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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집행위원의 눈 3 : 해외에서 만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Herstory에 연재될 글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08년 10주년을 맞아 제작했던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_보다 _ Records>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개/폐막식을 비롯한 국제포럼 등의 행사와 상영작들이 총 망라되어 있으며 <_말하다 _쓰다>는 여성영화제의 1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있습니다. <_Perspectives _Herstory>는 <_말하다 _쓰다>의  영문버전입니다. 
Herstory는 여성영화제의 역사를 기록한
<_말하다_쓰다>에 있는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제3회 [새로운 물결] 섹션에 상영된 바바라 해머 <역사 수업> 스틸 사진

2001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3회 개최를 앞두고 베를린국제영화제로 첫 해외출장을 결정했다. 1회, 2회 영화제 행사에서 보여준 관객의 뜨거운 호응은 프로그래머가 알음알음으로 상영 작품의 수급을 진행하는 것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당시 프로그래머로서 나는 이 열렬한 관객들에게 보다 새롭고 보다 강렬한 여성영화들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주요 해외 영화제에 직접 가서 따끈한 신작들을 출품한 감독과 프로듀서를 만나 신속하게 작품 수급을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필름마켓으로 출장을 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빠듯한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결정한 출장이었고, 베를린에는 가 본 적도 없었으며, 어떻게 업무를 추진해야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성과를 내야한다는 사명감은 컸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명성대로 활기찼다. 그러나 날씨만큼은 춥고 스산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할만한 작품들을 애타게 찾고 있던 내 심정도 비슷했다. 혼자서 낯선 남의 잔치를 기웃거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직 상영이 시작되지 않은 한적한 아침, 공짜커피를 마시려고 게스트 라운지에 들렀다. 창가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백인 여성의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끌렸고 나는 다가갔다. 그 사람은 바로 페미니스트이자 미국 독립, 실험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인 바바라 해머였다. 처음 만났지만 그녀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큰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금방 마음이 통했다. 이 우연한 만남이 내게 큰 격려가 되었고 여성주의와 여성영화가 지역적, 인종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생생한 사례가 되었다. 바바라 해머는 바로 그 해 제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았고, 그녀의 작품 <역사 수업>은 성황리에 상영을 마쳐 그녀와 관객 모두에게 멋진 시간이 되었다.


                     제8회 상영된 바바라 해머의 <연인, 타인>(좌)와 제10회 상영된 <제주도 해녀> (우)

베를린국제영화제 출장을 시작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해외 네트워크의 지평을 넓혀왔다. 미국 여성영화의 배급사로서 독특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
위민 메이크 무비즈’ 그리고 크레테이유여성영화제, 도르트문트여성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영포럼,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주요 관계자들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아시아 단편 경선 심사위원을 맡아 여성의 기운을 한껏 주고받고 한 친구들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즐거웠던 기억을 잊지못하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대만여성영화제와 동경여성영화제는 아시아 여성영화제 네트워크를 위해 정기적으로 서로의 영화제들을 방문하고 있는 자매와 같은 조직들이다. 그간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고 관객들과 직접 만나 행복을 감추지 못했던 해외 감독들은 헤아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영화학자들과 문화이론가들도 서울에서 만나 함께 꿈을 꾸었다.

베를린으로의 첫 출장이후 많은 해외영화제들과 행사를 다녔다. 출장을 가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몸으로 느끼는 사실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정말로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 때문에 기념품을 꼭 간직하게 되는 영화제, 여성주의 영화의 역사와 그 최전선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을 갖추고 있는 영화제, 헌신적인 스태프들과 자원활동가들로 잘 조직된 영화제, 무엇보다도 열띤 관객들의 자발적인 호응이 있는 젊고 활기 넘치는 영화제, 무엇보다도 열띤 관객들의 자발적인 호응이 있는 젊고 활기 넘치는 영화제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만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열정적인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감독과 제작자들도 많아졌다.
2005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갔을 때, 게스트 라운지에서는 유럽의 젊은 여성감독들은 영화 상영이 없을 때면 자연스럽게 내가 앉아 있던 자리로 모여들었다. 여성영화에 대한 열 띤 토론을 벌어졌고, 서로의 미래의 축원하고 격려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만약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존재가 없었다면 암스테르담에서 이런 자리가 가능했을까. 모두 언젠가는 서울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호응에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세계 여성영화인들의 기대에 찬 눈빛을 마주하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정학적 경계와 낯섦을 넘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여성 문화의 장으로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그 건강함을 유지하고, 여전히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든든한 의자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해야겠다는 것. 10회 영화제를 맞는 마음이다.

- 남인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