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거처 없이 잠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여인이 있다. 매일 밤과 매일 낮, 낯선 남자들의 집과 환락의 밤이 펼쳐지는 난장과 정신분석의의 진료실과 미술관 등을 전전하는 이 여인은, 떠도는 시간만큼이나 쉴 새 없이 떠든다. 여인의 여정을 좇는 동안 우리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과 날선 말들을 가만히 응시하며 제대로 듣게 된다. 이내 곧 이 여인이 단 한 줄의 진전도 없는 글을 무력하게 붙들고 있는 작가라는 점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내, 그녀가 어떠한 성정과 사연을 지닌 사람인지 알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그녀는 영화 속 근사한 캐릭터가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구조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초상이 투영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여인은 조금 더 집요한 방식으로 “방황하고 떠들고 섹스”하는 멜랑콜리 걸이다. 그녀는 세상을 현시할 수 있는 공간들을 계획적으로 방황하며 풍자하고,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요즈음 세태를 공평하며, 여성의 몸이 착취당하는 환멸적인 구조를 직시하며 섹스한다. 또한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에피소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자신의 무기력증과 불행이 어떤 구조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기상천외한 퍼포먼스와 입담으로 풀어낸다. 말하자면 <멜랑콜리 걸>은 야릇하게 선언적인 제목만큼이나 오묘한 영화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인공 세트 안에서 현실세계의 세태풍자로 일관하고, 파편적인 에피소드 사이에서 “밤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 한 여인을 통해 “집단 여성”의 초상을 그려내는 영화는 시종일관 비정하고도 통쾌하다.
멜랑콜리 걸 Aren't You Happy?
새로운 물결|수잔네 하인리히|독일|2019|81분|18세 이상|DCP|컬러|픽션
111 2019-08-30 | 14:00 - 15:21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424 2019-09-02 | 20:00 - 21:21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GV
글 홍은미(리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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