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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EVENT] 한국영화 100주년: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혁명이 일어난다"

지나 마체티 홍콩대학교 교수가 3일 문화비축기지 T2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하고 있다.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영화제)가 3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 T2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 ‘한국영화 100년: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여성을 배제하고 대상화한 채 남성 중심적 서사로 기술되어온 영화사를 비판하고, 여성주의적 시각과 언어로 영화사를 기록하기 위한 자리였다.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바라보면 언젠간 혁명이 일어난다(지나 마체티 홍콩대학교 교수)

 

마체티 교수는 남성의 시선으로 교묘하게 폭력을 로맨스로 둔갑시키는 영화계의 ‘메일 게이즈(male gaze)’에 주목했다.

 

마체티 교수는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캐릭터의 특성과 상관없이 항상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야만 한다”며 “남주인공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요구되는 여주인공 외모의 완벽성이 ‘여성은 남성들에게 보이기 위한 존재’라는 의미를 대중들에게 은밀하게 주입한다”고 비판했다.

 

마체티 교수는 메일 게이즈가 아닌 피메일 게이즈(female gaze)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메일 게이즈는 단순히 여성적 시선이 아니다. 이는 성 소수자의 시선을 포함해 젠더 스펙트럼을 넓히는 다양한 제3의 시선, 사회적 약자의 시선이다. 마체티 교수는 세상을 피메일 게이즈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쳤다.

 

국제학술회의  ‘한국영화 100년: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가 열리고 있다

 

멜로드라마 비평으로 보는 페미니즘 영화 비평(황미요조 영화연구가)

 

멜로드라마 역시 페미니즘 비평의 대상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은 1960년대 말을 대표하는 한국영화로 첫 편의 흥행에 힘입어 1971년까지 연속적으로 3편의 작품이 더 제작되고 이후에도 몇 차례 리메이크된 한국영화계의 대표 멜로드라마 영화이다. 이 영화는 기록적인 흥행과 막대한 대중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에는 거의 비평되지 않거나 그나마 비평되더라도 약간의 비판을 받기에 그쳤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한국영화 비평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 일군의 여성 비평가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비평의 대상으로 발굴하여 분석했다.

 

국제학술회의  ‘한국영화 100년: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가 열리고 있다

 

페미니즘 비평은 미디어계의 백래시와도 싸워야 한다(김소희 영화평론가)

 

김소희 영화평론가는 황미요조 영화연구가의 발표를 이어받아 한국 영화평론사에서 멜로드라마들이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설명했다.

 

한국 영화 평론가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뿐 아니라 <편지>(1997), <약속>(1998) 등 통속극이 흥행하던 시기, 하나같이 멜로드라마가 한국 영화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단지 멜로드라마 제작자를 향한 지적이기보다는 멜로 영화의 관객이 대부분 여성임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여성 관객의 취향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과거 멜로드라마 여성 관객을 ‘고무신 부대’라고 멸칭한 것에서 이어지는 맥락이다.

 

김소희 평론가는 “멜로드라마가 여성 관객의 취향이라는 이유로 폄하 당한다면,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즘”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과거 페미니즘 논쟁이 영화나 감독에만 국한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미투 운동을 통해 영화를 둘러싼 것들이 영화 그 자체보다 더 크고 중요해졌다.

 

김기덕 감독이 과거 영화 촬영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했던 가해 행위가 드러난 지금, 페미니즘 비평이 일종의 예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페미니즘 비평은 영화적 재현에 숨겨진 영화 제작자의 폭력성을 읽어내고, 걸러야 할 감독을 일러주는 일종의 예언서가 되고 있다.

 

김소희 평론가는 페미니즘 비평에서 경계해야 할 지점을 짚기도 했다.

 

“페미니즘 비평이 미디어에서 환영받을 때는 김기덕 감독의 경우처럼 누구든 비판할 수 있을 적이 나타났을 때 만이다.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몫을 굳이 여성 비평가에게만 한정적으로 맡기면서 그 사안이 마치 페미니즘적으로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계의 백래시라고도 볼 수 있다. 페미니즘 비평은 나쁜 영화와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미디어계의 백래시와도 싸워야 한다.”

 

신지윤 셰필드할렘대학교 부교수

 

이어 신지윤 셰필드할렘대학교 부교수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방문기’를 끝으로 이날 학술회의는 막을 내렸다.

 

“서울국제영화제가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여성주의를 어떻게 영화로 실천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토론과 쓰디쓴 논쟁을 통해 성장해왔다는 것을 점차 이해하게 됐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소개하는, 남들과 다르게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많은 용감한 여성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어 기뻤다.”

 

 

 

글  홍보팀 변지은

사진  서민지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