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플]

언니 영화제를 가다1_도쿄국제여성영화제


쿄국제여성영화제(
Tokyo International Women's Film Festival)는 1987년 시작되어 올해 24회를 맞는, 아시아에서 가장 언니격인 여성영화제이다. 영화제의 역사뿐 아니라 영화제 운영주체인 도쿄국제여성영화제 실행위원회(東京国際女性映画祭実行委員会)의 구성원들이 처음 시작할 때와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도 당연 언니들의 영화제다. 크게는 도쿄국제영화제의 한 부분이지만 여성영화제는 프로그램도, 상영도, 행사도 도쿄국제영화제와는 독립적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요츠야 부근의 세르반테스 홀을 메인 상영관으로 하여 13편이 상영되었고, 부대행사로 “아시아 여성영화인의 지금”이라는 심포지엄, 도쿄여성영화제 20주년 기념으로 제작되었던 다큐멘터리 <여성영화인에게 건배 女性監督にカンパイ!>의 DVD 출시에 맞춘 토크가 있었다.

도쿄여성영화제는 운영주체들의 성격이 다른 만큼 여러모로 대만여성영화제와는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매끈한 행사진행과 프레스와의 관계, 세심했던 게스트 환대와 같은 운영적인 측면들(환영선물들과 매 끼니마다 훌륭한 음식들, 끼니 사이사이마다 제공되는, 몽창 다 싸와서 우리 사무실에서 나눠 먹고 싶던 간식들), 중단편이나 신인감독들의 작품보다는 검증된 감독들의 작품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 등에서 모두 안정성이 느껴졌다. 관객 역시 젊은층보다는 중장년층 이상이 많으며 오랫동안 영화제를 찾아 운영주체들과 친숙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서울여성영화제나 대만여성영화제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성이나 친밀감은 찾기 어렵지만 도쿄여성영화제가 24년간 쌓아 온 역사와 그 노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제2회 NAWFF(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

올해 도쿄여성영화제가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제2회 NAWFF(아시아여성영화제네크워크) 공식회의가 열리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NAWFF 회의는 매년 회원 영화제의 개체국에서 로테이션으로 개최되는데 2010년 첫 회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진행되었다. 멤버쉽 영화제들 간의 공식회의 외의 중요한 NAWFF 행사로는 NAWFF 어워드가 있다. 매년 회원 영화제들이 한편씩 자국 영화를 추천하면 회의가 열리는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NAWFF 대표들의 심사회의로 결정된 NAWFF 수상영화는 미화 1000 달러의 상금을 받게 된다.
올해 추천된 NAWFF 어워드 후보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방법>(임순례/서울국제여성영화제), <죽음의 바다 Sengadal>(리나 마니메카라이 Leena Manimekalai/인도 첸나이여성영화제), <모든 것은 바다로 All to the Sea>(야마다 아카네 Yamada Akane/도쿄여성영화제),
<보이지 않는 Invisible>(미할 아비다드 Michal Aviad/이스라엘여성영화제), <손에 손 잡고 Hand in Hand>(주앙 이청 Juang Yi-tzeng, 옌 란란 촨 Yen Lan-chuan/대만여성영화제)며, 심사는 영화제 기간이 도쿄영화제와 겹친 이스라엘여성영화제를 제외한 4개의 회원 영화제 대표들이 심사했다. 수상작은 인도의 첸나이여성영화제가 추천한 <죽음의 바다>가 선정되었다. <죽음의 바다>는 인도 타밀나두 지역과 스리랑카 지역의 민족분쟁을 다룬 영화로 소재의 강렬함과 충격적인 장면들이 포함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합된, 과감한 양식이 인상적인 영화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지식과 윤리들을 되묻게 하는 소재적 접근법을 선택해 지적이고 윤리적이다. 국제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은 <죽음의 바다> 리나 마니메카라이 감독은 말 그대로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아시아 여성영화의 지금

NAWFF와 관련된 공식행사가 하나 더 준비되었었는데 메이지 대학에서 열린 “아시아 여성영화의 지금”이 그 것이다. 포럼은 현재 NAWFF의 의장인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이혜경 위원장님이 NAWFF의 취지와 결성, 아시아와 여성영화에 대한 기조연설을 하고 각 회원 영화제 대표들이 패널리스트로 참여했다. 각 패널리스트들은 “각 영화제의 역사와 주요 프로그램, 아시아 영화 프로그램”과 “회원 영화제가 속한 국가의 여성감독 역사와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임 프로그래머인 나는 운 좋게도 영화제의 설립부터 참여해 오신 분들의 풍부하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그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이루어 낸 역사와 성과 그리고 최근 아시아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오픈토크에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대한 질문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Moive, Film, Cinema and Tsunami 

NAWFF 후보 영화들 외에 도쿄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중 인상적인 영화를 꼽자면 단연 <3.11 We live here>(가샤 쿄코 Gasha Kyoko/2011)이다. 이 영화는 올해 3월 발생한 지진의 피해 지역인 동북부 지역주민들, 그 중 특히 여성들의 재활과 복구의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소재의 시의성 때문인지 관객들과 언론의 관심이 엄청났다. 영화의 구성이 아주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삽입된 화면들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3월 지진과 관련된 화면이나 이야기는 일본 관객들에게는 각별하게 다가갈 수 밖에 없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의 격렬한 반응이 오가는 극장 안의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인다.   

한국영화주간, 한국여성감독특별전
 

올해 도쿄국제영화제와 서울여성영화제와의 특별한 관계는 도쿄국제여성영화제와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았다. 매년 한국문화원 주관으로 도쿄국제영화제 내에 한국영화주간이 열리는데 올해는 프로그래밍과 세부행사 기획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간 “한국영화주간”은 매년 화제가 된 한국영화 중 일본 미개봉작을 상영하는 것이 기본 프로그램이었으나 올해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제안해 “한국여성감독 특집”으로 꾸며졌다. <된장>(이서군), <경>(김정), <땅의 여자>(권우정) 등의 장편과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선 섹션에서 상영된 단편영화들이 상영되었다. 그리고 “한국영상문화와 여성”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부대행사로 열렸다. 기존 프로그램에 비해 관객모집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긴자의 이이노 홀이 가득 채워질 만큼 관객들의 한국 여성감독 영화에 지닌 관심은 굉장히 높았다. 특히 영화상영 후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진지한 태도와 성숙한 질문들은 참여한 감독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감독과의 대화에 초대된 감독은 <경>의 김정 감독과 <된장>의 이서군 감독이었는데, 이서군 감독은 부대 심포지엄에도 참석했다.
심포지엄에서 이서군 감독은 영화 <된장>을 자신의 결혼생활 경험과 관련시켜 이야기 한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영화주간의 심포지엄 역시 질문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집중되어 이제 갓 영화제에 합류해 그 기여도가 미미한 초짜 프로그래머로 영화제를 대변하려니 민망한 마음도 컸지만, 감동적인 순간들을 맛보았다. 특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팬을 자처하며 그 동안 초청으로 혹은 자비로 4월이면 항상 영화제에 오셨던 메이지 가쿠인 대학의 사이토 아야코 선생님의 발표는 많은 청중들에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영화제 관련 공식행사 외에도 내년 영화제는 일본영화 특별전이 준비되고 있는만큼 여러 배급사, 영화제, 아카이브 관계자들을 만났고 한결같은 그들의 환대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이 환대들과 관심,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했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걸어 온 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동시에 내부에서 더 발전시키고 풀어야 하는 문제들도 많이 생각하게 된 출장 길이었다.


- 황미요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