까치발은 아이의 까치발이 아니라 제 까치발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인정하기까지가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고요. 누구나 다 자기 까치발이 있을 것 같은데, 그 까치발을 가끔은 그냥 괜찮다고 얘기해주면 좋겠어요. 그건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을 거고요. 받아들인다는 말은 너무 어려운 것 같고, 그냥 괜찮다고 얘기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어요.

ⓒ이영진

장혜영_ 다음 작품도 벌써 구상하고 계시나요?

 

권우정_ 그렇게까지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저희 아이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달라고하거든요. 그런데 저도 끊임없이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험난한 과정에서도 영화를 꼭 만들려고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위치에서 내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감받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언젠가 또다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게 뭔지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는 것 같고요. 계속 제 나이와 환경에 맞는 그런 영화를 찍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좀 더 그릇이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가끔 힘들 때 봤던 영화가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파트리시오 구스만, 2010)인데, 그걸 보면서 많이 느꼈죠. 팔순이 됐는데도 저런 영화를 찍을 수 있다니, 저런 울림을 줄 수 있는 혜안과 철학이 있구나, 하고요. 그래서 단순히 영화만 찍기보다 계속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아야겠다 싶어요.

 

이제 마무리할까요?

장혜영_ 하고 싶은 얘기야 많지만, 오늘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웃음)

 

권우정_ 영화제 때 술 한잔해요. (웃음)

 

끝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을 앞두신 소감을 듣고 싶어요.

권우정_ 사실 지금 여성영화제의 활력과 에너지는 영 페미니즘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고유 관객층들도 기혼여성이나 엄마들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어요. 계층이 좀 확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른 삶의 공감대를 얻는 것도 매우 중요한 지점이잖아요. 여성영화제 초반에는 키즈카페 같은 아이들 돌봄 시설도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볼 수 있었죠. 저도 여성영화를 많이 보고 싶고, 사실 한국 사회에선 페미니스트로 살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좀 더 갈등 구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결혼이나 아이에 관한 부분도 뻔한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을 공론화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으면 하고요. 결혼하지 않은 비혼 여성들의 입장에서도, 자기 엄마와의 관계나 나를 둘러싼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의 변화 속에서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그런 영화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장혜영_ 오늘 감독님과 얘기해서 너무 좋았어요. 돌아오신 에너지가, 박력이 어마어마해요. 그걸 만나니까 느끼게 되네요. 반드시 다음 작품 하시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감독님의 더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이영진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리버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데일리는 영화전문웹진 리버스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