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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집행위원의 눈 2 : : 여성장(女性場)으로서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Herstory에 연재될 글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08년 10주년을 맞아 제작했던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_보다 _ Records>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개/폐막식을 비롯한 국제포럼 등의 행사와 상영작들이 총 망라되어 있으며 <_말하다 _쓰다>는 여성영화제의 1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있습니다. <_Perspectives _Herstory>는 <_말하다 _쓰다>의  영문버전입니다. 
Herstory는 여성영화제의 역사를 기록한
<_말하다_쓰다>에 있는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10회에 걸쳐 열렸던 서울국제여성여화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국내 영화제나 외국 여성영화제와 다른 가장 중요한 측면은 지난 10회 동안 새롭게 부상한 여성들의 소통장,
공공장이 되어 주었고, 이를 강하게 추구해왔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내가 어떻게 여성영화제를 여성들의 소통장 그리고
공공장, 집행위원 김소영 선생의 말에 따른다면, 여성장(女性場)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쓰고자 한다.

                                                   제3회에 열린 [난상토론 : 우리사회 성폭력의 현실과 쟁점]

지난 12년 동안 나는 영화‘판’이라고 간주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여성학자 혹은 여성주의 문화연구자로서 관여하였다. 그러면서
어쩌면 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내에서 여성‘판’을 대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내가 이런 구도를 아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러나 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서 영화‘판’과 여성‘판'이 화학작용을 했을 때 새로운 생각과 재미를 어떻게 줄 수 있는가를
경험
했다. 지난 12년간 나의 봄은 4월 초에 열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초읽기 시기와 맞물려왔다. 내가 여성‘판’을 나의 장으로
살 아내
는 데에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창기 몇 년간 그곳에서 본 영화와 만난 관객들의 열기가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처음 서울국제여성
영화제를 구상하고 개최했던 이들은 영화제가 여성주의 문화 운동의 흐름 속에 위치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 ‘영화제’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가 대해 많은 고민과 토론을 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여성’은 어떠한
객 들을 호명하는 기표여야 하는가? 우리는 영화를 통해 어떠한 여성 주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가? 우리가 호명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한국땅에서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 할까? 당시에는 여성영화의 상영만이 아니라 상영된 영화들에 대한 담론을 만드는 포렴과 토론의
장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성들의 현실을 어떻게 이슈화할까, 영화는 어떻게 한국 여성들의 현실을
흔들까, 여성감독들이 재현한 여성의 경험은 얼마나 정치적일까, 급진적 정치학을 견디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해서는 어떤 영화를 어떻
게 배치할까 등등을 토론했다. 이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어떻게 여성 주체를 구성해 내고, 그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현실을 체험하게
것인가, 또 그 체험에 어떠한 언어와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토론이었다.

현재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영화제로서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혀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와 사무국이 중심이 되어 영화제를 꾸리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단순히 ‘영화제’가 아니라 지난 12년 간 구축해온 ‘여성장’이라는 문제가 조직화 되고, 효율화 되고, 규모가
커지는 국제여성영화제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단순히 여성영화들이 상영되는 축제 혹은 난장
의 장이 아니라, 여성장이 되는 데에는 그 과정에 참여한 주체들의 숱한 이야기들과 갈등 그리고 같은 지향을 조정해내는 노력이 있었
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10년의 기억 속에서 여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초기의 모습들을 단편적이나마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제4회 열린 [딥 포커스 포럼:여성주의적 주체로서의 소녀](좌)와 [난상토론:나는 여성이다 그리고 나는 노동자이다](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여성’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던 장면들이다. 즉,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소구해 내고자하는 여성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시작하기 전 그리고 끝난 후에도 이 토론은 계속 되었고, 이를
위해 MT를 가기도 했다. 결국 몇몇은 이 토론을 지겨워했는데,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매번 이 토론이 지속되기를 원했다. 어떤 이는 ‘보통
여성’, ‘대중 여성’을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이는 그렇다면 왜 ‘여성’영화제가 필요한가라고 논박했다. 1회 관객 중에는 상영작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를 보고 어떻게 여성영화제에서 그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느냐고 문제제기를 한 이가 있는가 하면, 그 영화가
제일 인상적이었다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을 둘러싼 엄청난 정치투쟁의 장이었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지속
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영화제의 정체성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과 투쟁은 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인 동시에 특권이었다. 거기에는 모델이
나 원형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가능성의 영역이었다. 어느 회에는 영화제를 진행할 기금이 마련되지
않아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동분서주했지만, 여전히 집행위원들과 프로그래머들은 돈에 상관없이 여성(주의) 영화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 스태프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프로그래머들이 선정한 영화가 여성주의적인가 아닌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겨냥하고 있는 관객들이 영화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들을 만족시킬 수준의 영화인가 아닌가를 가지고 토론하고, 싸우고, 기분 상해하고
는 또 서로를 설득하곤 했었다.

5회까지 영화제가 열렸던 대학로의 동숭 아트센터라는 공간 역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성장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이었다. 당시 그 앞마당에서는 누가 영화제에 왔는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사람들은 거기에 앉거나 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쳐다봤고, 또 여러 번 마주치면 서로 눈인사를 하곤 했다. 초기 몇 년간 우리는 그 마당에서 영화제 내외부의 고정 멤버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제를 기획할 때 우리는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구상해야하는지를 상상할 수 있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구체적인 관
객들에 대해 눈치를 보고 그들의 반응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여성장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주체는 관객이었다. 그들은 영화학도들이었고,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었
고, 여성운동, 문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영화를 즐기며 그들 통해 세계를 읽고 경험하는 여성영화 팬들이었다. 서울국제여성
영화제
는 이들을 관객으로 후원자로 호명해냈다. 나의 대학원생들 역시 서울국제여성여화제의 광팬들이었고, 영화제에서 맛본 즐거움과 쾌락을 여성운동이나 여성학을 지속할 에너지로 만들어왔다. 한국 땅에서의 여성의 삶이 씁쓸하더라도 4월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그들에게 여성으로 살고자 하는 문화적 판타지의 시공간을 제공했다. 어떤 이들은 영화제에서 본 영화로 다음 영화제까지의 일 년을 사는 에너지를 얻는다고도 말했다. 이들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여하는 영화들을 좋아했고, 대단한 여성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여성들과 한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소구해내는 상상적 공동체로서의 ‘여성’과 연대하는 체험을 했다.

공간을 초월하여 그리고 다양한 차이들을 넘어서서 ‘여성’으로 영화제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다른 사회체에 속하는 자아확장 경험이 되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탈주의 경험이었고,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추진위원장인 윤석남 식으로 말하면) 자아가 ‘늘어나는’ 경험, 즉 임파우어먼트 경험이었다. 바로 이러한 체험들이 초창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든든한 관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또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한국의 여성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그리고 영화보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해 주었다. 서울국제여성
화제가 아니었다면 만나볼 수 없는 페미니스트 영화들이 한국에서 상영되었고, 많은 논쟁적인 감독들과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게다
가 관객들은 감독에 대해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는데, 유명한 감독 뿐 아니라 작은 영화를 만든 자신들과 아주 비슷한 여성들 역시
감독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화제작에 접근하는 길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학 교과서보다 더 명확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동시에 아주 모호한 사고를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형식실험들이 다큐멘터리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 텍스트로서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영화를 여성들의 일상으로 가져다 놓았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아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영화를 하고 싶은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부추기기도 했다. 또한 그들이 만든 영화를 출품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제 10회의 경험 위에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미숙함을 벗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주체들이
경합하면서 만들어낸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의제를 계속적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어떻게 여성문화 운동의

장으로, 여성들이 탈주를 가능케 하는 여성장으로 지속시켜나갈 수가 있을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여성’이라는 기표가 불러내는 복수
의 주체들을 어떻게 제휴시킬까?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대한 도덕적 지지만이 아니라
기꺼이 재정적으로 함께 영화제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앞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다루어져야 할 의제들이다.


이제 12년을 지탱해왔던 틀은 앞으로 오는 새로운 10년 앞에서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 김은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