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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너무 하얗고, 너무 남성적인 오스카… 홀대 받는 <셀마>




지난 1월에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시작으로 크리틱스초이스어워드, 미국감독조합시상식, 미국배우조합시상식, 미국프로듀서조합시상식,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까지 북미 영화시장의 2월은 바야흐로 어워드 시즌이다. 어워드 시즌을 대표하는 가장 큰 시상식이자 전세계인의 관심이 쏠린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은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비난에 직면했다. 바로 백인 위주로, 남성 위주로만 구성된 후보를 지명했기 때문.


올해의 북미 어워드 시즌의 특징은 실화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의 강세라고 할 수 있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미테이션 게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셀마>), 미국 굴지의 재벌가 상속자였던 존 듀폰(<폭스캐처>), 아프가니스탄 전쟁 최고의 저격수였던 크리스 카일(<아메리칸 스나이퍼>) 등의 실존 인물을 그린 영화들이 각 시상식의 주요부문 후보로 올라 경합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동유럽의 가상국가 주브로브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 6월』로 유명한 역사학자 존 루카치가 미국으로 망명한 1947년의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역시 실화와 실존인물을 기반으로 한 안젤리나 졸리의 <언브로큰>, 팀 버튼의 <빅 아이즈> 등이 있다.


영화 <셀마>의 포스터(왼쪽)와 <셀마>의 감독 에바 두버네이(Ava DuVernay).


이러한 화제작들이 아카데미영화상 주요 부문의 후보로 이름을 올린 가운데, 아카데미영화상 후보가 발표된 지난 1 15일을 기점으로 아카데미는 인종 차별 및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의 발단은 올 시즌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셀마>가 감독상과 주요 연기상 후보에 지명되지 못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일대기와 그의 유명한 연설이 있었던 1963년의 평화대행진을 재현한 <셀마>는 지난 해 퍼거슨 시 사태를 필두로 미국 곳곳에서 있었던 인종차별주의와 관련한 끊임없는 이슈들을 동반한 채로 계속해서 화제를 모았고, 마틴루터킹데이였던 지난 1 19일을 기점으로 다소 흥행의 기세가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무난한 흥행 성적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감독인 에바 두버네이는 2012 <미들 오브 노웨어>로 흑인 여성 최초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고, 이번 영화 <셀마>로도 흑인 여성 최초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 흑인 여성 감독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오른 실력파 여성 감독. 











아카데미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비단 감독상 후보로 유력시 되었던 두버네이가 후보에 오르지 못했거나 역시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를 것으로 기대되었던 <셀마>의 데이빗 오예로워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카데미영화상 후보 발표 직후 #OscarsSoWhite 라는 해시태그를 동반한 채 SNS를 타고 널리 퍼진 것은 메인 부문 후보가 백인 중심, 남성 중심으로 채워지게 되는 아카데미시상식의 오랜 보수적 관행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올해로 87회 째를 맞는 아카데미시상식은 그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흑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 작품상이 주어진 것이 겨우 지난 해 최초로 이뤄졌던 바 있다(<노예 12>의 연출가이자 각본가이며 제작자였던 스티브 맥퀸). 올해 아카데미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로 하얬던 해 1998년 이후 17년 만에 다시 백인 일색의 후보를 지명하였다. 외신 또한 "오스카 2015: 할리우드는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자?(그리고 성차별주의자?)", "오스카 후보 발표, 아카데미의 다양성 결핍을 폭로하다", "백인 남성배우들만이 아카데미를 받는가? 격노하는 인터넷", "네 다음 수상자는… 백인 중년 남성입니다", "백인 남성만 축하해주는 오스카. 그렇다면 나머지는?" 등 다양한 제하의 기사로 오스카를 비판하거나 조롱했다.

 

더욱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AMPAS)에서 지난 2013년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회장에 선출된 셰릴 분 아이작스(Cheryl Boone Isaacs)는 이번 오스카의 인종 및 성차별 논란에 대해 앞으로도 더 많은 다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셀마>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축하며 미국영화협회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시켰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그들이 전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LA 타임즈>에 따르면 아카데미 영화상에 대한 투표권을 가진 AMPAS의 회원들은 94%가 백인이며 77%가 남성이고, 평균나이는 62세로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15% 이하의 회원들만이 50대 이하로 구성된 이 조직이 매우 나이든조직임은 틀림없다. 평자들은 이들이 은퇴하지 않는 한 아카데미에는 변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골든 글로브에서 주제가상 수상에 그친 <셀마>는 이번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과 주제가상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조합으로 단 두 개 부문에만 후보로 지명되면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버드맨>,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보이후드>에 비해 확실히 아카데미 버프를 받는 것에는 실패한 모양새다. 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지난 마틴루터킹데이 연휴에도 <아메리칸 스나이퍼> <테이큰 3> 등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지난 해 일어났던 퍼거슨 시 사태 이후로도 계속된 비무장 흑인에 대한 과잉 진압, 흑인을 상대로 한 각종 증오 범죄, 스나이퍼들이 사격 연습 때 흑인 범죄자 얼굴을 표적으로 사용한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흑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이 영화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브래드 피트와 함께 이 영화를 공동제작하고 직접 출연하기도 한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 영화를 지지하고 나섰으며 가수 비욘세는 2월 초 있을 그래미시상식에서 <셀마>의 주제가 ‘Glory’를 부른 존 레전드와 래퍼 커몬과 함께 영화 <셀마>에 헌정하는 특별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셀마>의 주제가인 Glory 의 뮤직비디오. 래퍼 커몬의 랩 가사 중 "That's why we walk through Ferguson with our hands up"이라는 가사는 지난 해 퍼거슨에서 발생한 비무장 흑인 청소년 사살 사건에 대한 언급이다.



한편, 유럽에서도 2월 초에 열리는 영국아카데미시상식(British Academy Film Awards, BAFTA)프랑스의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세자르영화상(César Award) 등 다양한 영화 시상식이 마련된다. 세자르영화상에서는 입 생 로랑의 전기영화 <생 로랑>의 베르트랑 보넬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올리비에 아싸야스 등의 거장과 <팀북투>의 압데라만 시사코, <파이터스>의 토마스 카일리, <이스턴 보이즈>의 로뱅 캉필로 등의 쟁쟁한 도전자들이 작품상과 감독상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가운데 이번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셀린 시아마 감독 <걸후드>로 감독상 후보에 올라 수상이 기대되고 있다.

 

 

정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