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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해외 게스트의 눈 1 : 페미니즘적 열정과 창조적 에너지로 가득한 영화제


Herstory에 연재될 글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08년 10주년을 맞아 제작했던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_보다 _ Records>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개/폐막식을 비롯한 국제포럼 등의 행사와 상영작들이 총 망라되어 있으며 <_말하다 _쓰다>는 여성영화제의 1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있습니다. <_Perspectives _Herstory>는 <_말하다 _쓰다>의  영문버전입니다. 
Herstory는 여성영화제의 역사를 기록한
<_말하다_쓰다>에 있는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매년 치러지는 아시아 여성영화인의 밤 (사진은 7회 때 게스트 라운지에서 열린 아시아 여성영화인의 밤) 


지금까지 다녀본 많은 영화제들 중에서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다시 생각해도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한 영화제 중 하나이다. 2006년의 첫 방문, 그리고 2007년 다시 방문하기 이전부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활기차고 열광적인 에너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듣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여성영화제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영화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당연한 결과처럼 그런 기대에 대해서 보상을 받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마치 매운 김치 맛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나를 환영해주었다. 첫날부터 마치 내 집에 온 듯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 집행위원장님, 스태프들의 우정 그리고 하늘의 무지개만큼이나 다양하고 매력적인,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12회 발족식을 가진 아시아 여성영화제 네트워크(NAWFF)(좌)    비공식 행사로 매년 신촌 판자집에서 열리는 감독의 밤(우) 

아시아
나 역시도 여성영화제를 기획하는 동료로서 여성영화제가 맞닥뜨려야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성장세를 보이며 살아남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성공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힘은 페미니즘에 대한 한국여성들의 굳은 신념과 공동체적인 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여성영화제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인상을 받았다. 이 놀라운 성공이 대단히 부럽기도 하다.
정신없는 속도로 돌아가는 영화제 기간 중에, 오랜 친구들을 찾기 위해 낯선 인파들을 헤쳐 나가야하거나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아야 하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해외 게스트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깊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한국 여자들처럼 파티를 즐겨라!’ 내 집 같은 분위기로 길게 늘어진 술집 테이블에서는 20~30명의 여자들이 둘러앉아 밤늦도록 술을 마신다. 음식이 가득 차려진 테이블 그리고 서로의 잔은 소주로 넘쳐 난 것이다. 옆에 앉아 이야기하는 상대와 음식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일행들이 다시 섞이곤 하는 것이다. 좁은 자리에 끼여 앉아 새로운 대화 상대를 맞아 얼굴을 익혀간다. 그 상대는 관객과의 대화를 막 마치고 그들로부터 받은 충만한 에너지를 나누고 싶어 달려온 외국의 영화감독일 수도 있다. 혹은 파티가 끝나갈 때, 술 한 잔과 더불어 영화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러 온 한국 영화인일 수도 있다. 이곳에서 당신은 여성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낮은 목소리> 3부작의 세계적인 감독 변영주와 함께 술을 마실 수도 있고, 트랜스젠더 가족을 다룬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트랜스 가족>을 연출한 독일의 사빈느 버나르디 감독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한국 여성들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좋은 영화도 함께 나눈다는 것이었다. 이런 파티들은 해외, 국내 게스트들 간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제공해주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또 다른 특징은 정치적인 노선을 초월하여 한국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여성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여성운동의 진보를 축하하는 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영화제 관객들 중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전문위원이자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인 신혜수 그리고 대담한 여성영상집단 움이 여성영화의 아름다움을 나누며 한 공간에 공존한다.


극장은 적극적인 간객들, 특히 영화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관객들로 언제나 꽉 차 있다. 그리고 성의 있는 상영작 선정은 한국 여성 감독들의 좋은 작품, 특히 한국 여성의 눈으로 본 한국 여성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또한 다양한 토론은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여성들의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한 열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 마디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페미니즘적인 열정과 창조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영화제이다. 10주년을 축하하며 해마다 더욱 더 강하고 아름답게 커나가길 바란다.



- 소피 수이 린  대만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