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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1회(2009) 영화제

[손프로의 마이너리그] No.6 - 캐릭 열전 2탄 - ‘모험’ 그 아름다운 이름: 색다른 도전자들2





수요일이다. 다음주 목요일이면 드디어 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드디어 개막을 맞이한다. 스탭들의 야근은 새벽 한 두시까지 계속 이어지고, 코피를 쏟는 스탭,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달려야만 하는 스탭, 기분이 안 좋은 스탭, 피곤한 스탭, 분기탱천하는 스탭 등등... 가장 힘든 시기로 돌입하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영화제가 다가온다니 심장이 떨린다"는 스탭도 있고, 영화제가 끝난 뒤 춘사월의 꿀같은 날들을 꿈꾸는 스탭도 있다. (반주로 한 소주 한 병에 기운을 내고 돌아와 다시 야근을 시작하는 스탭도... 후훗.) 아하, 일주일 남았다.


그나저나... 블로그에서 '또 다른 소통'을 시작할 때 기대했던 것은 관객들과의 활발한 대화였는데 [손프로의 마이너리그]는 좋은 소통의 창구가 못 되는 모양이다. 좋으면 좋다, 안 좋으면 안 좋다, 혹은 문제적인 표현이 있거나 궁금한 작품이 있거나 하면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여주었으면 했는데, 종종 한줄 답글을 남겨주시는 몇몇 분을 제외하면 관객들의 반응이 그다지 없어서 좌불안석(?)이다. 하루 방문자수는 얼추 400-500명 선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별 반응이 없으니 어딘가 살짝 지루하다. '블로그'의 최고 묘미란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는 정보와 생각의 공유-고리들일 터. 그 고리들을 확인하고 여성영화제 블로그의 매력을 느낄 기회를 여러분이 좀 주셨으면 한다. 이릿히. (쉽게 말하면 '한줄 답변으로 한번만 도와줍쇼' 되시겠다. 흠흠)


지난 포스팅에 이어 '색다른 도전자'들을 계속 소개하겠다. 오늘의 첫 게스트는 '이주여성 영화제작 워크숍: 부부 카메라 일기'에서 메이킹을 연출한 모우에 히로코 감독이다.



모우애 히로코 감독의 모습



히로코 감독은 작년 '이주여성 영화제작 워크숍: 횡성의 여성, 카메라를 들다' 교육 당시 미디어 워크숍 교육을 받았던 분. 약 11년 쯤 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하셨다. 한국으로 결혼이주를 하신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여성영화제에서 매 해 진행되는 '이주여성 영화제작 워크숍'에 참가해서 첫 작품 <터널을 빠져나가면>을 연출했던 그녀는 이후 지역 여성단체와 다문화 관련 단체에서 몇 번의 작품 활동을 더 했고, 이번 여성영화제 미디어 워크숍에서 교육 과정을 기록하는 메이킹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가 이 워크숍을 통해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았고 또 '한국으로의 결혼 이주'라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여성으로서, 히로코 감독의 작품은 이전 미디어 워크숍 메이킹 작품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 기록을 넘어서, 교육 과정에 대한 기록과 선배로서 올해 워크숍에 참여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씨실과 날실처럼 교직해 낸다. 제목은 <처음처럼: 정글숲을 지나서 가자>.



'처음처럼: 정글숲을 지나서 가자'의 한 장면. 그녀가 자녀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영화는 히로코 감독이 자녀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선택한 동화책 속에서는 키가 큰 기린과 키가 작은 악어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한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하지만, 둘의 키 차이가 여러 어려움을 불러온다. 키 작은 악어의 집에서 기린은 목을 펼 수 없었고, 키 큰 기린의 집에서 악어는 문 손잡이를 열 수가 없었다. 악어와 기린의 사랑 이야기는 이번 워크숍에 참여했던 이주 여성들과 남편들의 인터뷰 및 교육과정에 섞여 들어간다. 그리고 미디어 워크숍을 통해 여성들은 남편을, 남편들은 아내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악어와 기린이 함께 살기 위해 찾아낸 새로운 방식과 만나게 된다.
 
미디어 워크숍 한번으로 부부 관계 사이의 모든 갈등이 사라지거나, 세상이 뒤집히게 달라지거나, 혹은 산재해 있는 문제들의 해결점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변화들의 시작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교육 과정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교육과정 기록'이라는 메이킹의 목적을 엮어내는 히로코 감독의 통찰과 재주는 놀랍다. 히로코 감독같은 새로운 여성감독의 출현이 여성영화제가 지향하고 있는 어떤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 와서 11년이 지난 어느날, 감독으로 혹은 이주여성의 현실에 대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가는 비디오 액티비스트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히로코 감독. 그녀를 소개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이번에는 배경을 한국 강원도 횡성에서 경북 영천으로 살짝 옮겨보자. 



안말분 선생님. '일기 삼매경'에 빠져 계신다.



'천 개의 나이듦'에서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명주바람>은 어린 시절 '딸'이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지만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두 여성을 따라간다. 안말분, 박돌선. 안말분님은 군대에간 막둥이에게 답장을 쓰고 싶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농번기에는 농사를 지으랴, 농사 지은 곡물을 시장에 내다 팔랴, 술 자시기 좋아하는 신랑 뒤치닥거리 하랴, 어린 막내 아들 뒷바라지 하랴 정신이 없다. 그래도 글을 읽고 쓸 줄 알게된 재미가 꽤 쏠쏠해서 없는 시간, 있는 시간 쪼개서 공부를 계속해 간다. (여성영화제 상영할 때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지만 농번기로 오시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작년 <황보출, 그녀를 소개합니다>에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도 그 다큐를 보면서 '나이가 주는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는 도저히 나의 얄팍한 생각의 깊이로는 따라갈 수 없구나'라고 감탄을 했었다. 그건 역사의 어떤 특정한 시기를 살아낸 분들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세월이 쌓아주는 경험이 선사하는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명주바람>의 그녀들도 계속해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데, 그 입담 속에서 많은 화두들을 던져준다. 물론... 내가 나이만 먹는다고 그분들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닐테지만. (그런 착각은 금물~!! 이릿히~)


다음으로 소개할 사람들은 (오늘은 유독 다큐가 많다. 왠 일인가.) '천 개의 나이듦'에서 소개하는 <바디 앤 소울>의 다이애나와 캐시.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그녀들. 노란티셔츠가 다이애나 검정티셔츠가 캐시다.




다운증후군인 다이애나와 뇌성마비 장애인인 캐시는 30년 쯤 전에 장애인을 위한 작업장에서 서로를 만났다. 이후로 두 사람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의 삶을 보살펴 왔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아니라)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동반자 관계를 오랜 세월 유지해 온 것이다. 집안이 부유했던 캐시는 대학 교육까지 받고 부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육체적인 활동에는 제약이 있고, 반면 지적 활동에는 다소 제약이 있지만 육체적으로 건강한 다이애나는 캐시의 육체적 활동을 보조하면서 경제적인 보장을 받는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미국 복지제도의 허점과 장애인들을 억압하는 제도적 장치들에 맞서 싸워왔다. 이제 '늙고 지친 나이든 장애인'인 두 사람은 장애인 수용 시설을 부활시켜 장애인들을 격리하려는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몸을 일으킨다.

다이애나와 캐시는 서로를 '바디 앤 소울'이라고 부른다. 다이애나는 캐시의 바디(몸)가, 캐시는 다이애나의 소울(영혼)이 되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바디'이자 '소울'이며 결국은 '한 사람'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이애나와 캐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차이를 지워버릴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바디 앤 소울>을 보면서 그동안 '고령 장애인'이 얼마나 대한민국 안에서 가시화되지 않았는가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고령화에 따라 선천적인 장애 뿐 아니라 후천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가고 있는데, 대체 그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이런 사회에서 다이애나와 캐시는 장애인들이 격리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에 동참하고 또 새로운 '가족' 혹은 '동반자'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 다큐를 세 번을 보았다. 그리고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한 작품에서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 곳을 찾아주는 관객들 중에서 이 영화를 보실 분이 계신다면, 보신 후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와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색다른 도전자들'을 소개하는 순서는 마치겠다. 원래 계획했던 캐릭 열전은 다섯개의 테마였는데, 두 개의 테마로 네 번이나 포스팅을 하고 나니 이런 식으로 앞으로 세 개의 주제를 더 한다는 것은 역시나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포스팅에 걸리는 시간을 보니, 앞으로 테마 세 개를 다 끝내기도 전에 영화제가 개막해 버리겠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너무 슬퍼하지마'라는 테마를 포스팅 하는 것으로 캐릭 열전은 마무리 해야겠다.



그리고 한 가지 자랑하자면... 다음에서 영화제 내 검색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이릿히~ 여러분의 도움이 컸다고 (혼자서,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쭈욱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