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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연재 ③ 프로그래밍의 기술: 여성영화제의 실험, 과거와 현재 / 노르마 게바라




* 연재순서

1부: 영화 산업과 여성 영화 정책

① 할리우드와 미국 독립영화 산업에서 여성 영화인의 현재 / 멜리사 실버스테인(아테네영화제 집행위원장, ‘우먼 앤 할리우드’ 창립자 및 편집장)

② 스웨덴의 “성인지적 영화 정책” 사례 / 토베 토르비욘슨(스웨덴영화진흥기구 영화/사회원장)


2부: 여성영화제의 문화정치학과 국제 네트워크

 프로그래밍의 기술: 여성영화제의 실험, 과거와 현재 / 노르마 게바라(프랑스 끄레떼이유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F워드: 여성영화의 미래적 이슈에 대응하기 / 베티 쉬엘(독일 도르트문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여성영화제의 문화정치를 재조정하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사례 / 권은선(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중부대학교 교수)

 이행기의 네트워크, 아시아 여성영화제 네트워크의 전망 / 아낫 쉬퍼링 코헨(이스라엘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프로그래밍의 기술: 여성영화제의 실험, 과거와 현재


노르마 게바라 (프랑스 끄레떼이유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Ⅰ 끄레떼이유여성영화제 –프로그래밍의 기술


1. 영화제 역사




‘끄레떼이유여성영화제(Festival International de Films de Femmes)’는 매년 개최되는 이벤트로 여성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할 수 있는 세계적인 행사이다. 영화감독들에게 특권화된 플랫폼으로서 오랫동안 차별 받아왔고 여전히 배급상황이 열악한 전세계의 작가주의 여성영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문 행사로 수년간 지속되어왔다.이 영화제는 1979년에 출범했다. 당시 여성 감독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영화제는 이러한 독립영화 감독들이 첫 발걸음을 내딛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영화를 통한 현실참여의 지속적인 여정을 뒷받침해주었다.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재키 브에Jackie BUET는 1976년에 예술 프로젝트에 헌신하기 위해서 교직을 떠났다. 그녀는 다른 문화와 다른 사회를 발견하기 시작했고 이런 연유로 주로 중남미에 있는 몇몇 국가들을 방문했다(특히 쿠바에서는 1년 간 체류하기도 했다). 1978년에 파리로 돌아온 뒤, 그녀는 반센느 대학교(University of Vincennes)에 입학해서 문화부의 문화 프로젝트 디렉터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을 이수했다. 그녀와 엘리자베스 트레하드(Elisabeth TREHARD)는 ‘국제 여성 영화제’를 설립했고 제1회 영화제가 1979년 3월에 프랑스 남부 도시인 소(Sceaux)에서 열렸다.
70년대 여성주의 운동의 산물인 국제여성영화제는 1978년 창립 때부터 두 학파를 계승해왔다. 하나는 여성이 인간일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신념에 근거한 여성주의 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술과 대중의 공존을 선호하고 예술가의 중요성을 옹호해 온 프랑스의 문화적 실천 환경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영화제는 여성 영화감독들을 예술가로 인정해왔다.
1978년에는 이미 여성들이 만든 영화에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었다. 두 가지 유산이 이러한 새로운 작품들에 공존했다. 첫째는 산업이자 예술인 이 전문직업군에 여성 운동의 간접적 결과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둘째는 감독들이 형식과 시나리오, 촬영에 보다 예술적인 측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매년 130명이 넘는 여성 영화감독들과 2만여 명의 관객들이 찾는 우리 영화제는 21세기 여성 영화감독들의 여성 재현에 대한 기여와 이해를 치하한다. 이러한 여성감독들은 일련의 필수 해방 이슈들의 인식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 여성과 남성의 특징들을 경유한 인간 본질에의 도달, 젠더에 대한 풍부한 문제제기, 그리고 복합적인 여성들의 초상을 탐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각인시켜주는 두 가지 섹션이 있다. 하나는 50편의 미개봉작들(장편서사영화 10편, 장편다큐멘터리 10편, 단편영화 30편)을 소개하는 국제 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한 여배우를 선정해 출연작 품들과 영화 프리뷰 등을 소개하는 “자화상(Self-portrait)”이라는 특별 주제 섹션이다. 이러한 연례 이벤트 외에도 영화제 스태프는 한 해에 걸쳐 다른 많은 중요 활동들을 수행한다. 일례로, 프랑스와 해외에서 특별 상영회를 하거나 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훈련을 하기도 하며, 소년원에서의 상영회를 열어 영화감독들과 죄수들 간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노르마 게바라



2. 프로그램 소개
출품작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올해에는 1,600편이 넘었다) 높은 수준의 작품들이 많아 선정 절차가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더욱이 경쟁분야의 경우, 선정작수가 장편픽션 10편과 장편다큐멘터리 10편, 단편 30편으로 한정되어 있다.

[경쟁분야]
장편 픽션
새로운 재능을 찾는 국제 경쟁은 50편의 신작 영화들로 유럽영화가 70%를 차지한다. 장편픽션영화의 경우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10편 중 한 편의 감독에게 3,800 유로의 상금을 준다.
엄청난 수의 출품작들은 이 섹션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을 이미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러한 영화들의 가시성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선정작이 되기 위해서는 영화의 우수성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존의 틀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놀래키고 매혹시키며 질문을 제기하는 영화의 능력과 퀄리티를 의도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왔다.
견고한 이야기에 대한 비전과 시선, 참신함, 독창성, 그리고 장르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를 겸비한 영화감독들의 작가주의 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신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지의 여부가 픽션영화 선정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장편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오른 10편의 작품 중 하나를 선정해 “안나 폴리코브스카야 Anna Politkovskaya”상을 수여한다. 살해당한 러시아의 저널리스트를 기리기 위해 2009년에 재정된 상으로 저널리스트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최고의 다큐멘터리를 뽑아 감독에게 1,500 유로의 상금을 준다. 다큐멘터리는 TV 르포르타주에서부터 작가주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영화제 프로그래머에게는 형식과 주제를 즉시 구분해서 파악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다큐멘터리에서 이 두 라인이 유사성, 뉘앙스나 참조점을 불가피하게 인정더라도 우리는 감독들의 진실한 관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우리는 견고한 이야기에 대한 비전과 시선, 참신함, 독창성, 그리고 장르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를 겸비한 영화감독들의 작가주의 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다큐멘터리가 중요한 이슈를 다루고 있긴 하나 경쟁작에 뽑힐 만큼의 영화적 퀄리티를 보유하고 있지 못할 때에는 선정 과정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여성 이슈와 관련하여 변화하는 사회경제적/정치적 조건들과 상호결합된 기억과 가시성의 문제를 매우 직접적으로든 표면적으로든 제기하고 있는 영화들을 선정하고자 한다.

단편영화
단편영화 경쟁부문에는 총 30편의 작품이 수상 후보로 오른다. 이들에게는 까날 플러스 상(Canal + Award), 프리 시네시네마 관객상(Prix CinéCinéma audience Award), 보마르세 스칼라쉽 라이팅 상(Beaumarchais scholarship writing Award), 파리 에스트 끄레떼이유 대학 상(University Paris Est Créteil) 등이 수여된다. 일반적으로 필요가 규정을 압도한다:
일종의 특권화된 배급창구로서 대부분의 영화제는 단편 영화의 경우 30분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에, CNC(국립영화센터 National Center for Cinematography)는 59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단편 영화는 이음매 없는 자기 현시적인 가능성들을 광범위하게 포괄한다. 이러한 포맷이 이미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을 재전유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내레이션을 시각적이고 극적인 강렬함과 부드럽게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규범에 순응하거나 등급을 매기는 것과 같은 위험한 유혹을 피할 것이다.
단편영화는 길이가 짧기 때문에 배급이나 유통에 있어 대안적인 패턴을 강구한다. 오늘날의 단편영화들은 짧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장편 영화 프로그램의 핵심 파트를 구성하며 소개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항상 장편영화에 앞에 단편영화를 붙여서 프로그래밍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결합은 너른 범주의 미학적이고 서사적인 실험을 향한 행운으로 발견과 강화의 원천이 되곤 한다.

[비경쟁 부문: 자화상]
올해 게스트는 프랑스의 연극 및 영화 배우인 잔느 발리바르(Jeanne Balibar)였다. 그 동안 함께 했던 영광스러운 게스트들은 아래와 같다:

조시앙 발라스코 (Josiane BALASKO)
나탈레 베이 (Nathalie BAYE)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제인 버킨 (Jane BIRKIN)
도미니크 블랑 (Dominique BLANC)
캐롤 부케 (Carole BOUQUET)
제랄딘 채플린 (Géraldine CHAPLIN)
까트린느 드뇌브 (Catherine DENEUVE)
마리아 펠릭스 (Maria FELIX)
안나 카리나 (Anna KARINA)
베르나데트 라퐁 (Bernadette LAFONT)
에이사 마이가 (Aïssa MAÏGA)
잔느 모로 (Jeanne MOREAU)
뷜 오지에 (Bulle OGIER)
이렌느 파파스 (Irène PAPAS)
미셀린 프레즐 (Micheline PRESLE)
샬롯 램플링 (Charlotte RAMPLING)
도미니트 산다 (Dominique SANDA)
마리아 슈나이더 (Maria SCHNEIDER)
한나 쉬굴라 (Hanna SCHYGULLA)
델핀 세리그 (Delphine SEYRIG)
모니카 비티 (Monica VITTI)
앤 알바로 (Anne ALVARO)

[특별전]
지난 3년간 유럽 영화들은 우리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2011년 영화제에서는 “유럽의 남쪽”이라는 특별전을 통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의 여성영화 제작의 힘을 조명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유럽의 심장 Au Coeur de l’Europe”이라는 특별전을 열어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여성영화를 소개했고, 2013년에는 “유럽 익스트림 L’EuropeExtême”이라는 특별전을 열어 헝가리, 불가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그루지야, 체코 공화국, 러시아, 크로아티아 여성영화를 소개했다.

[프리뷰/프리미어/미개봉작]

왼쪽부터 <심플 라이프>, <한나 아렌트>, <클립>의 스틸컷


이 프로그램은 몇몇 프리미어 작품이나 미개봉 작품, 특별 상영과 놓쳐서는 안될 영화들을 항상 소개해왔다. 또한 해외의 많은 기대작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올해는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한나 아렌트>와 세르비아 감독 마자 밀로스의 <클립>, 대만 감독 허안화의 <심플 라이프>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마스터 클래스/ 질의응답 / 토론 / 컨퍼런스]
영화제라고 해서 단순히 영화만 상영하는 것은 아니라, 관객과의 만남, 질의응답, 토론, 컨퍼런스를 위한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국제여성영화제는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국제적인 이슈와 시사 문제에 질문을 던져왔다. 우리는 관객과 게스트들의 만남을 주선해 모든 다양한 주제들을 횡단하며 학제간에 관점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미팅 프로그램으로서 이러한 토론들은 우리의 관습들 가로질러 논쟁하고 야유하면서 지식
에 대한 전지구적 접근이라는 비전과 교류를 서둘러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관객들이야말로 영화제 상영작들을 관람하며 기존 질서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슈들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러한 만남들의 자극제가 된다.



Ⅱ 영화 강의 Leçons de cinema


    


국제여성영화제의 창립자이자 디렉터인 재키 브에(Jackie Buet)는 생생한 증언을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에 입각해 지난 10년 간 “영화 강의”를 발전시켜왔다:

“영화 강의”는 크레테이 영화제에 참가했던 많은 영화감독들 중 일부와 나눈 20분 간의 대화를 말한다. 2013년에 우리는 이러한 독특한 비디오 인터뷰를 300여 회를 실시했다. 이러한 강의는 미라 네어, 마가레테 폰 트로타, 아네스 바르다를 비롯한 많은 감독들이 밝히는 자신들의 삶과 작품세계, 예술가적 취향 등에 대한 증언과 그 현장에 대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은 역사를 새기는 강력한 증언이자 진정한 삶의 교훈이다. 2005년에 우리는 보석과도 같은 창조력을 지닌 아시아 감독들에 대한 DVD를 발매했고 2009년에는 19편의 영화 강의를 묶은 박스세트를 출시했다.

연중 프로그램 / 외부 프로그램: 문화와 연대
매년 영화제는 상영회를 파트너 극장으로 확대해 외부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더욱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도소에서의 특별한 활동을 해왔다. 최근에는 발드마른(Val-de-Marne)의 “감옥 서비스와 집행유예원(Service pénitentiaire d'insertion et de probation)”과의 협력을 통해 프렌(Fresnes)에 있는 교도소에서 2012년 영화제 선정작들을 상영한 뒤 감독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또한 우리는 내부의 비디오 채널을 통한 방송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1995년 이후, 영화제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디오 워크숍을 이웃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주제(움직임, 기쁨, 시간 등)를 다룬 1분 길이의 비디오 작품들이 탄생했다. 이러한 제작활동들은 프랑스에 있는 다른 도시들이나 그룹들에서도 방영된다. 이탈리아에 있는 알마 마떼르(Alma Mater) 센터와의 교류는 크레테이 여성 비디오 제작 그룹의 투어 동안에 촉발되었다.

아이리스 Iris: 기억을 위한 공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제는 “아이리스”라는 이름의 영화 은행을 개발해왔다. 이곳은 우리 영화제의 다양한 작품들을 디지털로 변환해 저장하고 있다. 여성/영화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6,000편이 넘는 영상들과 문서들은 연중 접근이 가능하다. 주제별 카탈로그 또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아이리스는 자신들의 영화를 영화제에 출품한 감독들에게 관련 전문가들이 영화제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도록 영화 은행에 복사본을 보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젊은 관객들: 시선 교육과 거래 훈련
더불어 영화제는 젊은 관객들에게 초점을 맞춘 워크숍인 시네파고(Cinéphage) 활동을 독려한다. 이 워크숍은 영화제에 앞서 학교에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각기 다른 영화의 특징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행사를 통해 고등학교 및 대학교 심사위원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서로 교류할 수 있다. 여성 영화, 페미니즘, 사회 이슈 관련 영화제 출판물과 학술논물 국제여성영화제의 특별한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영화제 수집품들이 ECLAP 웹사이트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즉 우리 아카이브를 통해 우리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300편이 넘는 “영화 강의”와 역대 경쟁부문 출품작들 및 수상작들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자료들은 INA(Institut National del’Audiovisuel, 국립시청각협회)에 의해 디지털로 보존되어 있으며,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 도서관 François Mitterrand National Library 에서 관련 이슈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전문가들이 이용가능하다.
영화제에서는 20주년을 기념해 여성 영화감독과 영화에 대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연구원과 역사학자, 영화감독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여성영화의 시작에부터 그 진화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영화제는 우리 아카이브에 쌓여있는 모든 역사적 기록들을 정리하고 분석한 사전을 발간하고 싶다는 열망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결론
35년 간의 고되고 집중을 요하는 업무를 겪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영화제 디렉터인 재키 브에와 그녀의 팀은 미래세대를 향한 자신들의 임무를 잘 알고 있다. 그 임무를 통해 그 동안 많은 아이디어들과 많은 학파의 목소리를 실현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성 감독들의 몇 세대에 걸친 작품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여성들은 힘을 키워 왔다. 여성 감독들의 활동은 장소와 사회적 차이, 문화 유산에관계 없이 전세계에 걸쳐 영화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를 증진시켜왔다. 오늘날의 영화는 보편적인 차원에서 과거와 우리를 잇는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베일이 걷히고 공간이 열리는 순간을 목도한다. 여성들의 영화는 침묵과 여성의 비가시성을 동봉했던 수수께끼에 종지부를 찍었다.


출판물
Autour de l’exil.N°41 Mars 2005.Editeur Le Manuscrit
Films de Femmes.Six générations de réalisatrices.Éditions Alternatives. 1995
20 ans de théoriesféministessur le cinéma.CinémAction N° 67. 1993 Bulle Ogier


Ⅲ 재키 브에와의 문답

     

재키 브에는 1979년부터 국제여성영화제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이다. 그녀는 생 말로에서 태어났고 현재 프랑스 국민이다. 캉대학교에서 역사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10년 간 강의를 했다. 1976년에 예술 프로젝트에 헌신하기 위해서 교직을 떠났다. 그녀는 다른 문화와 다른 사회를 발견하기 시작했고 이런 연유로 주로 중남미에 있는 몇몇 국가들을 방문했다(특히 쿠바에서는 1년 간 체류하기도 했다). 1978년에 파리로 돌아온 뒤, 그녀는 반센느 대학교(University of Vincennes)에 입학해서 문화부의 문화 프로젝트 디렉터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을 이수했다. 마침내 그녀는 1978년에 ‘국제 여성 영화제’를 설립했고, 제1회 영화제가 1979년 3월에 프랑스 남부 도시인 소(Sceaux)에서 열렸다. 페미니스트이자 프랑스 문화 전문가로서 서로 친구인 두 여성, 즉 엘리자베스 트레아르와 재키 브에가 이 영화제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들은 같은 팀과 함께 1990년까지 매우 가깝게 일해왔다. 쉬지 않고 일을 해온 재키 브에는 현재 새 로운 팀과 함께 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으며 앞으로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느낀다.


언제 어떤 이유로 영화제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국제여성영화제는 1978년 설립 당시부터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물로서 두 학파의 유산을 계승 받았다. 하나는 여성이 인간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담은 페미니즘 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앙드레 말로의 혁신 이후 예술과 대중이 함께하는 것을 선호하며 예술가의 중요성을 옹호하는 프랑스의 문화적 실천 배경이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우리는 여성 영화감독들을 예술가로 고취시키기 위해 애써왔다. 1978년에 이미 우리는 여성들이 만든 영화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두 가지 유산이 공존했다. 첫째는 산업이자 예술인 이 전문직업군에 여성 운동의 간접적 결과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둘째는 감독들이형식과 시나리오, 촬영에 보다 예술적인 측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매년 130명이 넘는 여성 영화감독들과 2만여 명의 관객들이 찾는 우리 영화제는 21세기 여성 영화감독들의 여성 재현에 대한 기여와 이해를 치하한다. 이러한 여성감독들은 일련의 필수 해방 이슈들의 인식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 여성과 남성의 특징들을 경유한 인간 본질에의 도달, 젠더에 대한 풍부한 문제제기, 그리고 복합적인 여성들의 초상을 탐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프랑스에는 정말로 다른 나라들보다 여성 영화감독들이 더 많은가?
만일 그렇다면 이처럼 많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978년 당시 프랑스에는 여성 영화감독들이 실제로 아주 드물었다. 아네스 바르다는 매우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베를린영화제의 영 시네마 포럼에서 특별한 부부인 울리히 그레고르와 에리카 그레고르 덕분에 뉴 저먼 시네마에 여성감독들에게 주어진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영감을 줬고 우리는 접촉을 시작했다. 먼저 베를린과의 전문적인 연결고리를 구축하고 예술적 표현의 수준과 감독들의 인간적 면모에서 모두 우리를 압도했던 젊은 독일 영화와 만났다. 우리는 거기에 정말 많은 여성감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헬마 잔더스-브람스의 <독일, 창백한 어머지>가 프랑스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0년 소(Sceaux)에서 였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비평 역사에 길이 남을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독일 감독들은 높은 기준과 최근 역사의 무게를 전면에 놓고 자신들만의 길을 닦아 온 것이다. 우리는 또한 캐나다, 스웨덴, 네덜란드 영화들을 확인했다. 이러한 감독들이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지점은 그들이 여성영화를 통해 관음증에 기대지 않고서 친밀하고 특별한 이슈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통상적인 내레이션 코드를 파괴했고 이것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들이 만드는 정치 영화는 그것이 픽션이든 다큐멘터리이든 간에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들은 동성애 이슈를 매우 단순하면서도 진솔하게, 우아하면서도 급진적으로 다루곤 했다. 대표적으로 샹탈 애커먼을 그랬다. 자클린 오드리의 뒤를 이어 50년대에 아네스 바르다가 등장했다. 당시 그녀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1962년에는 <5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고, 운좋게도 평론가들이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옹호해줬다. 또한 그녀는 반식민주의 투쟁에도 개입했고 68혁명 이후에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를 발표하며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경험한 시대를 긍정하는 그림엽서이자 여성들이 살아온 분쟁의 시대에 대한 기록이다. 그녀는 1985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방랑자>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 상을 통해 프랑스 누벨바그의 포문을 연 감독의 훌륭한 작품이 확실히 인정을 받게 되었다.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아네스 바르다는 우리 영화제의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1980년대가 되자마자 아네스 바르다 덕분에 여성 해방운동과 1968년 5월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1968년 5월과 여성해방운동이 결집된 순간들이 해방과 창조를 대한 욕망을 공표했던 프랑스 여성들, 즉 <해적의 약혼녀>의 넬리 카플란, 야니크 벨롱, 마리엘 이사르텔, 콜린느 세로 등에게 자극을 줬다.
샹탈 애커먼과 같은 핵심 인물들은 우리에게 모성애와 관련된 사회적 죄의식에서 자유로운 능동적인 성인 여성 캐릭터들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마그리트 뒤라스와 같은 놀라운 지식인 또한 등장했다. 우리는 샹탈 애커먼과 마그리트 뒤라스와 함께 작업하는 델핀 세리그처럼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활동도 조명해야만 한다. 프랑스에는 잔느 모로와 같은 몇몇 여배우들이 다른 종류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상드린 보네르와 토니 마샬 같은 독보적인 여배우들은 카메라 뒤에서도 활약했다.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중요한 영화학교인 IDHEC(현 Fémis)를 꼽을 수 있다. 이 학교에 등록한 학생들 중과반수 이상이 여성들이다. 프랑스의 많은 여성 감독들 및 촬영감독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재정적 원조를 해주는프랑스의 시스템(CNC) 덕분에 프랑스 여성 영화감독들의 수가 점차로 증가하기 시작했다(1978년에 2%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서 20%까지 증가했다).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여성감독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프랑스에는 여성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지원제도가 있는가?
정부는 그들의 활동을 독려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도와주는가?
우리는 여러 곳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중앙정부(문화부, 여성 현황 개선을 위한 대표단, 청년체육부, 외무부), 크레테이 시, 발 드 마른 지방의회와 EEC, 개인 스폰서, 기업 지원, 특별 보조금 및 원조 등. 프랑스에는 영화감독들을 위한 재정 지원 시스템인 제작지원금제도(avance sur recettes)가 있다. CNC에서 영화감독들에게 주는 지원금으로서 시나리오를 CNC 선정 위원회에 제출해서 심사를 통과하면 받을 수 있다. 전문 위원회 구성원들은 제출된 모든 시나리오를 읽고 토론과 투표를 거친 후에 지원작을 결정한다. 그 동안 많은 여성감독들이 지원을 받았으며, 이는 여성들에 대한 프랑스의 문화적 특례 덕분이다.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많은 여성감독들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산업에서 여성들은여전히 소수이지 않는가?
그렇다. 전체 영화감독에서 여성감독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5%에 불과해 여전히 소수이다. 또한 다소 불편한 현상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첫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많으나 그들이 두 번째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 힘이 든다. 너무 많은 젊은 감독들이 첫 번째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고 사라져 버린다. 그들은 샹탈 애커먼이나 아네스 바르다, 클레르 드니, 카트린 브레야 처럼 자신들의 작품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여학생을 많이 뽑는 페미스(FEMIS)와 같은 영화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쓴 시나리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현재의 프랑스 제작 시스템은 프랑스 예비 감독들이 새로운 주제와 그것을 촬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허용해준다. 그러나 그 후에 두 번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5년 이상을 기다려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감독인 진느 라브루네는 정말 대단한 감독이지만 TV와 영화를 구분하는 프랑스의 분배 시스템의 희생양이었다.
프랑스에서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여성감독들은 최소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대단한 비율만큼이나 이 분야는 여성감독들에게 가장 문제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여성감독들이 특별히 선호하는 작품 주제나 장르가 있는가?
있다. 매우 다양한 나라 출신의 여성감독들은 특별한 이슈에 대한 흥미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의 신체(가끔은 자기자신의 몸)에 대한 재현,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지리적 동일시 등이다. 일례로, 미국감독들은 공간, 사회계층, 투쟁, 소외, 새로운 이주, 빈곤과 집없음, 공동체와 문화적 다양성,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라크 전쟁,정치, 경제, 버락 오바마가 제기한 희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다른 장르를 가로지르며 풀어낸다.

그 영화들은 그런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렇다. 전세계 감독들에게 선구자격인 아네스 바르다의 예를 살펴보자. 그녀는 사고의 전환을 멈추지 않고서 단편과 다큐멘터리, 장편과 복수의 스크린 설치작업을 오가며 아름다운 영화를 찍고 있다. 미국의 독립영화감독들은 모든 영화장르를 탐구해왔다. 시스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말이다. 따라서 역사에 매우 집착하는 유럽인들보다도 미국인들이 모든 내러티브를 벗어나 자기 자신의 몸을 참조점으로 이용하면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실험영화를 찍는 여성감독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은 마야 데런이 할리우드에 대항하는 지속가능한 대안처럼 보이는 첫 발걸음을 떼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이 자유로운 영역에서 작업하는 것을 가치있게 여긴다. 이처럼 새롭게 태어난 영화장르는 많은 차이들과 소외된 목소리들, 그중에서도 성소수자들의 그것을 위한 영토가 되었다. 바바라 해머, 수 프리드리히, 비비안 오스트로브스키, 트린 티 민-하의 영화들은 이러한 새로운 영화의 기발한 증거들이다. 다른 감독들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다. 나는 여성적 글쓰기의 특이성을 묘사하기 위한 예를 하나 들고자 한다. 앨라니스 오봄사빈은 캐나다 아베나키족의 유일한 감독이다. 가수이자 이야기꾼으로서 그녀는 자기 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그녀는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했고 가장 좋은 방법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영토의 독립성과 풍습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자기 부족민들의 투쟁을 알리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임해왔다. 비록 그녀가 인디안 보호구역을 떠나면서 자신의 뿌리를 잘라버렸을지라도 그녀는 사촌들이 가려져준 이야기와 전설, 노래를 잊지 않았다. 그녀를 자신의 영화를 통해 전통을 전파하며 아메리칸 원주민 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그녀가 갖고 있는 관심들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앨라니스 오봄사빈과 그 부족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서 이처럼 변화하는 세계에서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을 우리의 특별전 프로그램인 “차이”에 포함시키는 것은 필수적이다.

여성영화는 남성영화와 다른가?
어려운 질문이다. 여성감독들이 남성들이 만드는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 일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말할 수 있다. 일부 남성감독들은 보통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되던 화두(낙태를 다룬 루마니아 영화 등)를 다루기 시작했다. 도발하거나 위태롭게 하려는 용기와 욕망은 여성영화의 특징으로 남아있다. 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에 대한 균열과 파괴라는 최초의 단계(강요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기자신만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단계)를 지나면,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킬 필요 없이 새로운 개념을 구축하는 단계에 오게 된다. 이러한 두번째 국면에서도 여성들은 형식적 차원에서나 주제, 예술의 상호작용에서 남성보다 더욱 대담하며 분류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가 21세기에도 여성들이 연출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는가 아니면 여성이 영화를 찍고 싶다고 결심을 했을 시, 남성들처럼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우리는 젊은 감독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디어 산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만 한다. 그들은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미디어(비디오 게임, 인터넷 등등)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미 이러한 환경에서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신생 산업에서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재현은 여전히 매우 “전통적으로” 마초적이고 심지어는 인종차별적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해쳐나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신세대를 고취시키고 도와주어야만 한다.

프랑스 여성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들을 구별 짓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는가?
프랑스 감독들의 영화는 고전적인 서사영화에서부터 보다 혁신적인 실험영화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독립영화에만 해당하고 가족과 부부, 친밀성이라는 화두에 다소 집중되어 있다. 아주 적은 수의 영화들만이 정치적인 주제를 다룬다. 관습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대중들이 찾는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그러하다. 나는 일부 감독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힘든 배급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원래 목적과 스타일을 포기하는 것이 겁이나곤 한다. 극장에서 상영될 영화를 만들며 이 직업군에 소속되기 위한 이러한 타협은 정말 위험한 일이 되었다. 지금까지 여성감독들은 투쟁과 진심 어린 연설에 대한 진정한 안목을 보여줘 왔다.

당신은 여성감독들이 분명한 차이를 만들며 상영을 목표로 하는 영화들을 연출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 말인 즉, 그들은 분명한 족적을 남겼는가?
클레르 드니 감독의 <35 럼 샷>. 나는 클레르 드니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각본 스타일과 자전적 특징 때문이다. <35 럼 샷>은 부녀 간의 애정 관계에 집중하며 매우 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들의 밀접한 관계는침묵과 일상의 재활용에 기반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별의 순간을 배경으로 한다. 매우 여성적이고 잔잔한 각본의 이 영화는 친밀한 세계를 아주 시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이는 촬영감독인 아네스 고다르의 공이 크다). 감독은 우리를 아파트와 지하철 터널, 밤 중의 카페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에는 얼굴들이 있고 저녁 시간에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매우 사적인 상황들이 있다. 실제 시간에서는 아무 일도 전개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인상과 감각의 편에 자리잡고 있다. 아무런 행위도 없다. 우리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반응과 바디 랭귀지를 감지할 뿐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연결되어 뒤엉켜있으며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것은 일말의 관음증적인 의도를 배제하려는 시도이다. 관객은 스스로 노력해서 의미를 구축해야만 하고 그나 그녀가 해답을 찾고 싶어한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바로 영화가 우리를 능동적인 파트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우리에 직접 말을 건네는 것을 바로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근본적인 선입견에 근거하다. 즉 등장인물들은 프랑스 흑인으로서 이주와 망명의 경험에 기반한 공통의 유약함이 존재에 새겨져 있다.
이 영화에는 클레르 드니가 아프리카에서의 겪은 개인적인 경험이 드러나 있으며, 그녀의 오랜 동반자인 여성 카메라 감독 아네스 고다르의 이미지(시선)들이 있다. 그들은 얼굴을 촬영하는데 있어 동일한 방식과 동일한 취향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는 움직이는 순수회화와 같다.
카린 엘보 감독의 <웨딩 송>. 보다 서사적인 <웨딩 송>은 청소년기, 섹슈얼리티, 여성의 우정에 신중하게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들이 환기시키는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누르’는 무슬림이고 ‘미리암’은 유대인이다. 어린시절부터 친구인 그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전쟁을 비롯해 각 커뮤니티의 관습들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여성의 우정과 우정의 충실도,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난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높은 완성도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치하의 튀니지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소녀 간의 우정을 전면에 내세운 감독의 용기 덕분이다. 이처럼 역사적인 차원을 다루는 영화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우리는이 상당히 독창적인 영화를 통해 여성성과 에로티시즘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웨딩 송>이 남성감독이 성취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내부에서부터 여성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으며, 두 소녀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복종이라는 동일한 조건에 얽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들의 어머니들은 이러한 전통을 지속시키려고 한다.

알부와 레느 같은 신세대 감독들은 드니나 바르다 같은 감독들이 처음 연출을 했을 때보다 연출하기가 훨씬 더 편해지지 않았나? 프랑스의 영화산업은 변했는가?
안타깝게도 프랑스 영화산업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여성들이 보다 편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직까지도 젊은 감독들은 새로운 작품에 돌입하고 제작 수단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한다. 텔레비전 방송국 없이는 영화를 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제작 조건은 오히려 까다로워졌다. 텔레비전에 맞게 영화의 포맷을 조절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채털리 부인>을 연출한 프랑스 감독 파스칼 페랑은 작가/감독/시나리오작가/제작자 연대를 세워 이러한 문제에 맞서 싸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