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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GV현장] 변영주 감독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8일 동안 50회가 넘는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렸습니다. 

이 중 네 분의 GV 현장을 Q&A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요? 사회는 분명 변해가고 있습니다"

변영주 감독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GV

 

서울 혜화동의 '나눔의 집'에는 일곱 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할머니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한 전시 성노예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다. 1995년 작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에서는 그 여성들의 1년 반 동안의 삶을 기록하며 투쟁과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한국영화 속 여성의 얼굴들을 조명하기 위해 열린 '100년의 얼굴들' 특별전에서 이 작품의 상영과 GV가 열렸다. 변영주 감독과 함께한 관객과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열중한 표정의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변영주 감독

'낮은 목소리' 제작 동기가 궁금합니다

우연히 나눔의 집에 갔다가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50년 만에 피해사실을 커밍아웃을 하면 이분들의 삶은 달라지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할머니들에게 촬영을 허락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나눔의 집에 앉아있다 가길 1년 정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할머니들의 일상을 외워버렸다.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에는 할머니들에게 뭘 해달라고 따로 부탁한 적이 없다. 이 시간쯤에는 할머니가 이곳을 지나가겠구나예상하며 해당 장소에 알아서 자연스레 카메라를 배치했다.

 

 

낮은 목소리’ 는 총 3편이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을 촬영하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다. 10분 찍을 때마다 30만 원 씩 나가는 셈이라 기본적으로 많이 찍질 못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상상의 콘티를 많이 짰다. 무언가를 찍으려면 기획팀 스태프들에게 허가를 받아서 그들이 허락하는 분량만큼만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촬영을 이어가다 보니 낮은 목소리 3편 <숨결>을 찍을 때는, ‘음, 카메라를 여기에 두고 이만큼만 찍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만큼의 분량으로 끝나더라. <숨결> 러닝타임이 75분 정도인데 1년 반 동안 찍은 게 90분이 안된다. , 저 지금 잘난 척 하는 겁니다(웃음). 그리고 당시에 광목천으로 스크린을 만들고, 영사기를 들고 다니며 6개월 전국 순회를 했다. 어느 지역에서 우리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고 연락을 보내오면, ‘200만 원 정도 써라. 그럼 마음껏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하겠다는 식으로 답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낮은 목소리가 3편까지 버텼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현 상황을 보면 일본의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여성들도 때로는 지치는 것 같다. 그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일본은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미투 피해자가 재판 한 번 열어보지 못한 나라다. 과거에 대해 사죄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린 거다. 일본 위안군 문제에 대해 정부가 사죄, 배상하지 않는 현 상황의 일차적 피해자는 일본 국민, 일본의 여성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민족주의 문제와 더불어 여성 성폭력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안부라는 제도 자체가 성폭력까진 가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패배 했다거나, 이게 지치는 싸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세상이 안 바뀐 걸까?  저는 점차 사회가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뻐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과 같은 이슈들이 가시화되는 순간부터 세상은 바뀌어진다고 믿는다.

 

 

소녀상의 소녀라는 말 자체가 피해자에게 억압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소녀상에 애착을 지니시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할머니들은 당신들의 소녀 시절을 중요하게 여겨서 그러시는 게 아니다. 소녀상이라는 상징이 전 세계에 퍼져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믿기에 그러시는 거다. 이걸 투영해 해석하는 우리들이 문제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시적이지 않다. 훨씬 강인하게 사셨고, 훨씬 거친 분들이다. 대부분의 할머니는 어디에 취직을 시켜준다더라는 식의 거짓말에 속아 성 노예 생활을 하신거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징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전쟁과 여성 안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니까.

 

 

변 감독의 능란한 말솜씨로 관객석은 웃음바다가 되기도, 때로는 금방 진지한 분위기로 변하기도 했다. 끝으로 변 감독은 할머니의 용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불행과 맞서 싸우는 사소한 용기’”라며 용기에 손을 잡는 동지가 되는 것이 곧 할머니를 생각하는 길이라고 전했다. 영화 제작 배경에서부터 미투 운동 등 한국의 현 사회 이슈들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어 더욱 뜻깊었던 GV 시간이었다.

 

 

 

글  윤다은 자원활동가

사진 서민지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