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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INTERVIEW] [필름X젠더] 주인공 신승은, 오지수 감독

"응원 받아서 좋았다"

개막식 퍼플카펫에서 좌측부터 나윤경 양평원장, 오지수 감독, 신승은 감독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주관하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단편영화 제작지원 공모사업 [필름X젠더]의 첫 번째 주인공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젠더화된 일상 문제를 주제로 한 공모에서 신승은 감독은 예술계 내 젠더 격차에 관한 문제를 포착해낸 <프론트맨>으로, 오지수 감독은 학생과 교사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허밍>으로 각각 최종 당선작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에게 이번 작품이 첫 영화는 아니다. 신승은 감독은 전작 <마더인로>(2019)를 제21회 쇼트쇼츠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영한 바 있으며, 2016년 정규앨범 <넌 별로 안 좋아해>를 선보인 뮤지션이기도 하다. 오지수 감독은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소속으로 3년간 활동했던 미디어활동가이자, 세월호 생존자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어>(2018)의 연출자다. 두 감독에게 이번 작업은 어떤 의미이며, 현재 진행 상황을 들어보았다.

 

 

 

촬영은 모두 마쳤나. 

오지수  지난주에 막 촬영을 마쳤다. 며칠 전까지 부족한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촬영지가 안양이었는데 몸은 서울에 와 있어도 정신은 온통 안양에 있었다. 이제 편집이 남았다. 

신승은  나는 아직 촬영도 안 끝났다. (웃음) 2회차가 남았는데, 예산은 이미 초과했다.그래선지 프로듀서가 급여를 받지 않으려고 해서 한참을 설득했다. 어제 함께 술을 마시면서 계좌번호를 알아냈다. (웃음)

 

 

두 사람에게 각별한 해가 될 것 같다. 신승은 감독은 <마더인로>로 영화제를 방문했고 봄에는 두 번째 정규앨범 <사랑의 경로>를 발매했다. 오지수 감독은 다년간 몸담았던 4.16미디어위원회가 해산된 뒤, 독립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공모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오지수  작년까지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고, 감사하게도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 때는 상도 받았다. 솔직히 마음껏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과정 중에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팀을 꾸리는 상황도 있었고, 몸이 아프기도 했다. 다시는 공동작업 안 해야지, 영화는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자연스럽게 진로를 탐색하게 됐는데, 그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밖에 없더라. 공모에 당선돼서 영화를 찍겠다기보다는, 결과물을 하나라도 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아팠는데, 지금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문득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하다. (웃음)

 

신승은  상반기에는 앨범 준비하느라 바빴고, 하반기에는 감사하게도 <프론트맨>을 찍게 됐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도 병행 중이라, 사실 하반기에는 좀 쉬면서 장편에 도전해볼까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 일자리를 같이 찾아보다가 공모 소식을 발견했다. 종료까지 사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써둔 시나리오도 없어서 ‘안 되겠지’ 하며 기타 레슨을 하러 갔다. 수업을 10분 정도 진행했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아쟁이 아니라 트럼펫을 연주하는 학생이 주인공이었다. 어쨌든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둔다’며 남자를 주요한 위치에 세워주는 관행이 예술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실제로 엄마 역시 음악 전공자인데 비슷한 피해 경험이 있다. 그쯤 되니까 도저히 레슨에 집중이 안 되더라. (웃음) 30분 정도 수업을 진행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날 돌아가서 바로 시나리오를 썼다.

 

오지수 ⓒ이영진

면접 과정은 어땠나.

오지수  1차 발표 후에 PD가 예상 질문을 스무 개 정도 추려줬다. (웃음) 대부분 그 안에서 질문이 나왔고, 대답을 못 하거나 실수한 부분은 없었다. 실은 예상 질문 중 하나가 되게 고민스러웠다. <허밍>에는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데, “왜 주인공이 장애인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더라. 혹시라도 일종의 소재로써 장애를 소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컸다. 장애인미디어교육강사양성과정 수업을 듣고 있던 터라, 답답한 마음에 강사인 조한진희(반다)님께 물어봤다. 그때 “왜 장애여성이 주인공이면 안 되는데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 고민과는 결이 달랐지만, 그 대답이 내 걱정을 확 쓸어가 주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고 나름 생각을 정리한 후 면접을 봐서, 마치고 나서는 오히려 편안했다.

 

신승은  면접 때 심지어 떨어져도 괜찮다 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라, 힘을 북돋아 주는 자리라고 느꼈다. 보통 면접이라고 하면 늘 중년남성이 심사위원으로 나오고, 자신들끼리 포지션을 나눠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나. [필름X젠더] 면접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특히 “이 영화 보고 싶으니까 당락과 상관없이 꼭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힘을 얻었다. 살면서 힘들 때 면접 한번 더 보고 싶다. (웃음)

 

 

 

스태프 구성이 궁금하다. 두 감독 모두 작업 방향과 의미에 공감하는 작업자를 찾아내려고 애썼을 텐데. 

오지수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성폭력예방교육과 조직문화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성폭력예방교육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 신청했고, 조직문화 만들기 워크숍은 민우회에서 발간한 책자를 보며 연구했다. 정말 시나리오 수정하는 만큼 봤다. (웃음) 민우회 활동가와 동료 감독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최대한 현장에 맞는 내용으로 진행하고자 했다. <허밍>은 참가자 모두 이름과 직함 대신 별칭을 사용했고, 촬영이 끝난 지금도 서로 그렇게 부른다. 다들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신승은  가능하면 여성 스태프로 꾸리고 싶었고, 촬영부 한 명 빼고는 전부 여성이다. 전작을 같이 한 프로듀서부터 트위터에서 소개받은 분까지 경로는 다양하다. 배우 캐스팅은 오디션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경험 없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더라도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배우를 만나면 ‘갑’이 되지 않나. 그런 상황이 불편하고 오디션 페이를 지급하지 못하는 것도 신경 쓰여서, 최대한 찾아보고 배우에게 직접 제안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거의 최종미팅이라는 느낌으로 만나서 캐스팅했다. <마더인로>를 함께한 손수현 배우와 정수지 배우가 주연을 맡아주었는데, 정말 잘 맞아서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학교에서 촬영 허가를 받기가 수월했나. 

신승은  학교 섭외가 정말 힘들더라. 방학이라 안 된다, 개학이라 안 된다, 교장은 허락하는데 행정실에서 안 된다 등등.

 

오지수  공립은 공립이라서, 사립은 사립이라서 안 된다고 하더라. (웃음)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기획안을 들고 찾아갔다. 열 번 정도 하고 나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영화제 쪽에 공문을 요청했다. 그 후에는 공문을 보내고 섭외에 나섰는데, 어느 학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눈앞에서 공문을 구겨버린 사람도 있다. 제작부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화통이 터지더라. 학교 섭외가 프리 프로덕션의 절반이었다.

 

신승은  <프론트맨>은 국악고등학교가 배경이라 서울에 있는 모 예술고 두 곳에 연락했다. 한 곳은 영화든 드라마든 촬영을 허가한 적이 없다면서 거절했고, 다른 한 곳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순조롭게 진행하던 중이었는데, 2주쯤 지나서 주연배우의 출신 고등학교를 묻는 거다. 다른 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니까, 그럼 촬영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미팅하고 엎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지수  나는 PPT를 준비해오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어이없더라.

 

신승은  결국 선택하지 않았지만, 강당을 섭외하려고 시놉시스를 보낸 곳이 있다. 사실 시놉시스에는 <프론트맨>의 주제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되게 티가 안 나는 글인데, 그쪽에서 보더니 이거 좀 민감한 소재 같다는 거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라고 나와 있으니 문제 삼는 상황이었다. 전체 시나리오를 보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발송용으로 수정했는데, 그때 기분이 너무 더럽더라. 소주 마시면서 썼다.

 

신승은 ⓒ이영진

 

아쟁과 육상, 즉 예체능 영역에서 활동하는 10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감독 또한 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경험했던 차별은 무엇이었나.

신승은  꼭 교육 현장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 느끼는 것 같다. 교내 영화 동아리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왠지 남자 스태프가 꼭 있어야 할 것 같고 ‘내 현장에는 너무 여자가 많나?’ 하면서 신경 쓰기도 했다. 이번에 영화제와 인터뷰할 때 “스물한 살의 나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자도, 여자끼리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오지수  고등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는데,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근데 지금까지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처음에는 체력적으로 힘들다거나 다른 이유를 말하는데, 결국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성차별과 성희롱 문제를 이야기한다. 동료가 될 수 있던 사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떠나보냈다는 생각도 들고,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만든 영역을 안전하게 갈고 닦아 놓으면 그 친구들을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신승은  정말 공감한다.

 

오지수  현장은 안전할 수 있다. 아니, 안전해야 한다. 이번 작업에는 그런 생각이 되게 컸고, 덩달아 고민도 많아졌다. 고등학교 때 촬영을 배우고 싶어서 촬영감독인 남성 선배를 열심히 따라다녔다. 어느 날 촬영장에서 지켜보는데, 그 선배가 여성 배우의 허벅지를 계속 줌 인 하는 거다. 당사자 배우는 내 동기이자 친구였다. 열일곱 때 겪은 일인데, 아직도 친구한테 당시 상황을 말하지 못했다. 목격자이자 방관자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힘들었고, 그런 순간이 쌓이면서 좌절도 컸다. 결국 졸업해도 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작업하며 본인의 10대와 학창 시절도 많이 떠올렸을 것 같다. 학교에서 이 영화를 접하게 될 관객이 어떻게 바라봐주면 좋겠나.

오지수  초등학교 때 앞머리가 유행이었다. 여학생들이 머리카락에 신경 쓰느라 체육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문화가 생겼다. 놀이터에도 노는 아이가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신나게 그네를 타더라. 넓은 이마가 환하게 드러났다. 다른 친구들이 놀리거나 말거나 무척 즐거워 보였고, 오래도록 그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았다. 그 기억으로부터 출발하여 학생 문화를 고민하는 과정이 <허밍>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마스크를 자주 썼다. 미세먼지 때문이 아니라 화장을 안 해서였다. 그런 문화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되짚어보니, 그저 학생 스스로 원해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단순히 남성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문화가 생겨난 배경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신승은  여자가 다수고 남자가 소수인 집단에서는 흔히 남자의 ‘남성성’이 위협받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나. 예체능 계열 남학생은 졸업할 때 ‘여자가 돼서 나간다’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여자가 다수인 공간에서도 성차별은 존재한다는 것, 소위 여자애들 때문에 남자애가 기를 못 편다는 식의 역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학생보다는 솔직히 교사들이 많이 봐주면 좋겠다. 학생은 교육 받는 입장이지 않나. 관행이 바뀌려면 선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작품 준비하며 예술 전공자 여러 명과 인터뷰 했는데, 들어보면 남자는 오래하면 된다더라. 계속하다 보면 실력이 있든 없든 “안 그래도 남자 얼마 없는데 기회를 주자”는 식의 제안이 생긴다는 거다. 영화가 절망적으로 가닿지는 않았으면 좋겠지만, 여성이 커리어를 쌓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음, 나중에 상영회를 열면 <프론트맨>을 먼저 보고 <허밍>을 보는 것이 좋겠다. 고진감래처럼. (웃음)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리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