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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한국의 여배우들

어떤 역할이든 완전히 소화하는 연기파 배우, 김지미

어떤 역할이든 완전히 소화하는 연기파 배우, 김지미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11탄 김지미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거주지를 미국 서부로 옮긴 김지미는 가끔 서울을 방문하는데,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김기덕 감독과 나를 H 호텔로 초대했다. 점심 때라 식당은 거의 만석이었는데 사람들은 돌연히 나타난 여배우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짧은 머리에 카키색 캐주얼을 입은 여배우는 젊어서보다 세련되어 보였고 얼굴이 더 예뻤다. 우리 둘은 어지간한 요리를 먹는데 김지미는 비빔밥을 왼손으로 쉴 새 없이 퍼먹었다.

 

 

김지미가 살림을 잘한다는 소문을 나는 어느 여름인가 해운대에서 목격한 일이 있다. 그때 숙소가 없어 여배우네 별장 2층에서 일주일쯤 신세 진 일이 있는데, 김지미는 투숙객들의 식사를 손수 지었으며 집안 청소까지 빈틈이 없었다. 어느 날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여배우는 청소 중인데 한 사내가 대문으로 들어서더니 김지미를 찾았다. 김지미는 지금 집에 없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앞집 호텔에서 사모님이 찾는다고 전갈을 한다. 본인을 보고도 몰라볼 정도로 소박한 여배우는 그날 밤 나리들 부인들의 초대를 받은 것이다. 그때 옆방에 수덕사 일엽스님의 상좌 월송스님이 있었는데, 김지미의 후원으로 일본 천리대에 유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30명 정도의 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일이 있다.

 

    김지미 ©한국영상자료원(조희문 기증)

 

내가 김지미와 일한 작품은 열 편쯤 되는데, <사격장의 아이들>의 여교사와 <토지>의 마님 역할을 좋아한다. 김지미는 그냥 서있기만 해도 여자의 향기가 발산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향기가 싫다. 그래서 김지미를 한국 제일 가는 아름다운 배우가 아니라 한 연기파 배우로서 바라다 본다. 김지미는 우선 총명하고 감각적이다. 그리고 어떤 역할이든 완전히 소화하는 연기력과 영화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래서 이 풍진 세상을 살다가 험한 고비를 넘고 넘어도 나는 그녀가 영화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미령, 최은희, 엄앵란이 이미 주연배우로 자리를 굳히고 있을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조용히 등장한 김지미는 홍성기 감독을 만나 여배우의 길이 트였다고 볼 수 있다. 신상옥과 홍성기는 동시대의 톱 감독인데 서로 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라이벌 의식이 강해 서로 맞서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최은희의 춘향과 김지미의 춘향이 한 판 붙게 되는데, 이 싸움에서 홍감독 쪽이 영화도 인생도 깨어졌다. 김지미는 이때부터 <산 넘어 바다 건너>의 여배우를 넘어섰다

 

 

1962 <손오공>을 촬영하러 홍콩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김지미의 미모에 경탄했다. 어떤 관상쟁이는 황후가 왔다고 떠들었고 란란쇼 사장은 전속배우가 되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여배우는 그때 동행한 최무룡을 선택했다. 얼마 후 나는 두 사람 주연으로 한양영화사 작품 <약혼녀>를 찍게 되었는데, 촬영 도중 쌍벌죄 소동이 일어났지만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연방영화사의 <3의 운명>에서는 6.25 피난 길에서 보모로 출연한 김지미가 아이들 먹거리를 구하러 갔다가 흑인병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물론 촬영 때는 대역이 중요한 부분을 맡게 되는데 영화 시사회 날 김지미가 보고 저것 다시 찍자고 소리쳤다. 아름다워야 할 부분이 사뭇 주근깨 덩어리였다.

 

 

돈 많고 얼굴 예쁘고 가슴이 바다만큼 넓은 김지미는 지금 두 딸과 걱정 없이 사는데 손자들이 예뻐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돌아와서 영화 좀 합시다

불러만 준다면 달려오지요

누군가 투자만 한다면 김지미의 대표작을 찍고 싶다.

    

 

 

   

글: 김수용 감독


 

김지미 1940년 충남 대덕 출생. 1957년 덕성여고 재학 중, 명동에서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되어 학교를 중퇴하고 <황혼열차>의 주연으로 영화계 데뷔. 이후 20여 년간 700여 편이 넘는 영화에 등장하여 한국 영화사의 대표 배우 중 한 명이 됨. 1980년대 제작사 지미 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서도 활동, 1999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1995-2000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지냄.


 

김수용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0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 1958년 육군 대위로 예편 후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 이후 50여년 간 109편의 영화를 만듦. 1984년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동경 국제영화제, 아세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회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민원로회의 의원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