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휩쓸리지 않기"
화창한 여름, 열두 살의 수영부 학생들은 서로를 힐끔거리며 장난에 여념이 없다. 주인공 유슈안도 천진한 얼굴로 놀이에 동참하지만, 어딘가 외로워 보이고 무언가 감추는 것 같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쟁부문에서 상영하는 쿠어 관링의 <열두 살의 여름>은 몸과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는 유슈안의 어느 여름날을 담는다. 가슴이 도드라지고 친구와 성적인 장난을 치기도 하는 나이. 변해가는 몸과 마음이 싫어 세상에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느새 물 속에 풍덩 뛰어들어 있는 힘껏 헤엄친다. 그처럼 복잡하고 섬세한 세계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이의 얼굴이 궁금하다. 쿠어 관링 감독을 만나 유슈안의 특별한 여름에 관해 물었다.
<열두 살의 여름>의 원제는 ‘수영 부대(泳隊)' 라는 뜻이더라. ‘12살의 수영부 학생들’이라는 소재를 떠올린 것이 영화의 시작이었나.
대만어 제목은 ‘수영팀’을 뜻한다. 이건 문화의 차이인데, 딱 봤을 때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일지 상상되지 않는 제목을 원했다. 영어 제목은 조금 더 직설적으로 ‘열두 살의 여름’(The Summer of 12)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는데, 그게 영화의 소재를 떠올리게 된 계기와 관련이 있다. 내 생각에 열두 살은 소녀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인 것 같다. 몸의 변화가 시작되고 정서적인 변화도 함께 일어나는 불안한 성장의 시기, 여성이 되기 직전의 흥미로운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서 영화가 시작됐다.
12살이라는 나이가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는데, 몸이 변화하고 비밀이 생기고 고민이 복잡해지면서도 여전히 친구들과 아이처럼 사소한 장난을 치기도 하는 나이다. 다루기 쉽지 않은 설정이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하면서 세부적인 부분을 어떻게 만들어나갔는지 궁금하다.
그 나이 또래인 배우들의 실제 성격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들이 수영부의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수영 선생님과 함께 트레이닝을 직접 하기도 했고, 캠핑도 가면서 서로 익숙해지고 친해질 수 있게 했다. 촬영 현장이 배우들에게 영화를 촬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살아가는 공간처럼 느껴지길 원했다. 연기에 관해서도 내가 이것저것 코멘트하기보다는 배우들의 성격을 알아가면서 그걸 영화에 반영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그렇게 캐릭터가 바뀌는 과정도 있었다. 그 또래의 배우들이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영화에서 드러내고 싶어서 그런 부분에 중점을 많이 두었다.
수영장이라는 공간이 흥미롭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나를 보여주는 공간이면서, 물속에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수영장은 어떤 공간인가.
영화적인 측면이 있고 개인적인 측면이 있다. 영화적 의미를 먼저 말하자면, 수영장은 교실이나 체육실 같은 초등학교 내부의 다른 공간들과 달리 몸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옷을 자유롭게 입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수영복을 입으면 드러난다. 그래서 성별이나 몸의 변화, 그 변화의 정도가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곳이 초등학교에선 수영장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수영장을 굉장히 싫어했다. 나의 신체 변화가 드러나고 내가 마치 남자아이들과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 영화를 찍기 전에 많은 사람들과 성장기의 기억에 관한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이 모두 수영장에 대해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
여름의 분위기가 아름답게 담겼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바람이나 물결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색감도 돋보인다. 영화의 분위기와 관련해 가장 신경 썼던 지점은 무엇인가.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오랫동안 알았던 친구인 촬영감독의 공이 가장 컸다. 시나리오를 쓰며 상상했던 것과 굉장히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물과 바람에 대해 질문해주었는데, 특히 물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 처음에는 물을 통해 점진적인 성장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물 자체에 감정이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더라. 그러다 떠올린 게 소리였다. 물의 소리를 통해 성장의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원하는 방식으로 물을 찍기 위해 다양한 화면 디자인을 해봤다. 물속이나 눈높이에서 보는 물의 표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물 등등. 또 영화에 나오는 수영장에는 커버가 있는데, 그건 시나리오에 원래 있던 부분은 아니었다. 장소 헌팅을 다니다가 발견한 것이다. 커버가 수영장 위로 천천히 덮일 때의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 같은 것을 미학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거기서 촬영하게 됐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으로 그런 부분들을 처리할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주인공은 몸이 변화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감정의 동요도 겪는다. 영화가 그런 주인공을 규정하려 하거나 그 고민을 한 때 겪고 지나갈 혼란 정도로 묘사하기보단, 주인공의 선택을 지켜보고 응원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타당한 감상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 나이의 아이들, 특히 소녀들이 자신의 몸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해나가고 어떤 세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걸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도 그렇고 감독인 나 역시 답을 알지 못하면서도 계속 그걸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감독이 그들 대신 무언가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을 얘기해줬는데 그게 처음 장면과 쌍을 이룬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수영하는데, 강물을 거슬러 가는 연어를 떠올리며 찍었다. 주변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주인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성장은 기본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변화든 몸의 변화든 그런 변화를 홀로 겪고 결국 자기 혼자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느끼는 사람들이 대만이든 어느 곳이든 있을 텐데, 그들이 영화를 보고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당신이 활동하고 있는 대만의 상황도 궁금하다. <열두 살의 여름>의 주인공은 비교적 어린 나이와 고정되지 않는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다. 대만에서 이런 영화를 쉽게 만날 수 있나.
어린이나 청소년기의 육체에 대한 관심 또는 정서적인 변화를 그려내는 것 자체가 대만에서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런 작품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열두 살의 여름>이 좀 더 드물게 느껴지는 건 육체의 변화와 마음의 동요 그 둘을 합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열두 살의 여름>이 당신의 졸업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아직 졸업을 하진 않았다. 졸업 논문을 쓰는 중이고 지금은 다른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다. <열두 살의 여름>과는 전혀 다른 주제의 시나리오다. 노년층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글 손시내(리버스)
사진 조아현
통역 조진영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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