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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0회(2008) 영화제

<4.17> [감독과의 대화] <열세살, 수아>의 김희정 감독을 만나다.

[감독과의 대화] <열세살, 수아>의 김희정 감독을 만나다.

당신이 통과해 온 열세살은 어떤 모습입니까? 사춘기를 겪고 있는 열세살 소녀의 세세한 내면을 담은 영화 <열세살, 수아>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 영화는 2005년 칸영화제 레지당스(신인감독 시나리오 개발 프로그램)에 선정되며 시나리오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관객들은 수아를 통해 자신들이 경험했던 것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와 마주친다. 때이른 더위가 다가오는 봄날의 중턱, 장편 데뷔작 <열세살, 수아>를 통해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는 김희정 감독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17일(목) 오후 5시, 아트레온 5관에서 열린 감독과의 대화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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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한 마술사가 수아에게 빨간 장미를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빨간 장미는 어떤 의미인가?
- 큰 의미를 반영했던 것은 아니다. 수아가 받은 호의, 사랑의 작은 부분을 상징한다. 그러나 엄마는 이 장미를 아무렇게나 버린다. 즉 아이에게는 소중한 호의가 어른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아가 죽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옆에 두고 아빠의 안경을 닦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감독님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2003년도에 아버지와 사별했다. 나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매우 힘들었다. 그 순간 어렸을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면 얼마나 심각한 슬픔에 빠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은 자신이 겪는 경험들을 하나, 하나 저장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세영이가 아빠 일기장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아빠 일기장을 발견했지만 마음이 아플까봐 겁이 나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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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는 수아, 즉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한다. 수아라는 이름을 지은 특별한 의도가 있나? 또 나이를 열세살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부드러운 어감을 주고 싶었다. 수아라는 이름은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이름이라 좋았다. 열세살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나이다. 교복도 처음 입게 되고 성에 따라 남중, 여중으로 따로 나눠지는 나이기도 하다. 많은 변화를 겪는 이 때 예민한 아이들이 갖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 자아를 막 찾아가려고 하는 나이, 그래서 마음의 방을 만드는 아이를 그리고 싶었다.

수아는 영화 초반에 길을 걸으면서 계속 숫자를 센다. 어떤 모티브에서 이런 장면을 삽입했나?
- 어렸을 적 나는 홀수는 좋은 수, 짝수는 나쁜 수라는 나만의 의미가 있었다. 누가 옆에 있으면 숫자를 세지 않는다. 즉 혼자 있을 때만이 숫자를 셀 수 있다. 이 장면을 통해 어린 아이에게 자기만의 세계가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후반부에 엄마 역할의 추상미가 부르는 노래 제목이 <프리지아>다. ‘프리지아’가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수많은 꽃 중에서 프리지아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 ‘프리지아’라는 제목만 내가 정했고 가사는 윤아씨가 붙였다. 꽃의 이미지가 좋아서 프리지아로 택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바로 윤아씨에게 전화해서 감사하다고 전했더니 윤아씨도 기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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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탄 수아가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 수아가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즉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남아있는 엄마를 다시 발견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엔딩 장면을 본 연출부가 아버지가 그냥 지나가는 장면은 무섭다며 한번 안아주는 장면을 넣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너무 자주 등장했기에 따로 넣지 않았다.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매우 궁금하다. 지금쯤 수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 아마 잘 살지 않을까 싶다. 수아 역을 맡은 세영이가 길거리에서 수아 같은 애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고 전했다. 세영이는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동받고 운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웹데일리 자원활동가 김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