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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1회(2009) 영화제

[손프로의 마이너리그] No.3 - 캐릭 열전 1탄 - 첫사랑, 그 달콤 쌉싸름한 기억: 첫사랑에 빠진 L언니들 1




기자회견을 한 지 벌써 열흘이 다 되어 간다. 시간이 참 무섭게도 흐른다. 하루는 징그럽게 긴 느낌인데, 일주일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 이러다 보면 개나리도 폈다 지고, 진달래도 폈다 지고, 그리곤 영화제도 끝나 있겠다. 아... 나도 꽃놀이 가고 싶다아... 2004년, 여성영화제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내 삶에서 '꽃놀이'란 '손 끝에 닿지 않는 동경'으로만 남아 있다. 이릿히.




'꽃놀이 타령'은 이쯤하고, 오늘은 대신 '사랑 타령'을 해볼까 한다. 황사 끝에 마음도 스산한데, 영화 속 예쁜 언니들을 생각하며 기분 전환을 도모해 보자는 심산. 2009년 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천 개의 나이듦', '퀴어 레인보우', '걸즈 온 필름', '아시아 단편경선' 초청작 중 첫사랑에 빠진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레즈비언들을 소개한다. 앞으로 2, 3회 정도에 걸쳐 쓰게 될 '캐릭 열전 1탄'의 주제, "첫사랑, 그 달콤 쌉싸름한 기억: 첫사랑에 빠진 L언니들" 되시겠다.




처음으로 소개할 캐릭터는 '퀴어 레인보우'의 '오버 더 레즈보우'(전 세계 레즈비언 단편을 모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상영되는 <소심한 조의 대범한 사랑(The Nearly Unadventrurous Life of Zoe Cadwaulder)>의 '소심한 조.' 우리 '조'의 얼굴이 제대로 나온 스틸이 있었다면 그녀를 알아볼 사람들도 꽤 있을 텐데, 딱히 잘 나온 사진이 없어 안타깝다. 그녀는 이미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에서 케이트 윈슬렛과 레즈비언의 아찔하면서도 파괴적인 첫사랑을 연기했던 멜라니 린스키. <천상의 피조물>에서 그녀가 보여줬던 살짝 찡그린 눈썹에 매료되어 '아*존돗콤'에서 VHS를 찾아 헤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케이트 윈슬렛 위에서 눈빛을 빛내고 있는 '폴린 파커' 분의 린스키.

 

 



<소심한 조의 대범한 사랑>의 조는 어렸을 때 유성이 떨어져 부모님을 잃는 황당한 사고를 겪은 뒤 삶의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나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 어느날 윗집에서 격렬한 섹스를 하면서 전등의 너트가 머리 위로 떨어지자 조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헬멧을 사러 스포츠 용품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레드'를 만난다. 아래 사진이 바로 조와 레드의 첫 대면.

 






사진은 꽤 촌스럽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음...

 

 



뿌붕. 조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조는 레드에게 빠져들지만, 온갖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레드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과연 조는 '천재지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레드와의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대답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


이 작품은 L.A를 베이스로 레즈비언 영화인 양성에 힘쓰고 있는 미디어 교육 단체이자, 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이티비티티티 위원회>와 같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 파워업(Power Up)의 워크숍 졸업작품이다. <이티비티티티 위원회> 같은 경우에는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인걸>이나 <L워드>를 연출했던 제이미 배빗에서부터 많은 수의 전문 영화인들이 파워업의 작업 취지를 지지하면서 무료로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내년 초 정도에는 신작이 공개될 예정이라니 기대해 볼 만 하겠다. 

 



두 번째로 소개할 캐릭터는 독일 영화 <쏘냐(Sonja)>의 '쏘냐.' 영화제 내에서는 일명 '손자'라고도 불리는 아가씨다.





 



안고 있는 검은 머리 아가씨가 '손자'일 것 같지만, 앞에서 안겨있는 아가씨가 우리의 '손자'다.


 

 



유럽에서는 10대에 대한 영화가 꽤 많이 제작이 되고, 특히 이런 10대 영화의 메카(?)는 네덜란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해 '걸즈 온 필름'에서 네덜란드 작품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 올해는 <열 세살은 괴로워>, <동키걸> 같은 발랄한 10대 네덜란드 영화가 소개된다. <쏘냐>의 경우에는 10대들의 섹슈얼리티 탐험을 다루는 유럽 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이런 경향의 작품으로 <워터 릴리스>가 소개되었었는데, 그런 작품들에서 점차로 동성애 이슈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나름 흥미롭다. 어쨌거나 우리의 '손자'도 여러 혼란 속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남자 친구 안톤이 있지만 어쩐지 그와는 케미칼을 느끼지 못하는 '쏘냐'는 자신이 점점 '절친' 줄리아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줄리아는 그 마음도 몰라주고 남자 친구 사귀기에 전념하고... 섹슈얼리티의 탐험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름 휴가를 갔다 온 뒤 '쏘냐'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첫사랑이 그렇게 달콤하기만은 하지 않다.

 






우리 '손자'를 괴롭히는 '줄리아.' 스쿠터가 꽤 탐난다는...

 


 


'쏘냐'와 더불어서 첫사랑의 고통이라면 고통, 달콤함이라면 달콤함을 느끼는 아가씨가 또 한 명 있다. '걸즈 온 필름'에서 <쏘냐>와 함께 상영될 <마음에 베이다(Heartcut)>의 에바가 바로 그녀다. 10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외모이지만, 여튼 아직까지 키스도 한 번 해 보지 못한 10대, 풋풋한 첫사랑을 꿈꾸는 소녀다. 에바의 첫사랑은 하지만 좀 특별하다.

  


 

 



아빠의 새로운 여자 친구가 바로 그 대상인 것. 아빠의 사랑을 앗아간 여자에 대한 질투인지, 아님 그녀에 대한 동경인지 대체 알 수 없이 불안 불안하게 에바의 감정이 흔들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사랑이 구체화되어 간다. 노르웨이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화면 위로 열정적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차가운 에바의 첫사랑이 펼쳐진다. 프로그래밍을 개인적 취향으로만 하는 건 아니지만 잠시 후 소개할 <체리레드>와 함께 <마음에 베이다>는 참으로 손프로 개인적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천 개의 나이듦'의 <황무지의 추수기>, 그리고 '새로운 물결'의 <콜드 런치>를 보면서 나는 북유럽 영화의 유리면 같은 화면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어딘지 백치미가 있으면서도 사랑을 향해 달려들 줄 아는 열정을 가진 에바 되시겠다.

 

그럼 이어서 달려드는 열정이라면 두 번째 되기 서러운 <체리 레드(Cherry Red)>의 '마리'를 소개하겠다. 개인적으로 다음 번에 소개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세상의 끝에서>의 '칼라'와 '마리'가 언니들 중 가장 '미녀(!!)'가 아닐까 생각하는 중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던 마리는 카페에서 공연을 하는 안나에게 마음이 끌린다.

 






왼쪽 마리, 오른쪽 안나. 안나의 미소가 살짝 느끼해 보이기는 한다.

 





(여기서 살짝... 안나는 어쩐지 이 언니를 닮은 것도 같다.

 


The L Word 의 맥스

 





아닌가... 어쨌거나 확인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후훗)



그러나 안나에게는 이미 연인 사이를 넘어 가족, 아니 가족을 넘어 공기처럼 함께 해 온 동거인이 있고... 마리는 안나가 자신에게 올지 현재 애인에게 머물러 있을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물론 영화건 현실이건 이런 류의 연애담에서 흔히 그러는 것처럼 애인이 있는 매력녀 안나는 애인과의 소원한 관계를 토로하며 마리에게 접근해 온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참 싫어하는 타입이랄 수 있겠다.) 어쨌든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리는 용감에게 안나에게 다가간다.... (스포일러를 피하려니 참 힘들구나.) 잔잔한 화면에 함께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사람의 마음을 설레에게 하는 '말랑 말랑'한 레즈비언 로맨스물 <체리 레드>의 주인공 마리. 꽤 매력적인 캐릭터다.

 


스크롤의 압박도 있고, 밀려드는 업무의 압박도 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아직 첫사랑에 빠진 L언니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