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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인도에 여성영화 바람을 일으키다 _제5회 인도 첸나이 삼성국제여성영화제

 

인도에 여성영화 바람을 일으키다 _제5회 인도 첸나이 삼성국제여성영화제

 

 

올해로 5회를 맞는 인도 첸나이의 삼성국제여성영화제(Samsung Womens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다녀왔다. 첸나이 국제여성영화제는 인도, 한국, 서남아시아, 중남미, 유럽의 다양한 여성영화들 120여편을 상영한다. 한국의 영화제들이 동아시아와 서유럽, 북미를 중심으로 핵심ㆍ확장하는셀렉션을 구성하는 것에 비해 첸나이 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은 남인도에 위치한 만큼 (첸나이는 수도 델리의 힌디 내셔널리즘과 구분 되는 타밀 내셔널리즘의 핵심 도시로, 지역 대도시들 중 지역색이 강하고 자신들의 문화의 독자성에 가장 자부심이 큰 도시들 중 하나이다.) 캐리비언 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 미대륙의 관계가 설정되고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좌) <나의 도시 My Own City>(인도) 사미라 자인 감독 관객과의 대화, (우) 첸나이 여성영화제의 인터내셔널 프로그래머

 

과델루페섬 출신 프랑스인으로 첫 번째 장편 영화 <엘자 Elza> (2011)를 완성한 마리에 몬피에르 (Mariette Monpierre) 감독(2005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방문한적이 있다)의 “과델루페 사람들이 입는 옷과 음식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겠다”는 첸나이 방문 소감처럼 인도를 중심으로 캐리비안, 그리고 캐리비안디아스포라 여성 영화들을 맵핑하고자 한다면 첸나이 여성영화제는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유럽 섹션의 프로그래머인 Rada Sesic이 선정한 동유럽, 북유럽 영화 몇편과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프로그래밍에 참여한 한국영화가 예외적인데, 이 중 한국 여성영화는 개별 국가 중 가장 많은 편수를 차지할 정도로 전체 프로그램에서 비중이 높다. 이것은 첸나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특징 때문인데, 첸나이는 인도에서 한국기업의 주재원 인구가 가장 높은 도시이다. 현대자동차의 핵심 공장 중 하나가 첸나이에 위치해 있으며, 삼성전자와 삼성 모바일 사업 역시 크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첸나이 삼성국제여성영화제를 조직하고 수행하는 모단체는 인코센터(INKO Centre)인데, 현대자동차를 메인스폰서로 하여 한국어 강좌 같은 아주 실용적인 프로그램부터 무용, 연극, 전통음악, 미술 등 한국 주요 예술/문화 공연과 전시를 초청하는 프로그램까지 인도와 한국간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일년 내내 분주히 움직이는 곳이다.

 

이 인코센터의 디렉터인 라띠 자파 (Rathi Jafer)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인코센터의 상근직 4명이 영화제 스탭으로 참여하여 세계 각 지역의 7명의 객원 프로그래머들과 영화제를 만들어 간다. 집행위원장 라띠는 지난 해 도쿄 여성영화제 상영 당시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열렬한 애정을 표현하였는데, 결국 올해 첸나이 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새 영화 촬영에 들어간 임순례 감독은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올해 첸나이에서 <산정호수의 맛>(2011)와 <나 나 나: 여배우 민 낯 프로젝트>(2011)(이하 <나 나 나>) 두 작품을 선보이는 부지영 감독님이 한국 여성감독을 대표해서 첸나이 여성영화제를 방문하였다. <나 나 나>와 <산정호수의 맛> 상영과 감독과의 대화에서 공감과 몰입보다는호기심을 표현하며 한국 여성감독의 영화를 지켜 보는 관객들을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인도 첸나이 삼성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들

 


인도내외 여성영화 인력들이 협업하여 서유럽과 북미를 주변화하며 풍부한 문화적 향취의 다양한 여성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첸나이 여성영화제가 그 어느 영화제와도 구별되게 가지고 있는 비옥한 토양이다. 하지만 아직은 신생 영화제인 만큼, 그리고 지역에 영화제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만큼, 그리고 인도의 젠더적 환경상 첸나이 여성영화제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들로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현대와 삼성이 각각 인코센터와 영화제의 메인 스폰서로서 안정적인 재정구조가 마련된 만큼 한편으로는 스폰서들이 센터와 영화제의 프로그램에 상업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지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메인 스폰서인 삼성이 영화제 타이틀에 전면에 나서는 탓에 한국의 몇몇 배급사들이 삼성과의 관계를 묻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지 영화제에서 확인한 바로는 두 기업의 현재 역할은 단순 지원에 머물러 있다. 실무 담당자도 개막식 당일에만 ‘초청을 받아’ 참석하거나 한국인 주재원들에게 홍보하는데도 관여하지 않는 등 오히려 조금 무심하다는 인상이었다.

 

그보다는 영화관람 문화와 관객조직 문제가 외부인으로서 볼 때는 개선의 과제가 있어 보였다. 우선, 잦은 영사사고, 지켜지지 않는 시간표, 영화전문 상영관의 확보 등 영화관람 환경의 문제이다. 아직 첸나이 여성영화제는 영화제를 위한 독자적 기술팀을 꾸리지는 않고, 상영관의 영사기사들과 협력하여 일을 진행한다. 따라서 영화제를 위한 세밀한 상영관 세팅이 힘들고, 더 문제는 상영관의 영사기사가 개별 영화에 대한 이해력과 존중이 떨어지다 보니 그로 인한 상영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특별한 공지나 사과 없이 상영과 이벤트 시작이 몇십분씩 지연되거나 변경되기도 한다. 기차나 비행기가 출발 시간이 예사로 지연되기도 하고 인도에서의 영화보기는 심각한 분위기의 감상보다는 환호와 잡담, 식사가 동반된 문화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국제영화제로서는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집행위원장인 라띠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영화제 측도 기술팀과 관련하여서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고 내년에는 뭄바이에서 기술팀을 꾸려 오겠다는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한편, 여성영화제로서 성장과 관련하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지역 여성관객 계발이다. 현재 관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구는 젊은 남성 영화학도나 지긋한 지역 남성 엘리트들이다. (인도의 엘리트 남성들에게 ‘여성문제’는 젠더적 문제라기 보다 국가의 엘리트로서 남성이 관여해야 하는 문제이다.) 여성관객의 인구는 지역의 일반여성이라기 보다는 높은 교육을 받고 학계, 영화계와 관련이 있고 주체 단체와도 어느정도 안면이 있는 준관계자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차지한다. 물론, 인도의 일반적인 여성들끼리 가족동반이 아닌 영화보기를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구화된 대도시들에서 젊은 대학생들끼리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지만 아직 무수히 많은 남성 관객들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관객을 조직하는 일은 단순히 홍보나 관심을 끌 영화, 행사를 기획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도의 영화관람 문화, 생활문화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여성관객들, 특히 젊은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유입하는 것은 여성영화제로서 성장과 내실을 다지는 데 핵심이 될 것이다.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원활동가의 성비이다. 자원활동가 역시 남성 비율이 약간 더 높기는 했지만 거의 비슷한 비율로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모두 개인의 앞으로 커리어에 대한 포부와 지역의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젊은 여성들이었기 대문이다.

 

(좌) 나프 개막식, (우) 나프어워드 시상식


올해 첸나이 여성영화제가 조금 더 특별했던 것은 제3회 나프(NAWFF, the Network of Asian Women’s Film Festivals) 공식미팅과 나프어워드 선정과 시상이 이 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 두 주요행사 외에 도쿄, 이스라엘, 대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나프 대표들은 지역 영화학교 학생들과의 워크샵, 관객들과의 토크 프로그램, 지역 라디오 방송 출연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각 회원국이 추천한 여성영화들 중 한편이 선정되는 나프어워드에는 대만 리칭휘 감독의 <돈과 사랑 Money and Honey>가 선정되었다. 그 외 후보작들은 <나의 도시 My Own City> (사미라 자인, 인도), <레드 마리아> (경순, 한국) <3.11 여기에 살아 3.11 In the moment>(가샤 교코, 일본), <조+벨 Joe+Belle>(베로니카케달, 이스라엘)이었다. 올해 나프 후보작들은 개별작품들이 모두 빼어 났다는 심사위원들의 공감이 있었다. 공식미팅에서는 나프 회원 영화제 사이의 친목과 프로그램 교류, 여성영화제 관련 워크샵 등 현재까지 해왔던 활동들 뿐 아니라 더 적극적인 나프의 독자 사업을 진행하자는 안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전체적으로 첸나이 여성영화제는 현재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후에 푸네에서 만난 정부 영화관련 인사들이나 뭄바이의 산업관련 인사들 역시 이 영화제에 대해 확실히 주목하고 있고 보수적인 타밀나두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를 5년이나 지속하며 안정화 시키고 있는데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확인되었다. 지역 여성들과의 더욱 가까운 밀착이 이루어진다면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중요한 여성영화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 황미요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