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도착한 또 하나의 프리즈 프레임 <카트>
<카트>(감독: 부지영)는 여러 면에서 놀라운 영화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소재로 탁월한 완성도의 대중적인 상업영화를 만들었다는 점, 염정아, 김영애, 문정희 같은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기꺼이 출연했다는 것, 그리고 최근 상업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배우 중심의 영화라는 점에서 쉽지 않은 소중한 성취를 이뤘다. 게다가 주제전달의 명징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분명하게 잡고 있기도 하다.
<카트>의 개봉으로 최근 자주 언급되는 영화가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다뤘던 장산곶매 제작의 <파업전야>(1990)가 바로 그 영화다. <파업전야>는 노동을 소재로 제작된 최초의 독립장편극영화로, 정부의 상영금지처분에도 불구하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순회상영회를 통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30만 관객수를 기록했던,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영화다.
노동자의 파업이라는 소재와 프리즈 프레임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의 유사함으로 인해 <카트>는 1990년작 <파업전야>와 자주 비견된다.
이 두 영화는 노동자들의 파업이라는 소재를 다뤘다는 것과 <카트>를 제작한 명필름 소속의 이은 대표가 <파업전야>의 제작자였다는 사실에서 연관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두 영화 모두 신파성 짙은 멜로드라마 장르에 파업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대중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뛰쳐나오는 노동자들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다가 프리즈 프레임(화면을 정사진처럼 보이게 하는 정지 화면 효과)으로 포착하는 유사한 결말을 갖고 있다. <카트>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서 함께 카트를 밀고 나가는 대형마트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정지 화면으로, <파업전야>는 공장에서 몽키스패너를 들고 뛰쳐나가는 남성 노동자들의 정지 화면으로 끝난다. 김소영이나 폴 윌레만(Paul Willemen) 같은 영화학자들은 <파업전야>처럼 1980-90년대 한국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프리즈 프레임 미학이 봉쇄나 해결 불가능성의 표식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그런 면에서 <카트>와 <파업전야>의 유사성은 씁쓸하기도 하다. 20년 전 전진의 운동을 멈추게 만들었던 해결불가능의 구조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트>를 보며 개인적으로 연상된 또 다른 영화는 2006년 제작된 이혜란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우리들은 정의파다>이다.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70년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과 그 이후 27년간 이어져 온 27년간의 원직복직 투쟁을 기록한다. <카트>는 부지영 감독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노동영화이기도 하지만 분명 여성영화이기도 하다. <카트>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듯이 비정규직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점,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이 남성에 비해 더 쉽게 해고될 수 있는 취약한 지위에 있다거나 정규직 관리직이 대부분 남성으로 성별화되는 점은 노동문제를 다룰 때 젠더적 관점의 개입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카트>는 서사적 구성에서도 여성영화로서의 특징을 드러낸다. <카트>는 충분히 1인을 중심으로 영웅화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사연과 연령대를 가진 모든 캐릭터에게 가능한 이야기를 고르게 배분하려는 공동체적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1인을 중심으로 극화되며 클라이맥스에서 최고조에 달해야 하는 멜로드라마성이 약화되는 흥미로운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처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있는 듯한 공동체적이고 원형적인 서사구조는 <우리들은 정의파다>의 구성과 여성들의 자기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방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여성 공동체의 특징은 실제 파업현장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도 두드러진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서로 언니와 동생이 되고, 같이 밥을 해먹고, 서로의 아이들도 돌봐주면서, 집안 사정도 알게 되는 식으로 자매애를 형성하는 것은 두 영화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장면들로, 남성 노동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묘사와 분명한 차이를 갖는 부분이다.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한 여성 노동자의 인터뷰가 함께 파업했던 또 다른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디졸브 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형의 구조를 갖는다. 그녀들은 항상 자신의 이야기 속에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함께 삽입한다. 이 자매애 혹은 여성적 연대에 근거한 서사의 공동체적 원형 구조는 여성 노동자들의 스토리텔링이기에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카트>의 시사회에서 영화에 출연한 한 젊은 여배우는 다수의 여배우들이 함께 모여 작업을 해 더 재미가 있었고 또 그곳에서 자신의 롤 모델을 찾을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영화 현장 분위기도 직업의 성격은 매우 다르지만 여성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스펙트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이 남성캐릭터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고 다수의 여배우들이 함께 등장하는 영화를 찾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두 영화에서의 프리즈 프레임은 양가적이어서 완전히 반대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결말의 프리즈 프레임은 멈춰버린 전진의 운동을 현실에서 지속시킬 것을 관객에게 긴급하게 요청하는 미학으로 볼 수도 있다. <카트>는 우리가 오랫동안 보고 싶어 했던 여성노동영화다. 초반에 약진했던 <카트>는 현재 대형배급자본의 힘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카트>는 12월 8일부터 대한극장과 인디스페이스 등에서 한 달간 장기상영에 들어간다. 이제 우리가 멈춰선 그 카트를 힘차게 밀어줄 때이다.
조혜영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카트>와 같이 보면 좋을 영화 *
<외박> (김미례, 2009, 한국,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1회 상영작)
<후쿠오카의 필리피나> (디치 캐롤리노, 사하나 부사니, 1999, 필리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9회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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