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딸의 대변자, 영화 <마우스피스>
주인공 캐시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장례식 추도사를 준비하면서 엄마와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존재였는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상상하고 복기한다. 그러면서 캐시는 결국 엄마가 왜 그렇게 답답하게 남의 시선만 의식하며 살았는지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다.
페트리샤 로제마 감독의 <마우스피스>는 판타지적 연출로 두 명의 배우가 캐시 역할을 맡아 한 화면에 동시에 두 캐시가 등장해 이인극을 펼친다. 키가 큰 캐시와 작은 캐시가 한 호흡으로 등장하고 행동도 똑같이 한다. 마치 그림자처럼. 두 캐시가 함께 목욕하고 침대에 눕는 도입부에선 얼핏 퀴어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두 인물이 실은 다른 모습을 한 한 명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9월 1일 정재은 감독, 5대 페미니스타 김민정 배우와 함께 <마우스피스>를 보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스타토크’ 이벤트를 마련했다.
극 중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나
정재은 극 중 캐시가 평생 엄마에게 쌓인 울분을 쏟아내는 장면, 일가친척이 다 모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엄마의 인생은 그 자체로 낭비였다”고 폭언을 퍼붓는데 그 장면이 가슴 아팠습니다.
김민정 저는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캐시가 엄마에게 퍼붓는 장면, 사실 그 장면은 오히려 마음이 아프지 않았어요. 뭐가 가슴이 아팠냐면 엄마가 캐시의 얘기를 듣고 늘 남에게만 맞춰온 자신을 바꿔보겠다고 드디어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셨을 때, 그때가 마음 아팠어요.
배우 김민정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
김민정 지금 제 또래 세대의 어머니들은 사회적으로 일을 하는 세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자식에게 기대하고 기대는 것도 많으시고 소위 말하는 ‘어머니’의 상을 가장 많이 갖출 수밖에 없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의 경우는 배우 일을 하려고 하셨으나 결국 못 하게 되셨어요. 저는 어릴 때 우연히 배우가 되었지만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을 저에게 기대하는 게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20대 초반, 어렸을 때는 캐시처럼 엄마한테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 20대 때의 나라면 캐시처럼 엄마에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엄마에게 뭔가를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정말 다른 세상을 겪은 여성이기에.
정재은 감독이 한국 버전 <마우스피스>를 찍는다면
정재은 저는 한국에서 엄마와 딸의 갈등을 다룬다면 중간에 아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관객 일동 탄식) 저희 엄마는 큰아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 특별한 아들과 엄마의 유대감은 엄마와 딸의 유대감과는 또 다르거든요. 이 영화엔 아들이 없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면 저는 엄마, 딸, 아들로 인물을 설정해서 갈등을 풀어보고 싶네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영화여서일까. 정재은 감독과 김민정 배우뿐 아니라 관객들 역시 딸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한 관객은 “저는 결혼까지 했는데도 부모님께 심리적 독립을 못하고 있어서 그런 저 자신이 후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 <마우스피스> 초반에 캐시가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나가려다가 참고 끝까지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 캐시가 추도사를 읽을 때 눈물이 왈칵 나는 게 뭔가 제 안의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김민정 배우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야말로 진짜 후진 인간”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김민정 배우는 “배우로서 저 자신을 캐릭터화하면서 살다 보니 김민정이라는 주체보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의 주체가 제 안에 많아서 가끔은 제가 다중인격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그러다보니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해도 너무 어렵다. 그래서 그냥 뭐,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며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밝히기도 했다.
이날 스타토크는 "오늘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많은 분과 나누고,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저는 앞으로도 여러분께 더 멋진 캐릭터로 찾아뵐 수 있도록 이 자리에서 꾸준히, 여전히 있겠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여성영화제가 더 커져서, 저를 비롯해 이 길을 걷고 있는 여자 연기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나 영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김민정 배우의 인사로 박수와 함께 막을 내렸다.
이 세상에 딸로 태어났다면 모든 딸이 엄마를 보면서 ‘왜 내 엄마는 저렇게밖에 살지 못하지? 왜 저렇게 답답하게 살지? 왜 저렇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지? 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할 것이다. 도저히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의 모든 딸과 엄마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마우스피스> 상영 일정 9. 3(화) 11:00~12:31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505]
글 홍보팀 변지은
사진 조아현, 구연주(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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