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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21살 SIWFF, 그리고 나] 그냥 너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

21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데일리는 영화제를 찾은 전세계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질문합니다.

21살의 시우프(SIWFF)에게그리고 21살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요. (편집자 )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램팀 원지안 자원활동가

21살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4년 전이니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편입을 했을 시기네요. 제가 '빠른'이거든요. 학창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는데, 그때부터 저 자신을 나노단위로 쪼개서 품평하곤 했어요. 미디어에서 요구하는 이미지가 되기 위해 항상 저를 옥죄었던 거예요. 그리고 대학 생활을 할 때 즈음에 총학생회에서 군기를 잡던 사건들이 뉴스에서 터졌어요. 저희 학교에서도 터졌거든요? 총여학생회에서. 저도 처음 겪어봤어요. 이전 대학에선 없었는데. 집합 명령이 떨어지면 화장 다 지우고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어서 잔머리 다 고정하고, 모여서 숨죽인 채 고학번 선배들을 기다렸어요. 저희끼리는 그걸 내리갈굼이라고 불렀어요. 고학번 선배가 후배한테 너희 정신이 해이해진 것 같다이런 식으로 말하고. 일종의 정신교육을 하신 거겠죠? 이걸 다음 학번이 그 아래 학번한테 하는 식으로 반복해서 내리갈굼이라는 명칭이 붙었던 거예요. 저는 사실 그 일뿐만 아니라 여러 개인적 사정도 겹쳐서 그 학교를 결국 자퇴를 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많이 아쉬워요. 어떻게 이 안 좋은 것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져 올 수 있던 건지. 우리 여자들이 서로 연대하면 더 멋지고 충분히 생산적인 영향력을 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논란이 터져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긴 했어요.”

 

 

그 악습이 어떻게 끊어진 건가요?

저는 그때 이해를 못 했어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겁먹어야 하는 걸까. 집합만 떨어지면 그날은 모두가 숨죽여서 떨었어요. 너무 어렸으니까, 또 전통이니까 침묵하고 따랐지만. 결국 용기를 낸 누군가가 그 일을 전해드립니다에 올렸어요. 그래서 크게 화두가 됐죠. 또 예술계 학부들에서 그런 사건이 연달아 터졌거든요. 신입생 몰카 사건이라던가, 이유 없이 군기를 잡는 그런 사건들. 지금은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용기 내서 올리신 분도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침묵하고 떠났지만요. 그래도 바뀔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당시 21살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한마디를 해 줄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세요?

현실적으로요? 그냥 너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요. 살 안 빼도 되고 얼굴에 뭐가 나도 되고 몸에 털이 나도 된다고. 제가 얼굴도 까무잡잡하고 털이 많은 편이어서 그게 항상 스트레스였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 외모에 대한 강박이 엄청 심했어요. 제 꿈과 전공으로 인해 스스로 코르셋을 조이는 행위가 극에 달한 거예요. 왜냐면 교수님들도 항상 "살 빼라" 그러고, 주변 동기들도 "너 얼굴 부었네, 어제 뭐 먹고 잤냐. 그래서 카메라에 찍히겠니?’" 막 그러고······ 주위 모든 사람이 품평했어요. 표준 몸무게인 친구들도 자기 너무 살쪘다고, 굶어야 한다고 그러고요. 그러다 결국 극단적으로 코르셋을 조이는 지경까지 갔었어요. 약도 다 먹어봤어요. 초절식? 이런 다이어트 정말 많이 해봤어요. 그러다가 먹고 토할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그때 너무 저한테 소름이 돋았어요. 뭐 때문에? 누굴 위해 이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다고 해서 희망찬 꿈에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점점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고만 있는데... 그래서 그때 탈코를 했죠. 1년 전이에요.”

 

 

탈코를 한 뒤에도, 코르셋-탈코르셋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있어요?

일단 주변에 탈코 한 사람이 전혀 없었어요. 1년 전, 연기랑 많이 멀어진 상태에서 탈코를 하고 저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인스타그램만 들어가도 전시가 많이 되어 있어서······ 그런 걸 보면 가끔 혹할 때가 있어요. 저는 제가 코르셋의 끝에서 탈코의 끝까지 경험해봤다고 생각해요. 1년 전에는 투블럭으로 밀고 화장도 안 하고 편한 옷만 입으면서 다녔거든요. 지금은 다시 꿈을 좇고 싶어서 코르셋을 조여야 하나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코르셋을 조이면서 스스로를 나락으로 내몰았으니까요. 그러다 아예 새로운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1년간은 코르셋과 완전히 멀어지기로 결심했어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살 빼려는 생각도 전혀 하지 말고 화장도 하지 않기로. 나의 편안함을 중시하는 시간으로, 1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퇴사하고 1주일 만에 여기 영화제로 온 거고요.”

 

 

코르셋의 기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판단을 내릴 순 없는 것 같아요. 어렵고 복잡하고...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 건데, 이게 잘못하면 여자들끼리도 검열을 해버리는 사태가 되어버리니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저 학교랑 사회가 바뀌길 원해요!”


글  윤다은 자원활동가

사진  조희경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