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기 위해선, 무언가 그만큼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값을 지불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저는 10대 때 학교에서 혼나고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때 ‘그건 제 일이고 부모님과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던 기억이 나요. 그게 제 사춘기의 시작이었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영화제) 초대 페미니스타 김아중 배우가 31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케이트 키친> 스타토크에서 말했다.
스케이트 키친은 미국 뉴욕 이민자 가정의 10대 소녀 ‘카밀’의 이야기다. 카밀의 유일한 취미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 위험하다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밀은 또래 소녀들로 구성된 ‘스케이트 키친’이라는 보드 동호회 활동에 점점 빠져든다.
이 자리에는 김아중 배우뿐 아니라 변영주 감독도 함께했다. 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두 사람이 각자의 10대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진행됐다.
어릴 때 자신의 주체성을 깨달은 에피소드가 있는지?
변영주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장실에서 뺨을 맞은 기억이 있어요. 하라는 일에 응하지 않아서 생겼던 일화인데 오히려 뺨을 맞고 ‘하기 싫은 건 버티면 안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죠. 제 선에서 그 일을 해결하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선, 무언가 그만큼 내놓아야 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를 만들어 보기로 한 순간, 가난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다짐 그런 것들이 그렇죠. 저를 불쌍하게 느낄 이유도 없고요. 영화에서 카밀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려면 남의 집에 얹혀살아야 하고, 그 집 딸과 싸우면 숙박을 그곳에서 해결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잖아요. 그런데도 카밀이 자신을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는 부분에서 정말 멋있다고 느꼈어요.
김아중 저도 변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그런 과정들을 통해 어른이 되어간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릴 때, 학교에서 혼난 사실을 부모님께 보고하라고 선생님께 전달을 받았는데요. 그때 그건 제 일이라고, 부모님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던 기억이 나요. 사춘기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10대 때 영화의 주인공인 카밀과 비슷했어요. 집을 뛰쳐나가고 싶고, 일탈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제 또래 사이의 기호와 적정선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죠.
<벌새>를 비롯해 40대 언저리의 감독들이 자신의 10대를 회상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요즘이다. 80년대가 아닌 현재의 10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변영주 카밀은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선택했다. 그러나 2차 성징을 겪으며 여성의 삶을 먼저 겪어본 인생 선배가 필요해져서 엄마에게 간다. 생각해보면 나도 언제나 제일 친했던 사람은 아빠였다. 아중 씨는 어떤가?
김아중 어릴 땐 정서적으로 아빠랑 더 가까웠다. 하지만 점점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 받아들이고 이해의 폭을 넓혀가며 엄마와 더 친해졌다.
변영주 딸이 엄마를 싫어하는 이유는 엄마가 나에게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처럼 살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엄마의 피해 의식 때문에 싫은 거다. 엄마가 “나처럼 사는 것도 훌륭해!”하고 건방을 떨어주면 엄마와의 관계를 풀 수 있을 텐데. 카밀의 엄마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카밀의 엄마가 카밀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김아중 나도 요즘은 엄마랑 여행 가면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는 느낌이 든다. 엄마가 나에게 기대고 응석 부리는 모습도 보게 되고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된다.
이 날 스타토크에서 변영주 감독은 관객들과 직접 대화하며 특유의 화법으로 큰 웃음과 묵직한 메세지를 동시에 전하며 시종일관 분위기를 이끌었고, 배우 김아중 역시 진솔하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어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두 사람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빛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년에도 두 사람을 스크린에서, 그리고 영화제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9월 1일, 오후 6시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에선 올해의 페미니스타 김민정 배우와 정재은 감독이 함께하는 <마우스피스> 스타 토크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스타와 관객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글 윤다은 자원활동가
사진 구연주·조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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