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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내 안에 만들어진 여성혐오를 발견하다_ 씨네 페미니즘 학교 후기

 

도대체 여성영화란 뭐지? 란 기초적인 질문은 여성들은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여성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지 등 수많은 질문들로

퍼져퍼져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2012년 여름 무더위속에서 시작한 씨네 페미니즘 학교에 대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가신청은 

<* 모집인원 초과시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 라는 예의상 멘트를 실현가능케 해주셨지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시도되는 여성영화 강좌이니만큼 부족한 점도,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그 때문에 더 발전된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기대하게 됩니다.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마치며 열혈 수강생 '눈사람'과 '여유'님의 후기로 아쉬움을 달래고자 합니다.

 

 

 

* 씨네 페미니즘 학교  두번째 강좌 : 여성괴물, 공포영화로 살펴보는 이 시대의 여성혐오 수업

 

 

 

여성단체 활동가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 뜻깊은 시간

 

_눈사람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씨네페미니즘에 관한 안내 팜플렛을 받았다. 커리큘럼이 자세하게 나와있지는 않았지만, “영화+여성주의귀가 쫑끗, 눈이 반짝 했다. (나름)씨네필이면서, 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를 위한 강좌인가?? 라는 혼자만의 착각에 젖어 선택한 강좌가 두번째 강좌인 '여성괴물, 공포영화로 살펴보는 이시대의 여성혐오'이다.

 

이강좌는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OO녀 시리즈로 대표되는 여성혐오 현상을 공포영화로 읽어내는 매우 매력적인 강좌였다. 특히 평소 공포영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내게 이 강좌는 매 시간 짜릿함을 선사했다. 내가 평소에 보고 느꼈던 감정이 이런 거구나,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한 건 이런 이유였네? ~ 이건 또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다섯번의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스쳐갔다.

<여성괴물> 강좌를 진행하신 손희정 강사님은 풍부한 텍스트와 재기 발랄한 PPT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한 여성혐오 현상-아줌마시리즈, 된장녀, OO, 김여사까지 살펴보고, 정식분석학을 통한 영화 속 텍스트 분석과, 그것을 통해 공포영화에서 여성혐오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 혹은 여성혐오를 공포영화는 어떻게 재생산 하는지, 또는 그 안에 진보적 메시지는 없는지, 등등. 열강을 이어갔다. 

때때로 ''가 좋아하는 영화와, '여성주의자'로서 좋아하는 영화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곤 했다. 가학 당하거나, 남성을 결국 파멸시키는 팜므파탈, 혹은 여성성을 충실히 수행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한 나의 개인적 기호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 점에서 첫 강의에서 주요하게 언급된 씨네페미니스트인 로빈우드와 바바라 크리드의 이론은 매우 흥미로웠다. 프로이드의 '억압된 것의 귀환'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영화 속 괴물을 분석한 로빈우드의 이론은, 어쩌면 공포영화야말로 가장 진보적인 장르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을 통해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설령 모성권을 거부 하는 여성을 벌하는 <하얀방>이나, 모성을 공포 그 자체로 그리는 <사이코>, 성적으로 문란한 10대를 처벌하는 <13일의 금요일>이라 할지라도, 당대 사회가 무엇을 소외시키고 있는지, 그래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 영화가 나왔던 시대적 보수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강의가 반 진행되었을 때, 손희정 강사님은 정신분석학의 오류와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래서 '정신분석학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오류와 한계를 통해 정신분석학이 도출되고 각광받았던 시대의 환경과 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와 닿은 지점이었다.

여성주의 활동을 하고,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기존의 프로이트 이론이나 라깡의 이론이 굉장히 남성(성기)중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그 이론을 넘어서, 그러니까 기존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배제를 통해 현재의 이론이 좀더 풍부한 바탕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강의에서는 한국의 공포영화를 분석했는데, 어머니의 공간으로 표현되는 전근대적 시대에 대한 공포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귀하거나 회귀욕망을 가진 영화 속 남성들을 혐오하고 무서워하는 것이야말로 욕망하는 것이 아닐까? (원하면 원한다고 말을 해! 제발!) 그렇다면 내가 혐오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헉 첫번째 강의 때 이미 대답을 했었군;;)

여성에 대한 남성의 혐오를 넘어, (여성)가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는 말과 함께 총 5강의 <여성괴물> 강좌는 끝이 났다.

집에 돌아오면서, 내 안에 가지고 있었던 여성혐오에 대해 돌아보았다. 하이힐을 신는 여성을 동경하면서도 내가 결코 그것을 신지 않았던 것은 과연 나의 개인적 취향이었을까?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폭력에 대한 저항 이전에,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수행하고있는 여성에 대한 배제, 혐오는 없었는지. 두고 두고 돌아보아야겠다. 의도와 상관없이 혐오를 바탕으로 하는 운동은 결국 누군가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테니. 

 

 

 

낮은 문턱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여성주의 강의

 

- 여유

 

생애 처음 겪어 보는 무시무시한 무더위와 맞서 싸우고 있을 때, 더위에 지친 피로와 무료함을 달래줄 든든한 지원군을 만났다. 방학이시작될 무렵이었고, 딱히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던 그 때에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바로 씨네 페미니즘학교! 7월 4일부터 8월 1일까지 진행된 두 번째 강좌 ‘여성괴물, 공포영화로 살펴보는 이 시대의 여성혐오’는 한 여름에 기획된 강좌에 걸맞게 매력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여름하면 떠오르는 ‘공포영화’와 최근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혐오’ 분석까지 겸비한 똑똑한 강좌라니. 어차피 단칸방에서 땀 흘리며 잉여롭게 보낼 여름, 씨~원하게 보내자 싶어 씨네 페미니즘 학교를 선택했다.

 

사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10년이 넘도록 드나들었어도 씨네 페미니즘 학교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첫 번째 강좌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느라 듣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낯선 강좌에 대해 궁금증 반, 기대 반으로 참여했으나 참여 전의 귀차니즘과 불안함을 일타쌍피로 날려버릴 만큼 무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당시의 나는 시원한 강의실과 차가운 음료수 한잔만으로도 이미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쾌명쾌상쾌한 손희정 선생님의 꼼꼼하고 배려 돋는 강좌가 빵빵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강의실 가득 너무나 멋진 언니들이 수업을 함께 듣고 있었던 것이다. (우후훗, 사심 가득한 강좌 후기네요.)

 

쾌적한 장소, 주제와 딱 맞는 강사와의 앙상블은 무더운 여름을 이길 충분한 이유가 될 터인데, 그럼에도 강좌의 내용에 더 욕심을 내게 되었다. 솔직히 이 강좌를 듣기 전 가장 마음을 끌었던 것은 분명 ‘여성혐오’에 대한 분석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OO녀들이 사회에 이슈로 등장했고, 강좌를 들을 당시에는 블랙박스 영상까지 동원된 O여사 사건들이 온라인상에 넘쳐났다. 주입식 교육에 능통한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떤 답을 찾기 위해 이 강좌를 선택했던 것 같다. 적어도 이 강좌에서 그 대답에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명확한 답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판타지를 동반했다.

 

그러나 강사는 “이 강좌를 통해 영화 속에서 여성이 괴물이 되는 것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가부장제의 상상력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이 상상력이 우리 시대의 여성혐오 형성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포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 첫 시간부터 강좌의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진실과 팩트가 아닌 ‘관점’을 배우는 강의라고. 몇몇 남성 키보드 워리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여성혐오와도 만나고 있는 지금의 현상에 대한 역사를 공포영화 속 여성괴물들을 살펴보며 찾아보기로 한다고 했다. 때문에 나도 여성비하발언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의 난감한 징후들을 한방에 정리해버리고 싶었던 야무진 생각을 일찌감치 접어두고, 비판 없이 유통만 되는 최근의 사건들이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혐오와 숭배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 볼 수 있게 되었다.

 

강의안에 따라 1강에서는 70~80년대의 헐리우드 슬래셔무비들을 주요 텍스트로 보면서 이 사회에서 무엇이 괴물이 되는지 살펴보았고, 2강에서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卑 / 非體)개념을 통해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 혐오를 생산해내는지, 3강에서는 주체형성 과정을 남성 중심적으로 이해했던 프로이트의 거세이론을 재독해하면서, ‘거세하는 여성’의 사회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앞서 배운 강좌들을 통해 이론적 배경을 논한 다음 4강에서는 한국 영화 속에 등장한 여귀들을 통해 여성을 모성의 영역에 감금하려는 한국 사회의 욕망과 그 모성을 괴물성으로 그려내는 뒤틀린 상상력을 살펴보았다. 마지막 5강에서는 여성을 괴물로 만들고, 그 혐오를 재생산하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한주도 빠짐없이 깨알 같은 분석을 들으며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공포’를 느끼는지 차분히 살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혐오가 최근 들어서야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문제라는 것을 이론과 영화를 통해 차곡차곡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은 여성혐오에 대한 지극히 타자화된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주로 남성)들에게서만 ‘여성혐오’ 현상의 원인을 찾았던 나는 단 한 번도 점검해 본 적이 없었던 내 안의 ‘여성혐오’에 대해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적 맥락 안에서 구성된 ‘괴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괴물들의 탄생을 변화시킬 단초가 되지 않을까.

 

수업이 끝난 후의 뒤풀이도 강좌의 맥을 이어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모인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임에도 소소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키워온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획된 강좌였지만 영화와 현재의 사회문제를 접목시켜 진행된 강좌에 대해 호감을 드러내는 분들이 많았다. 강좌에 대한 애정은 이후 강좌에 대한 기대와 발전방향에 대한 언급으로까지 이어졌다. 친숙한 영화내용들로 접근할 수 있으니 대중/대형 강좌로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대화들이 오고 갔고, 한편으로는 여성주의 언어, 혹은 정신분석학적인 이론들이 문턱이 높아 사람들에게 어렵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들까지 오고 갔다. 기획된 강좌의 특성상 이번에는 ‘공포영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후 다양한 영역의 영상물, 혹은 그 외의 매체나 문화연구를 통한 추가 분석들도 기대된다.

 

비록 예정에 없던 강좌였지만, 예정에 없는 일들이 즐비하게 일어나는 이 다이나믹한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채워준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강좌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