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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EVENT] 스페셜 토크 “딸의 눈에 비친 박남옥 감독의 영화 세계”

우리가 계속해서 박남옥을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미망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 이튿날, 스페셜 토크 딸의 눈에 비친 박남옥 감독의 영화 세계가 열렸다.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기획된 이번 프로그램 이벤트는 한국 최초 여성 감독인 박남옥 감독의 영화 <미망인>(1955)을 상영하고, 박남옥 감독의 딸이자 국악인으로 활동 중인 이경주 씨와 함께 박남옥 감독과 그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사회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변재란 교수가 맡았으며, 올해 박남옥 상을 수상한 <어른이 되면(2018)>의 장혜영 감독이 관객으로 참여하여 자리를 더욱 빛내주었다.

 

사회를 맡은 변재란 교수와 박남옥 감독의 딸 이경재 씨

이날 스페셜 토크는 다양한 세대와 국적의 관객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행되었다. 1923년생인 박남옥 감독은 한국전쟁 후 급변하는 혼란 속에서 당대의 가부장적 모순과 남성중심적 영화 현장의 편견에 맞섰던 인물이다. 지난 2017 95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타계하며, 많은 여성 영화인과 관객의 추모가 이어졌다. <미망인> 촬영 당시 딸 이경주 씨를 등에 업고 스태프를 격려하며 현장 곳곳을 누비던 모습은 박남옥 감독의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다.

 

<미망인>은 남편인 이보라 작가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한 16mm 흑백영화로, 한국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의 삶을 주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제1회 영화제를 개최할 당시, <미망인>을 개막작으로 선정하며 국내 최초 여성 감독으로서의 박남옥을 조명한 바 있다. 그날 객석에서는 엄청난 박수가 터져 나왔으며, 이후 많은 여성 영화인은 한국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인물로서 박남옥 감독을 다루고자 노력해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008박남옥 상을 제정하고, 임순례, 김미정, 박찬옥 감독에 이어 올해 장혜영 감독에게 네 번째 상을 수여했다.

 

진지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끊임없이 손을 들어 질문을 던졌고, 이경주 씨는 박남옥 감독의 삶을 회고하며 엄마박남옥에 관한 에피소드부터 <미망인> 촬영 비하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지금은 소실되어 볼 수 없는 <미망인> 마지막 장면의 비하인드가 흥미로웠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을 남편 살해장면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필름이 잘린 채 상영할 수밖에 없던 <미망인>은 그 자체로 가부장제의 민낯과 시대적 한계를 입증하는 작품인 것이다.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남성중심적 사회와 금기시된 질서에 도전하고자 했던 감독의 열정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이경주 씨는 관객을 향해 박남옥 감독의 영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라며 옛날 영화 보러 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셨을 것 같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55년 한국에서 박남옥은 유일한 존재였다.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시작되었을 때도 국내 여성 감독은 단 7명에 불과했다. 21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때보다 여성영화인의 연대가 활발한 시기이다. 많은 감독과 관객은 세계를 바라보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며 스스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 시작에 박남옥이 자리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박남옥을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이유다.

 

 

글 윤다은 자원활동가

사진 이상희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