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 SIWFF]

세계 속의 여성영화제_인도 뉴델리의 IAWRT아시아여성영화제를 가다

 

 

 


세계 속의 여성영화제

                                                  

     인도 뉴델리의 IAWRT아시아여성영화제를 가다

 

 

 

 

 

인도에서 벌어진 끔찍한 성폭력 사건이 지면을 장식하던 즈음, 뉴델리의 어느 영화제로부터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IAWRT Asia Women’s Film Festival이라는, 낯선 이름의 영화제였다. 개봉을 한 달여 앞둔 바쁜 시기에, 그것도 다들 위험하다고 말리는 인도에 혼자 가야 한다는 게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궁금증이 더 컸다. 인도의 관객들은 과연 한국의, 그리고 나의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볼지.
영화제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기간은 일주일. 몰아치는 일들을 겨우 해치우고는 장시간의 여행길에 올랐다. 인도도 초행인데다 해외 영화제 초청받아 가는 것도 처음이어서인지, 오랜만에 두근두근, 긴장이 되었다. 도중에 류미례 감독님과 딸 하은을 만나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이번에 9회째를 맞이한 IAWRT아시아여성영화제는 민간단체인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Women in Radio & Television 에서 매년 개최하는 여성영화제로, 3월 8일 여성의 날에 맞춰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다. 올해는 3월 5일~8일 동안 총 44개의 작품이 상영되었는데, 특별히 한국과 이란의 작품에 포커스를 맞춘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한국 여성 감독들의 다큐멘터리가 소개된 것.
10년간 세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직접 카메라에 담으면서 엄마 되기와 일하기 사이에서의 고뇌를 그린 류미례 감독의 <아이들>(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비혼 커플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려움에 대한 자전적 다큐멘터리 지민 감독의 <두개의 선>(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동두천 미군부대 주위에 살게 된 이주 여성 엔터테이너들의 사연을 그린 김동령 감독의 <아메리칸 앨리>, 그리고 남장여배우들이 활약하는 1950년대 국악뮤지컬 여성국극 이야기를 다룬 <왕자가 된 소녀들>(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이렇게 4개의 한국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고, 류미례 감독님과 내가 GV를 위해 인도로 왔다.

 

 

개막작으로는 트렌스젠더에 관해 다룬 최초의 이란 영화 Facing Mirrors가 상영되었는데, 감독인 Negar Azarbayjani는 어린 시절 경험한 트렌스젠더 이웃에 대한 기억과 이란의 여성 택시운전사 이야기를 결합시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인도의 관객들이었다. 6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백발의 여성 감독은 목발을 짚은 채로도 정열적으로 질문을 던졌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인도의 트렌스젠더 현실에 대한 즉석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부터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어우러져, 영화제는 열기 가득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관객들의 열띤 반응은 한국영화들이 상영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현실에서 제작되고 이국의 언어로 번역된 다큐멘터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날려버리듯, 관객들은 장면 장면마다 함께 웃고 안타까워하며 영화에 집중했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질문들 역시 하나같이 날카롭게 핵심을 짚는 것들이었다. 지역과 언어를 넘어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던 자리. 그리고 전혀 다른 두 영화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멋지게 엮어주던 역사학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사회자 우마 차크라바티.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씩씩한 프로그래머 우마 타누쿠. 한국 영화를 너무 사랑해 논문까지 썼다는 코디네이터 데브자니. 다정하면서도 강한 인도의 멋진 여성들로 인해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제였다.

 

 

글. <왕자가 된 소녀들> 감독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