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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의 감독 메리 도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의 감독 플로랑스 티소와의 인터뷰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적이다”[각주:1]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의 감독 메리 도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의 감독 플로랑스 티소와의 인터뷰 

김남이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여/성이론 33호> (2015 겨울호) 원고 발췌


얼마 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교내 페미니즘 미학강의의 폐강 예정 소식은 항상 들려왔던 것이라 새롭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수강생이 적다는 이유였지만, 내막을 들어보니 놀라웠다. 학생들이 전하길, 취업을 위해 서류를 제출하거나 면접을 볼 때 성적증명서의 ‘페미니즘 미학’이라는 수업 제목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취업 실패에 대한 학생들의 상상적 자기방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금기어가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금기어인 ‘페미니즘’의 역사적 황금기를 되짚어본 두 편의 다큐가 출품되었다. 필자는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각주:2]의 감독 메리 도어와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각주:3]의 플로랑스 티소 감독을 만나서 영화와 페미니즘 운동 및 그녀들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인터뷰는  2015년  5월  30일, 서울여성영화제 사무국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 중 인터뷰이가 특히 강조하기를 원했던 내용 혹은 인터뷰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내용은, 인터뷰어의 판단에 따라 진한 글씨체로 표기하였다.  

과거의 페미니즘, 그것은 충분히 현재이다

김남이(이하 ‘남이’): 우선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뜻 깊은 자리에 인터뷰를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영광입니다. 무엇보다도 두 분 모두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에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저도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러나 특히 한국에서는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직도 많이 힘들어요.  

메리 도어(이하 ‘도어’): 다른 곳에서도 그와 같이 말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아주 오랫동안 미국에서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거의 금기어(dirty word)로 취급되었어요.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이 말을 조롱하기도 하고…. 최근에 비욘세와 같이 유명한 사람이 페미니스트로 선언했고,[각주:4]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건 너무 좋은 일이죠. 하지만 전 아주 오래전부터 영상을 만들기 시작해왔어요. 분명 어떤 이에게 이 단어는 좋은 주제나 좋은 생각도 아니고 심지어 좋은 단어도 아니에요. 새로운 단어를 발명하기란 무척 힘든 것이고요.

플로랑스 티소(이하 ‘티소’): 메리는 낙관적이네요. 프랑스에서 이 단어는 일종의 낙인이에요.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은 페미니스트네요”라고 말하면, 당신은 항상 화가 나 있고, 언제나 페미니즘이 먼저이며 이런 생각을 근거 없이 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인식됩니다. 이건 너무 놀라운 일인데, 왜냐하면 프랑스에서 현재 여성의 상황이 아주 좋지 않거든요. 다른 방식의 억압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가령, 현재 프랑스에서는 2.5일에 한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를 당하고, 매년 75,000명의 성인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숫자나 통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낙인이 찍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어: 아, 물론 (페미니스트로 선언하는) 비욘세나 미국의 몇몇 예술가들이 있긴 해요. 하지만 또한 부분적으로만 그런데, 왜냐하면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실 지난 십여 년 간 더욱 나빠졌기 때문이에요. 많은 주에서 낙태를 금하고, 여성클리닉을 닫아버리기도 했죠.[각주:5] 캠퍼스 강간 등은 큰 스캔들이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깨닫고 있는 거죠, “아, 페미니즘은 끝나지 않았구나” 이게 최선의 이유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남이: 일단 두 분 모두 다른 장르보다도 다큐멘터리를 택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도어는 항상 다큐멘터리를 찍어왔고, 또 티소는 이번에는 평론가로서가 아닌,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고 그것이 다큐라는 장르인데요. 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티소: 다큐멘터리는, 페미니스트나 활동가들, 사회학자들을 소개하는 데 좋은 장르에요. 저는 이들의 말을, 특히 크리스틴 델피의 이론을 상기시키고 싶었고 그녀를 찍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 존경하는 마음으로, 제 영화를 그녀에게 헌정한 것이에요. 다큐멘터리는 누군가의 초상, 그녀의 삶과 작업을 기록하는 데에 가장 최상의 선택이에요.

남이: 그렇군요. 당신의 답변과 관련해서, 또 다른 질문이 있는데요. 왜 하필 크리스틴 델피인가요? 이 질문은 사실 영화 내에서 크리스틴 델피에게도 받은 질문이죠?  

티소: 기본적으로 제 동생이 그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십년 전에 이 둘은 한 아카데미 클럽인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서로 만났어요. 그 둘은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그때 제 동생이 그녀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동생이 제게 영화의 프로듀싱과 공동 감독을 맡아달라고 청했었죠. 당시 정말 중요한 것은 (크리스틴 델피와 같이) 매우 영향력 있는 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우리 자매는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우선적으로 그녀에 관한 영화가 그 이전에 전혀 없었고, 그녀는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활동가 중 한명이었거든요. 그녀의 이론 또한 그녀가 더 잘 알려지게 된 아주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요.[각주:6] 

남이: 두 분이 다큐멘터리를 해왔다는 것 외에도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자신의 나라에서 일어난 '과거의' 페미니즘 역사를 되짚었다는 점인데요. 특히 1960년대와 70년대의 페미니즘을 다루셨죠. 물론 현재까지의 페미니즘도 다루었지만요.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왜 지금인가’하는 것입니다. 왜 지금 우리가 과거를 다시 알아야 하는 건가요?

도어: 당신의 이전 질문(왜 다큐멘터리를 선택했는가)에 대답하자면요. 저는 수십 년간 다큐멘터리를 찍어왔어요. 저는 이 장르를 잘 알고 있죠. 뿐만 아니라 전 역사를 사랑합니다. 역사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 많은 영화들을 만들었어요. 저는 본래 정치적인 사람이고요. 정말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 영화는 비용이 많이 들고 여성 운동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이 필요하죠. 몇 년 전에 저도 <보봐르의 딸들(Daughters of de Beauvoir)>을 봤어요. 프랑스 영화였죠. 그런데 그런 영화가 미국에는 없었어요. 

남이: 미국에서 그런 영화가 없었던 줄은 몰랐어요.

도어: 물론 몇몇 여성 운동 그룹에서 여성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있긴 했죠.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다소 협소한 측면들만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고, 전체적인 관점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저는 다양한 여성운동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국에서는,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페미니즘은 금기어에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영 페미니스트들도 생각하기를, 1960년대와 70년대 일어난 페미니즘의 제 2의 물결은 지나간 홍수라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영화에서 여성들의 문제와 논쟁들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여성다움(feminacy)이고, 페미니즘이 사실상 무엇을 의미하는지 항상 말해왔습니다. 또 저는 수년간 영화를 만들어 왔어요. 그러면서 저는 검열 없이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깨닫지 못한 것은, 제가 (페미니즘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영화 만들) 돈을 모으기가 힘들다는 것이에요. 이건 인기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죠. 페미니스트 그룹들을 포함한 많은 해방 재단들에 찾아갔지만, 그들 모두 아무도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이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때 모두 거절당했던 게 제겐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사실 미국에서는 말 그대로 수백 편의 시민권과 그 운동에 대한 훌륭한 영화들, 수백 편의 게이 인권과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요. 그런데 왜 여성의 해방에 관련한 영화들은 안 나오는가 하면, 그건 잘 먹히지가 않기 때문이에요. 이게 정말 중요한 지점이에요. 그래서 어쨌든 그때 제가 모두 거절당했던 것들이 더욱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어요. 사실 이것으로 증명이 된 거에요. 모든 이들이 이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한 거죠. “오 이런, 이건 지독하게 중요한 것이구나!” 하고 말이죠. 

티소: ‘왜 지금인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크리스틴 델피에 대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긴급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크리스틴 델피와 같은 세대들이 토대를 세웠던 1960년대 이후의 페미니즘이 지금 세대에게는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러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했어요. 

도어: 그래요, 긴급한 일이죠. 근데 사실 제가 이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한 것은 22년 전이에요. (웃음) 어떤 면에서 이건 운이 좋다고도 볼 수 있어요. 왜냐하면 22년이라는 오랜 기간 사이에, 어떤 시기가 미국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죠. 완벽했어요. 저도 다른 나라의 좋은 페미니즘 영화를 보아 왔기 때문에, 저는 어떤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 현 시점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런 것이었어요. 현재의 영 페미니스트들은 이전의 페미니즘이 무엇을 성취했고 무엇을 위해 일해 왔는지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제 임무라고 생각한 것은, 여러분들이 그간 들어온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전형적인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에요. 티소의 영화처럼 한 활동가를 중심으로 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아주 많은 문제들을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좀 다른 접근인데, 왜냐하면 제 사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있거든요! (웃음) 하지만 저는 그런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제게는 너무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영화 속 이야기는 사람들이 아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기 때문이죠. 



여전히 분노해야 하는 이유

남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두 분 모두 ‘분노’라는 키워드를 강조하셨어요. 영화에서 티소의 동생이 크리스틴 델피에게 행복하냐고 질문했을 때, 그녀는 페미니스트로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죠. 그녀 자신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대해 분노하고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분노는 행복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던 부분이 공감이 갔어요. 분노는 행복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동기가 되어주고 우리의 운동을 이끌어주니까요. 물론 도어는 영화 제목 자체가 분노이니 말할 필요도 없죠. 

도어: 매우 의도적으로요! (모두 웃음) 그 제목은 많은 추문을 불러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제목을 좋아하지 않아요. 

모두: 저는 그 제목이 너무 좋아요. 

도어: 네, 저도 너무 좋아요. 그런데 이 제목은 논쟁적이었어요. 몇몇 여성들은 유쾌해 했지만, 영화 속 몇몇 여성들은 매우 언짢아했어요. 우리가 제목에 ‘아름답다’라는 말을 썼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몇몇 페미니스트는 ‘미’의 기준 등을 반대하니까요.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분노’라는 말을 싫어했어요. 그 말이 스테레오타입화 될까 걱정했던 것이죠. 그때 저는 비로소 생각했어요. “아, 내가 정말 옳은 어떤 것을 하고 있구나. 나는 지금 모두를 건드리고 있어!”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그 제목을 고수하고자 한 이유에요. 다른 사람들이 뭘 생각하건 전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냥 저는 이게 완벽한 제목이라고 생각한 거죠. 왜냐하면 여성 운동은 본래 폭발적이었고, 까다롭고, 어렵고, 스릴 넘치고…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Be in your face.’[각주:7] 이게 우리가 믿은 구석이에요. 우리 제목은 그런 것들을 반영해요. 우리 제목은 감상적이지 않죠. 전 제목을 감상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남이: 그렇다면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다룰 계획이 있으신가요? 말하자면 여성의 분노나 여성의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여성의 기쁨, 행복, 쾌락, 여성들이 삶을 향유하는 그런 것들 말이에요.

티소: 글쎄요, 저는 분노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거나 당신의 업무 조건이나 사회 조건들을 깨닫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행동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화가 났을 때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에요. 이 점이 페미니스트 그룹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해요. 또한 이 ‘분노’라는 말은 매우 긍정적인 단어로 변경시킬 수 있어요. 심지어 재미있는 단어로도요. 영화 속에서도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기쁘고 행복했어요.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분노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도어: 그게 바로 사람들이 제목에 대해 물었을 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었어요. 아직도 여전히 제 제목에 대해 묻는 질문들이 많거든요. 그때 저는 말해요. 아름다움은 그저 당신 얼굴의 아름다움이 아니에요. 아름다움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당신이 자유로워지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면 그게 아름다움이에요. 당신의 영혼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권력이나 돈이 뭐라고 하건 말이죠. 저는 이것이 그저 분노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당신이 만약 세상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떤 사회적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논쟁이나 분노를 받아들이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해요. 정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요. 

티소: 페미니스트가 되는 또 다른 멋진 이유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됨으로써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돼요. 가령 왜 공적으로 말할 수가 없는가, 왜 충분히 경쟁에 함께할 수 없나 등을요. 시스템과 사회적 강압에 대해 알게 되면,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좀 더 쉽게 바꿀 수 있게 됩니다. 

도어: 맞아요. 그게 바로 영화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었어요.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거나 남편이 때리거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 모든 것들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 것들은 추한 비밀이었죠. 아무도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어요. 그건 수치였거든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그룹 안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게 되고 인식하기 시작했죠. ‘아, 이건 내 문제만이 아니었구나. 이건 사회적 문제였어. 그리고 내가 뭔가를 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요. 미국에는 여러 공적인 모임들이 있어요. 거기서 자신의 강간이나 낙태 경험 등에 대해서 서로 말하고 있어요. 그들은 만나서 서로의 수치심을 떨쳐내려고 했습니다. 이것도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면, 그건 당신이 거기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영화는 당신을 스스로의 내면으로 데려가요. 

티소: 그런데 이것이 질문이었나요? 

도어: 구체적으로 들어가 봅시다. 성적 쾌락에 대해서요. 그런데 성적 쾌락이 도대체 뭘까요? (웃음) 

남이: (웃음) 비단 성적 쾌락이 아니더라도, 가령 삶의 기쁨들,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느낌들 등 말이에요.

도어: 물론 그런 것들도 많죠. 그런데 또 쉽지 않아요. 여성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는 수십 년간 많이 있었죠. 그렇지만 또한 저는 영화를 쉽게 다루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를 만드는 건 정말 도전적이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사유하고, 질문을 하고, 섹슈얼리티에 물음을 제기하는 등 말이죠. 이건 어려워요. 그게 제가 영화를 감상적으로 만들기 싫었던 이유에요. 전 이것이 매우 도전적인 일이고 그만큼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행복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해온 것들에 불만을 갖지 않아요.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외출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웃음) 

남이: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저도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라고 말하곤 했어요. 사실 어렸을 때는 남녀차별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어요. 제 어머니는 그런 것에 항상 조심스러워 했고 제가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들어선 이후, 어떤 불편한 감정을 느꼈고 그게 뭔지 잘 몰랐죠. 그리고 제가 왜 그런 걸 느끼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고, 그 이론은 제게 많은 것을 말해줬어요. ‘너의 이런 느낌은 이거야’ 같은 것을요.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후로 그런 방식으로 깨닫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 제가 이런 것들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도 제게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럼 당신들은 인생에서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될 계기를 얻었나요?

도어: 전 모권중심적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할머니가 가족 전체를 좌지우지 했죠. 근데 그것이 페미니즘은 아니었어요. 그냥 여성이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을 아는 것이었죠. 어쨌든 그건 선물이었어요. 전 한 순간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 순간도 제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돌봐줄 것을 기대할 수 없었죠. 이건 저희 세대의 어려움이었어요.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저는 페미니즘을 잘 몰랐었어요. 그러나 저는 정치적으로 매우 활동적이었고 전쟁에 반대했거든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것은 좀 늦은 편이었죠. 제게는 페미니즘으로의 변경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항상 여성들이 많은 환경에 있었죠. 제가 페미니스트가 될 때쯤 큰 이슈가 있었어요. 그건 정말 비합리적인데, 여성이 면도를 하거나 페디큐어를 바르는 등에 관해서였어요. 저는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근데 그런 이슈들이 너무 흥미로웠었어요. 왜냐하면 그건 정말… 너무 바보 같았거든요. 아주 다차원적으로요. (웃음) 여성들이 왜 남자들의 미의 기준으로 자신을 재평가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그들은 그런 기준들을 너무 두려워했어요. 그리고 가끔 자신의 판단을 뒤로 미루기도 하구요.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을 기억해보면, 항상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 비용의 반을 지불했었어요. 저는 그게 공정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때 어떤 전문가가 저의 그런 행동에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더러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냐고 했어요. 전 아니라고 했고, 그저 공정해지고 싶다고 말했죠. 왜 남자들이 저를 위해 돈을 내야 하죠?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때 저는 좀 더 페미니스트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변화를 위해서는 마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죠. 여성들은 무언가를 힘들게 요구하고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왔다고 생각해요. 책을 쓰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하는 것들이 모두 필요한 것이죠.

티소: 제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 무언가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고 지배받고 있음을 깨달아야하기 때문이에요. 그건 즐거운 현실이 아니죠. 이런 현실 앞에 서있길 원하지 않을 거예요. 근데 이런 현실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해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항상,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여자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니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셨지만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하셨어요. 그러면서 독립적인 성인이 되었고 더욱 정치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남이: 메리, 당신의 영화 후반부에, Our Bodies Ourselves의 Boston Women's Health Book Collective 40주년 연설에서 한 인도 여성이 ‘우리에게 몸을 되돌려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한 것이 정말 공감되고 인상 깊었어요. 영화에서 이렇게 감동적인 말도 있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발견되었는데요. 티소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무언가를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면 메리의 영화는 좀 더 풍자적이고 웃긴 구석이 있어요. 가령, 어떤 남자가 “no bra thing's ridiculous, abortion is ridiculous” 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 남자가 ‘ridiculous’하다고 생각했어요. 참 슬프지만 웃기기도 했는데요. 다큐멘터리에 이러한 생생하고 웃긴 영상을 집어넣는 것은 자주 하는 작업이신가요?

도어: 오, 그 남자는 사실 여성 운동을 변호해주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동일하게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찬성하고, 법이 허용하는 낙태도 찬성해요. 그런데 노브라라니요?”라고 그가 말하는 거에요. (모두 웃음) 사실 저는 유머러스한 사람입니다. 유머는 다른 것들과 달리 매우 강력한 비판의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저도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머는 정말 중요해요. 제 영화는 매우 풍자적이기도 해요. 물론 모든 작품에 유머를 넣는가는 다른 문제에요, 주제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이 영화에는 유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티소: 제 영화가 다소 교육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네요. 저는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이 좀 더 쉽게 크리스틴 델피와 그녀의 작업에도 접근하길 원했어요. 

남이: 저는 티소 당신의 영화를 보고 프랑스 페미니즘에 대해 많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게 너무 좋았는데요. 한국의 영 페미니스트들은 다른 나라들의 이론을 경험하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상대적으로 프랑스의 페미니즘 보다는 미국의 페미니즘이 더 익숙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화가 프랑스 페미니즘을 이해하기에 좋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티소: 네, 맞아요. 저는 프랑스 페미니즘의 역사를 한 사람의 페미니스트가 회상하는 관점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도어: 저는 선택을 해야 했어요. 몇몇 사람들이 제 영화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제 영화는 어떤 유명한 사람들에 집중하고 있지 않거든요. 근데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었어요. 제가 보기에 페미니스트 운동은 그렇게 성장했어요. 저는 정말로 믿어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의 거대한 변혁을 일으킨 것임을요. 그것이 영화에서 우리 자신들을 보여준 이유이기도 합니다.[각주:8] 그들은 제 최초의 페미니스트 스터디 그룹이었어요. 저희는 매우 원시적이지만 신문을 읽었고, 책들을 읽었어요. 전 아직도 그 스터디 책의 원본을 가지고 있어요. 첫 페이지에 그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적어 놨고요. 그들은 제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제 첫 페미니스트 그룹이니까요. 저는 그들이 하는 일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의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에요. 그들은 그저 평범한 여성들이었어요. 그런 점들을 관객들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페미니즘 운동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영화에 대해 받은 좋은 평 중 하나는 이거에요. 



현재의 페미니즘, 그 이론과 실천 사이

남이*[각주:9]: 티소, 영화를 봤을 때 당신이 크리스틴 델피의 입을 빌어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았어요. 당신은 모든 이데올로기에 반대한다고. 그런데 저는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페미니즘도 또한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어 왔고, 또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해왔지요. 왜냐하면 페미니즘 이론이 어떤 특정 페미니즘 운동에 아주 좋은 이론적 근거가 되어 주었으니까요. 단순히 말해 질문은,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티소: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벗어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생각에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델피가 영화에서 ‘페미니스트 운동 안에서는 가부장적 구조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이데올로기를 공격하는 흐름이 하나의 유행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녀는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인종주의와 이슬람공포증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무슬림 이민자들을 가부장제의 원천이 아니라 성차별주의의 원천이라고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델피는 인종주의의 목적을 위한 페미니즘의 도구적 사용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델피의 작업은 (Nicole Claude matthieu, Paola Tabet, Colette Guillaumin의 작업도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잘 알려져 있는, 일명 ‘프랑스 페미니즘’에 도전하는 것이었어요. 이 일명 프랑스 페미니즘은 매우 특유한 페미니즘이에요. 문학 연구와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은 이 이론은 다른 사상적 학파에서는 ‘본질주의’로 간주됩니다. 엘렌 식수처럼 ‘여성적인’ 언어를 촉진하는 것보다, 델피는 젠더 관계에 구성주의적 접근을 적용했다고 볼 수 있어요. 마르크스 이론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에 도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젠더는 구체적인 생산 양식(가정 노동)의 한 위치거든요.

남이*: 위 질문과 관련해 저는 딜레마가 있는데요. 한편으로 운동을 고무하기 위해 우리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일단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게 되면, 그 목적은 또 다른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여 우리의 현실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페미니즘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을 세울 수 있는 걸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까요? 아니면 그것은 또 다른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되지 않을까요?

티소: 페미니스트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입니다. 저는 여성이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 이 세계에서 그것이 왜 이데올로기가 되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남이*: 당신들의 영화를 통해 시몬 드 보봐르나 모니크 위티그 같은 전설적인 페미니스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과거와 같은 급진적 페미니스트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다소 냉소적이긴 한데, 왜냐하면 우리 사회, 즉 후기 자본주의시대는 우리를 너무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거든요. 당신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우리가 두 번째의 급진적 페미니스트 운동을 곧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티소: 1960년대와 70년대에도 페미니스트들에게 결코 쉬운 시기는 아니었어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합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싸움은 매우 어려웠죠. 페미니즘은 매우 긴 싸움이에요. 그리고 현재는 긍정적인 사례들이나 행동들이 존재하게 되었죠. 할리우드 같은 영화 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성차별주의에 반대하고 그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으니까요.

남이: 티소, 당신은 스카프(히잡)를 쓴 소녀들을 등교하지 못하게 하는 종교 관련 차별적 법조항에 반대하는 델피의 의견에 동조하시는지요? 한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의 상황과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티소: 무슬림 여성과 관련한 문제는 꽤 최근의 일이에요. 이건 꽤 복잡한 일이기도 하고요. 2004년에 법 하나가 통과됐는데, 그 법은 공립학교가 스카프(히잡)를 착용한 무슬림을 퇴교명령 하는 것을 허용한 법이었어요. 이건 그 당시에도 매우 논쟁적이었어요. 그러고서는 많은 여학생들이 퇴학을 당했죠. 그리고 6년 후 2010년에는 모든 공공장소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부르카 등) 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어요. 이것의 근거는 여성의 해방에 반한다는 것이자 종교로부터의 자유 같은 것이에요. 만일 그것이 젠더 평등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면, 세속주의가 그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나오는 하나의 가정은, 무슬림 여성이 자신의 자유나 해방을 위해 싸울 힘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프랑스와 같은 선진 국가가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에요. 그 사람들에게 반대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해방시킨다는 걸까요. 

남이: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법을 찬성하는 이들의 말이 꽤 논리적으로 들리는데, 당신은 델피의 주장이 충분히 설득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얼굴을 가리는 것에 대한 여러 불편함과 그들이 정말로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모를지도 모른다는 의심들은 충분히 근거가 있을 것 같거든요. 즉 이 법을 반대하는 것에 충분한 논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티소: 여기에서 문제는 프랑스의 독특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프랑스에는 다양한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근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프랑스의 많은 성차별이 사실상 흑인들, 아랍인들, 빈자들과 같은 이민자에게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나이 많고 부유한 백인 남성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위험해요. 

도어: 네, 프랑스에서는 아랍인들과 관련해서 아주 다양한 정치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죠.

티소: 그렇죠. 19세기 20세기의 식민지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문제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어요. 그들의 이주는 그저 결과에 불과해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요. 그리고 무슬림들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소수자라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보고 있기도 하고요. 알아야 할 것은 법 자체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가령 프랑스를 보면, 어디에나 가톨릭 성당을 볼 수 있고, 금요일마다 학교에서는 생선요리가 제공됩니다. 그건 가톨릭 전통이거든요. 

도어: 그런데 그것(가톨릭 전통)은 정상이라는 것이죠. 미국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유대인들은 수적으로 소수자이지만 영향력이 강해요. 또한 자신들의 전통을 고수하죠. 만일 (프랑스 법이 무슬림들에게 하듯이) 미국이 유대인에게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전쟁을 일으킬 거예요. 

남이: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의 경우에는 프랑스나 미국과 비교해 봤을 때 다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서구의 페미니즘 운동과 이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론적으로 우리는 서구 이론들과 거의 동일해요. 그러나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보면 많은 한국 여성들은 이런 이론이나 운동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토론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 이유가, 한국 여성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리나 여성의 해방을 한 번도 직접적 투쟁을 통해 획득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나 미국은 페미니즘 운동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대조적으로 한국은 자신이 선거권이나 여러 가지 여성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했다고 말하기 힘들어요.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인 발전을 따라서 그런 것들이 서구의 영향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자동적으로, 국가에 의해 주어진 경우가 많았고, 스스로 열심히 토론하고 싸워서 쟁취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들과 같은 제 삼자의 입장에서 저희가 어떻게 더 해야 할 지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떨까요?

티소: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도 또한 소수이며 항상 그래왔어요. 다수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이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죠.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이론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고립된 채 있다면 사회적 변혁을 성취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는 함께 모여야 해요.

남이: 제 마지막 질문은 이렇습니다. 이 질문은 사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인데요. 저는 지금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러나, 저는, 고백하자면…

도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요? (웃음)

남이: 아니에요! 저는 분명히 페미니스트에요. (모두 웃음) 하지만 강성 활동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항상 스스로 변명하거든요. “오, 나는 이론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 하지만 또한 항상 제가 결정하고 행동을 취해야 할 어떤 어렵지만 중요한 상황을 매번 만나죠. 이건 이론과는 또 다른 문제에요. 어떻게 제 이론을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론과 실천에는 너무 큰 거리가 있고, 이것을 적용하는 것이 항상 괴롭습니다. 

도어: 저는 어떤 행동을 취하고 결단을 해야 할 때면 항상 생각해요.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을 선택하자. 정치적으로 활동하려고 할 때는, 다소 고양된 심적 상태가 되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당신이 작은 것에서부터 삶을 좀 더 통합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제게 조언을 구할 때면 저는 말해요. 모든 것을 해내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이것이 가장 단순한 결론이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마 금방 지쳐버릴 테고, 휴식도 없이 다 소진될 거예요. 당신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어요. 모든 것을 할 수도 없고요. 그러니 하나만 선택해요. 그러면 언젠가 결과가 나올 것이에요. 


인터뷰 내용은 사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이미 지나갔다고 평가했던 여러 이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여전히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평등’을 말하고 있고, ‘생산양식의 문제’, ‘계급 문제’,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해진 ‘혁명’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었다. 어느새 이런 단어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말과 함께 금기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그녀들의 다큐멘터리는 페미니즘의 ‘과거’를 다루고 있지만 시각은 철저히 ‘현재적’이었다. 이제는 이러한 단어들이 어떻게 잊히게 되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들은 이론가들에게 실천의 근거가 되어줄 이론을 발명하는 일에 태만하고 지적 유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실 인터뷰는 내가 의도했던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공을 살려 영화와 영상문화에 대해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학문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인터뷰는 나를 포함한 우리 페미니스트들의 자기고백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공감으로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페미니즘의 독특한 지점일 게다. 다른 학문보다도 페미니즘에서 이론과 실천은 절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니 이론이 항상 ‘나’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니체가 말하듯 ‘즐거운 학문’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경계에서 우리는 이론으로는 회의주의지만 실천으로는 낙관주의가 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1. 1) “Telling the truth is very revolutionary"는 영화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 홈페이지 제사에서 빌어 왔다. http://www.shesbeautifulwhenshesangry.com [본문으로]
  2. 2) 이 영화는 1960년대에서 70년대 초까지의 미국 페미니즘 제 2물결의 생생한 역사적 기록과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젠더, 섹슈얼리티, 낙태, 인종과 성적 지향의 차별 문제와 그것의 복잡성에 대해 당시의 활동가 시선들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다. [본문으로]
  3. 3)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I’m Not Feminist, But…)>은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크리스틴 델피를 중심으로 1970년대 이후의 프랑스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여기에서 과거의 격렬했던 논쟁들과 활동들은 물론 시몬 드 보봐르나 모니크 위티그를 비롯한 전설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영상들도 함께 볼 수 있다. [본문으로]
  4. 4) 비욘세의 페미니스트 선언 영상: https://youtu.be/n7pd1w022ME (검색일 : 2015년 10월 16일), 엠마 왓슨의 페미니스 선언 영상: https://youtu.be/c9SUAcNlVQ4 (검색일 : 2015년 10월 15일) [본문으로]
  5. 5) 최근에는 텍사스 주 등의 몇몇 보수적인 주에서 연방대법원과의 갈등을 일으키며 낙태 금지법을 실시하고 몇몇 여성전문 병원이 폐쇄되었다. [본문으로]
  6. 6) 크리스틴 델피는 파리대학과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entre National de Recherche Scientifique, CNRS)에서 1965년부터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68혁명 이후, 프랑스 여성해방운동 단체(MLF)에서 활동했다. 프랑스의 급진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운동 조직(Gouines Rouges)의 멤버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유물론 페미니스트라 칭한다. 유물론적 페미니즘이란 맑스주의의 기반에 젠더관계와 생산양식을 문제 삼는 페미니즘을 일컫는다. 모니크 위티그가 그녀의 이론적 실천적 영향의 자장 하에 있다. 델피는 미국에서 많은 연구가 되어 온 이른바 ‘프랑스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델피가 보기에 일명 이러한 ‘프랑스 페미니즘’은 프랑스 페미니즘의 운동사와 궤를 같이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본질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프랑스 페미니즘’의 영향 하에 있는 주디스 버틀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녀에 의하면, 버틀러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현실적 상황과 억압을 이론으로 축소시켜버린다. [본문으로]
  7. 7) 공격적이 되거나, 사람들이 격하게 반응하도록 기획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8. 8) 다큐멘터리에서는 당시 페미니즘의 제 2물결 동안 활동했던, 매스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실제 활동가들의 자료 영상과 최근의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그들이 맨 마지막에 함께 모여서 수십 년 전의 자신의 활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함께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기도 하다. [본문으로]
  9. 9) *표시의 질문들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못했던 몇몇 질문들로, 차후 메일을 통해 질의하고 답을 받은 것들이다. 이 질문과 답변은 문맥에 맞게 자의적으로 삽입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