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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파국과 더불어 래디칼 하게 살아가기_페미니즘 영화 비평



현재는 재난, 파국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다.
후쿠시마의 재앙적 상황, 기후 대재앙, 신자유주의 시대 99대 1의 위태로운 생존과 글로벌한 저항. 중공업 여성 노동자, 김진숙 위원의 트위터를 주 매체로 했던 투쟁은 절절하고 시사적이다.  자스민 혁명 이후 아랍의 봄과 대중들과 여배우가 만들어내는 투쟁전선.
이렇듯 기존의 계급과 젠더, 인종, 민족의 문제는 재앙적 신자본주의의 운용에서 드러난 99대 1의 적대적 배열 속에서 새로운 서열과 위계 그리고 전복을 모색하고 있다. 여성영화비평도 이 99퍼센트의 사람들의 세상, 재앙과 파란, 적대의 충격 몽타주 안에서 발본적으로 사유되어야 할 때다. 여성영화비평으로 향하는 사유가 더욱 힘겨운 이유는 폭력과 충격이 일상이 되고 재현은 과잉을 넘어 그에 조응하는 현실을 빠르게 생성시키고 있으며, 우리는 재현과 현실의 ‘과속 스캔들’에 휘청거리며 나아가거나 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시작이다”

영화이론, 비평으로 제일 먼저 읽었던 논문 중의 하나가 트레사 드 로레티스의 “ 거울을 통해”이다. 대학교 3학년 때, 김동원 선배(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평론가 정성일 선배 등과 함께한 세미나에서였고 내가 발제자였다. 어려웠지만 영화를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으로 통과하는 그 이론의 절묘한 형세에 후크 된 것 같다. 이후 로라 멀비, 클레어 존스턴의 명철하고 복잡하면서도 실천적 글들에 감명 받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함께 만들던 당시 클레어 존스턴의 에딘버러국제영화제에서의 여성영화제 선언과 프로그래밍을  귀감으로 삼았다.

68 이후의 열기 속에서 성장해온 페미니즘 이론은 내겐 늘 당대의 문제이고, 현재였고, 미래 시제였다.
요 몇 년 사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이런 서구의 페미니즘 영화이론을 고전 영화이론이라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기술하는 것을 듣고 페미니즘 영화이론이 역사의 한 장으로 기억되며 새로운 지식구성을 기다리는 역장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쯤 한권의 여성영화이론, 비평 앤솔로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고 2010년 그 책이 출간되었다.

<아카이브를 다시 찾다 Reclaiming the archive: 페미니즘과 영화사>라는 제목으로  빅키 캘라한(Vicki Callahan)이 편집을 맡았다. 정신분석을 비판적으로 도입, 영미 페미니즘 이론을 열었던 로라 멀비를 비롯, 영화해석의 수용사 및 미디어 수용사 등을 다루었던 재닛 스테이커, <여성 영화>의 저자 아네트 쿤, <스펙터클한 몸들: 젠더, 장르, 액션 영화>의 저자 이본느 태스커 등과 같은 파이오니어들과 그 이후 세대 페미니스트 영화 연구자들인 패트리샤 화이트, 아야코 사이토, 그리고 나도 참여했다.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장이 “외부를 응시하며: 페미니스트 수용사의 스펙트럼”  2장이 “ 작가주의를 재기술하기” 3장이 “초창기 영화를 발굴하며” 그리고 4장이 “(포스트) 페미니스트 미래를 구성하며”이다. 내 글은 4장에 실렸고 인종과 디지털 매체를 다루는 블랙 사이버 페미니스트 앤나 에베레트의 글도 함께 실렸다. 4장 (포스트)페미니스트의 미래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퍼블릭 스피어다. 난 이것을 트랜스 시네마의 영역, 여성장이라고 이름 붙인 적이 있었다.

이런 방향과 함께 주목할 만한 것은 테레사 드 로레티스, 로라 멀비 등이 프로이드의 죽음의 드라이브를 가져와 테크놀로지화 된 문명 이해와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젠더의 테크놀로지와 성차의 정치학이라는 출발점의 문제틀이 포스트 포디즘 시대, 테크놀로지와 문명, 주체의 예상치 못했던 연결로 전화해 나가는 것이다. 이들이 모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죽음 충동으로 내닫고 있는 문명이며, 무빙 이미지, 스틸 이미지가 시사하는 문명의 원초경에서 발원한 운동이다. 여성 영화/문화이론가들의 이러한 전화가 흥미롭다.    

그러니 "다시 시작이다"


-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