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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0회(2008) 영화제

<4.17> [공연 스케치] 무심한 듯 가슴에 ‘흐른’ 목소리 하나

[공연 스케치] 무심한 듯 가슴에 ‘흐른’ 목소리 하나
(아래 글은 '어쿠스틱 릴레이' 세번째 공연에 참가한 관객 김은서씨와의 인터뷰를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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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은 날 괴롭히기 위해 태어났을 거야.’
은서는 6시가 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바깥 공기가 온몸을 가볍게 쓸고 지나가자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다.

‘커피… 시원한 커피가 필요해.’
벌써 아이스커피가 생각나는 계절인가보다. 오늘은 4월이라기엔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해 질 무렵 신촌 거리가 문득 한없이 외롭다. 별다방에서 커피를 사들고 집으로 올라가는데 파란 옷을 똑같이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은서 앞을 스친다. 그러고 보니 며칠 간 계속 눈에 띄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은서는 그제야 아트레온 입구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을 알아차린다. 그 크기에도 현수막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 여유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니, 은서의 마음은 그렇게나 황량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KFC 쪽에서 공연이 있는 모양이다. 집에 가기도 싫고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기로 한다. ‘흐른’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가수였다. 통기타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른다. 그 옆에는 베이스가 보조를 맞춰주고 있었다. 갑자기 여름이 오는 것 같은 해 질 무렵의 냄새가 가슴을 조금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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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편안한 감수성과 차분한 보이스, ‘흐른’입니다. 옆에는 지난 토요일 이 자리에서 공연을 가졌던 ‘로로스’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김석 씨가 저를 도와주고 계시네요.”
은서의 옆에는 햄버거를 사와서 먹는 여학생 둘이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과 딸기주스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공연장이라기보다 야외 라이브 카페 같은 분위기다. ‘흐른’은 귀여운 얼굴에서 나오지 않을 법한 읊조리는 듯 무심한 음색을 가진 가수였다. 노라 존스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노라 존스보다는 더 목소리에 힘을 뺐다고나 할까? 도시적 멜로 드라마에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이다.
“1집이 여름에 나옵니다. 여러분. 제겐 여성영화제가 더 특별한데요, 8회 때 스태프로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때 노란 옷 입고 지금 여기 파란 옷 입은 분들처럼 여기 저기 돌아다녔죠. 영화는 올해 못 봤네요. 여러분들 영화 많이 보셨어요?”
외톨이를 위한 노래, 다가와, 그리고 앙코르곡으로 부른 귀가까지 40여 분 동안 6곡 정도를 듣는 동안 은서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특히 가수가 ‘밤에 일을 하고 아침에 집에 갈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했다’고 소개한 <귀가>라는 곡의 가사는 너무 와 닿았다. 비틀거리는 건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하고. 감수성 있는 목소리가 봄밤에 참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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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영화제 안내 책자를 하나 집어 든다. 은서는 집으로 향하며 내일 여기서 영화나 한 편 볼까, 생각한다. 이왕이면 집도 가까우니 내년에도 한 번 와봐야겠다.



웹데일리 자원활동가 오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