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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_9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다시보기”에 다녀와서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 9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다시보기”에 다녀와서

 

 

 

 

 

“자유를 느끼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중에서 -

 

 

지난 몇 년 동안 성폭력 기사는 메이저 언론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유아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일면서 성폭력 가해자들은 사회적 공분을 샀다. 그러나 성폭력을 다룬 기사들은 하나같이 누가 더 충격적인지 경쟁이라도 하듯 선정적 보도를 일삼았고,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강변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의 70~80퍼센트가 정신 질환을 앓는다고 떠들어대기도 했다.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를 사람이 매사에 조심하고 의심하는 게 성폭력 예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TV 프로그램들은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알려주며 주의를 당부하는 것으로 성폭력에 대한 예방을 가름하려한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서도 TV와 영화는 영상을 통해 끊임없이 성폭력을 재현하고 있다. 올해 생존자 말하기 대회는 참여자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영상을 통해 생존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러한 말걸기를 시도한 데에는 미디어 재현에 대한 비판 인식이 깔려있다.

 

 

 

 

 

'치유의 카메라'에 다 담기지 못한

 

이 작업에 참여한 생존자들은 말하고 싶은 자기 안의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직면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또 많은 사람들과 나눌만한 이야기인지 의문을 가졌던 시간도 많았다고 했다. 어떤 참여자는 지난 수개월 간 영상을 기획하고 찍고 편집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질리도록 봐야만 했다고 말한다. 영상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고, 분리시켜 바라보면서,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자신 앞의 자욱한 안개가 조금씩 걷혀져갔다고도 했다.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을 주었고 자기 치유의 과정이 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영상을 통해 풀어낸다. 자신의 공간을 재현하고 그 때 당시 자신의 감정과 상황들을 누군가에게 속삭이듯 말걸기 한다. <신파적 계기>는 그 상황을 신파적이고 통속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 당시의 심경을 어지럽게 적어 넣은 활자들의 타이포그라피와 클로즈업을 활용한 영상은 마치 한 편의 실험영화를 보는 듯하다. 찢겨져 나간 사진들과 문장들은 다시 어지럽게 재배치되어 새롭게 꼴라주된다. <앨리스 증후군>은 영상을 통해 성폭력 경험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영상은 다른 모든 상황적 요소에 대한 재현은 배제한 채, 손의 표정과 자신의 내면적 목소리에만 집중한다. 스틸 사진처럼 보이는 고정된 화면 속에서 손가락 마디, 풀숲의 잎사귀만이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그녀는‘거기에 있었다, 거기에 없었다’포르트 다 게임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참여자의 내레이션은 자기 부정을 통해 생존할 수 있었던 그녀의 생존전략과 그로 인한 분열을 반복적으로 영상 속에 기입한다.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로 선택했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기에 있었지만 없었다. 없었지만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참여자들의 영상작품이 그녀들 각자의 말하기와 결합되어야만 완성되는 작품이 된다는 점이다. <신파적 계기>에서 참여자는 재생시간이 표시되도록 플레이해둔 카메라 영상 앞에서 그 계기가 구성해온 현재적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앨리스 증후군>이 상영된 이후, 참여자는 그 상황 이후 수치심으로 자기 자신을 괴롭혀왔던 십 년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십년에 대한 말하기 이후, 영상은 다시 <선영아, 미안해>라는 에필로그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참여자는 십대의 자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신파적 계기> 스틸, 사진 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 **

 

 

 

 

 

말하기, 그리고 듣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말,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던 말, 부메랑이 되어 상처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웠던 말, 그 말을 하기 두려운 만큼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찍은 영상을 다시 볼 때면 처음 겪는 것처럼 무섭고, 따갑고, 쓰리고, 아팠다. 그런데도 말하고 싶었다.‘치유’의 과정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지 못할 고통과 눈물, 그리고 용기와 의지력으로 만들어낸 영상 작품들은 고통의 기억을 말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했다. 또한 이 작품들을 본 경험은‘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생각하게끔 했다. 누군가의 고통의 기억, 생존의 경험을 어떻게 들어야할까? 그녀들은 길고 긴 시간을 준비해 그 자리에 섰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러 온 나는 정작 준비가 안 된 느낌이었다.

 

 

** 9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 다시보기", 사진 제공 : 한국성폭력상담소 **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당혹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던 순간도 있었으며, 힘들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녀에게 지지의 박수를 쳐주어야할지 혹은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려 주어야할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말하는 그녀들만큼이나 듣는 나 역시 긴장해있었고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나오며 다시금 드는 생각은‘어떻게 들을 것인가,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듣기의 윤리, 혹은 보기의 윤리.

 

하나의 영상 작품은 제작자와 감독의 의도를 관객이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지만, 관객성 이론은 관객의 능동적 주체성을 강조하며 관객의 반응과 독해에 따라 텍스트가 구성되는 의미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실제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섬세한 제작자의 윤리가 요청되어진다. 그런 만큼 보는 이, 듣는 이, 즉 관객의 윤리 역시 요청되는 것이 아닐까. 이번 말하기대회는 생존자의 경험에 응답하는 나의 감정과 반응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생존자의 경험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안전한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섬세하게 배려한 주최 측의 진행은 고통의 경험이 안전한 공간에서 타인과 나누고 공감되었을 때 어떤 공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은 성폭력은 분명 한 사람이 겪어내기에 무척 힘든 일이지만,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원치 않고, 예상치 못했지만 갑자기 날아든 칼에 베인 깊은 상처와 같다고 적고 있다. 그냥 치료가 필요한 상처로만 봐주기를, 칼자국은 그저 상처일 뿐, 그 이상 다른 생각은 말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상처가 아물려면 몸이 세균과 싸워내고 새살이 돋아야 한다. 결국에는 그 칼자국은 몸의 일부로 남게 되겠지만, 새 살이 차오를 것이다. 그녀는 그런 과정의 하나로 글을 쓴다고 적었다.

이 말하기의 과정들이 그녀들에게 이러한 새살 돋기의 과정이었기를 바란다. 그 한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다른 질감과 무게감을 지닌 내 상처에게도 용기가 되었다. 감사하다. 한 번도 생존자 말하기 대회에 참여해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참여해보기를 권한다.

 

 

홍소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