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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INTERVIEW] <오미가스> 안토넬라 수다삿시 감독

"엄마도, 아내도, 며느리도 아닌"

안토넬라 수다삿시 감독

<오미가스>의 주인공 이사벨은 코스타리카 시골 마을에 산다. 그녀와 함께 나무집에 사는 건 남편과 두 딸이지만, 마을 전체에 거주하는 남편의 가족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사벨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기만의 의상 수선실도 갖고 싶고 아이를 더 낳는 것도 싫은데, 세상은 그녀가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더 좋은 어머니의 역할만을 강요할 뿐이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여기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 이사벨의 삶을 뒤바꿔버릴 여지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아주 작은 변화, 집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미세한 떨림이 있다. <오미가스>는 그 떨림과 기척에 반응하며 보수적인 가족 내부의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녀의 욕망을 들여다볼 줄 아는 영화다. 안토넬라 수다삿시 감독을 만났다.

 

 

이제 막 한국에 왔다고 들었다.

어제 도착했다.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영화도 많이 보길 기대하고 있다. 축제 뒤편에서 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관해서도 관심이 있다.

 

 

<오미가스>는 두 번의 상영을 마쳤고 남은 상영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준비돼 있다. 아시아에서는 첫 상영인데 한국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소감을 말해준다면.

먼 나라에서 온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에서 온 영화니까. 아시아에서 첫 상영이긴 하지만, 이전에 인도나 다른 아시아권 사람들의 반응을 조금씩 듣긴 했었다. 그 외에도 전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인물에 공감하면서도 문화에 따라 영화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 게 흥미롭더라. 문화적 맥락이나 배경이 다른 이곳의 관객들이 주인공의 삶과 그녀가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는지 보고 싶다.

 

 

이 영화는 2015년에 시작한 트랜스 미디어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로젝트와 영화의 시작에 관해 설명해줄 수 있나.

‘개미에 의한 각성(El despertar de las hormigas)’이라는 프로젝트로 세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삶의 각각 다른 단계에서 여성이 느끼는 것들, 섹슈얼리티, 경험 등이 주제다. 첫 영화는 10살 정도의 아이가 여성으로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은 단편이다. <오미가스>는 프로젝트의 두 번째 영화다. 젊은 세대의 여성이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다른 가족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세 번째 영화는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될 것이다. 그 영화에서는 65세를 넘긴 여성들이 겪는 몸의 변화에 대해 탐구하려 한다. 또한 프로젝트는 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을 초청해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당신의 작업에서 ‘개미(hormigas)’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개미는 은유적 표현이다. 개미는 매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매우 열심히 일하는 존재다. 사회적으로 무언가 바뀌기 위해서는 그렇게 작고 끊임없는 움직임,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가는 발걸음이 필요하다. 많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으니까. 그동안 여성의 역할과 지위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앞으로도 더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우리도 그렇게 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또한 여성이 자기 인생에서 성적인 부분을 알아가고 여성으로서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그렇게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간다는 걸 은유하기도 한다.

 

<오미가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감각에 관한 영화 같다. 주인공이 자신이 좋아하는 느낌을 찾고 그것을 즐기는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그렇게 하는 일이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도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관객이 인물에게 감각을 통해 깊이 공감하길 원했다.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막상 그것을 결정하지는 못하는 주인공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적인 공간에 들어온 벌레나 빠진 머리카락, 기어가는 개미 등의 장면을 사용했다. 그것들을 통해 변화를 갈망하는 이사벨과 그것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했다. 또 그녀가 점차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고 남편에게 요구하는 순간, 자기 삶 속에서 조금씩 무언가 바꾸고 있는 순간까지 담고 싶었다. 때로 우리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노력하기를 중단하고 돌아서 버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건 상황을 직면하고 거기 머물며 그 자리에서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모습을 감각적인 디테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맥락에서 주인공 이사벨이 가정 안의 여성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참고 타협해야 할 부분이 많고, 끊임없이 집안일도 해야 한다. 현실의 조건을 외면하지 않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 주변의 여성들인 엄마, 할머니, 이모의 이야기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그들은 늘 가족들이 괜찮은지 신경 쓰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가정 안의 여성들은 매우 강인하고 의지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다른 가족 구성원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반영하려고 했다. 영화에서는 그들이 자신을 엄마나 아내, 며느리로 인식하는 걸 넘어 한 개인으로서 의식하기까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 마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을 포착하기 위해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영화를 촬영할 마을을 방문해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전부 알고 사람들의 행동거지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내 개인적인 배경과 취재를 통해 영화에 드러나는 가족과 여성의 모습을 구성했다.

 

 

시나리오를 쓰며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인가.

여성 인물이 힘을 찾아가는 건 이전에도 많이 다뤄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더 세부적이고 내밀한 부분과 매일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너무 거대한 이야기이거나, 마초적이고 나쁜 남성과 불쌍하고 약한 여성이라는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길 바랐다. 각 인물을 다양한 면모를 가진 인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각자가 수행하는 다른 역할을 이해하고 그것을 더 평등하게 바꾸어나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로 말이다.

 

<오미가스>

주인공 이사벨을 연기한 배우 다니엘라 발렌시아노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녀는 원래 연극배우이고 이번이 첫 영화 작업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인공 부부를 연기한 배우들을 제외하면 모두 마을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다니엘라와는 영화를 찍기 전 3개월 동안 매주 마을을 방문했다. 딸 역할을 하는 두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대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이사벨과는 꽤 다른 사람이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고 훨씬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캐릭터에도 조금씩 추가되고 투영되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배우다.

 

 

이사벨은 두 딸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인 제약을 딸들에게 대물림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장면은 그것을 끊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그 장면은 매우 평온한 느낌도 든다. 장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준다면.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이 집 안에서 조금씩 바꾸어 온 것들, 그 변화를 보여주려고 했다. 딸들이 원하는 대로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그런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 변화 덕분에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 여성들이 강한 여성으로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 문화권이 다르면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독일이나 스페인 관객들의 경우,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 남편의 모습과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더라. 그러나 코스타리카의 관객들은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은 장면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남편이 자기를 죽이려 들 거라면서. 사회가 얼마나 폭력을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느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가.

우선 프로젝트의 세 번째 영화가 남아있다. 앞으로도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싶은데, 계속해서 발생하는 작지만 중요한 변화에 집중하려고 한다. 영화 속의 이사벨이 겪는 일도 우리가 보기엔 작은 변화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서는 아주 큰 변화가 아닌가.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글  손시내(리버스)

사진  조아현

통역  박진희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