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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나는 바란다. 변하기를, 변치 말기를"


"나는 바란다. 변하기를, 변치 말기를"

 

나는 여성영화제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관객은 아니다. 처음 영화제를 찾았던 게 2008 10회 때였으니까. 그래서 관객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길 해보겠다 나선 것이 어불성설 같지만, 개인적인 변화와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여성영화제와의 인연은 2008년에 시작됐다. 그 이후로 나의 많은 것이, 혹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진 :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열광열무 공연)

2008년에 인터뷰했던 한 관객의 말이 기억난다. 그녀는 이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일종의 운동의 참여라 생각하며 온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좀 난감했던 것 같다. 난 그저 영화가 좋으니까, 더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그녀의 말의 깊이를 온전히 가늠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겠지만. 여하튼 왜 영화를 보는 게 운동의 일환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되자, 주변의 관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아니라 타인부터 보는 이 못된 버릇) 저 이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또 그이는 왜 이 영화를 보러 왔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실은, 별로 이끌어냈던 건 없었다. 여타의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과 구별점을 찾기도 어려웠다. (단체 관람객이 많다는 점 정도?)

 

그때 나는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를 굉장히 좋아했으나 왜 좋은지는 잘 모르던, 그저 영화를 무진장 좋아하긴 했지만 딱히 질문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아니, ‘질문이 없었던 게 아니라, 뭐가 질문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질문이 바르면 대답도 바르다는 말이 있던가? 여성영화제 상영작들이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건 바른 질문 때문이었다. 기존의 한국 상업영화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질문을 던지고 있었으니까. 영화를 볼 때 많은 영화들(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마도 몰라서 질문하지 못했거나 질문하기 힘들어서 회피했던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조금씩 품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내가 늘 갖고 있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콕 집어 알려준 게 바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언지 밝히기엔 이 지면이 적절하진 않은 것 같다. 언젠가 그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구체화된 계기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였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여타 상업영화나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엔 응당, ‘이 영화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해 일방적이고 일반적인 해설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관객과의 대화가 주요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용되곤 하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해설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대화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여성영화제에 대한 내 인식의 폭을 넓혀주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관객들의 반응과 마주하는 순간도 이때였다. 그 뒤로도 종종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찾았다. 최근 들어 일방적으로 해설을 요구하는 관객들을 목도하기도 했는데, 홀로 앉은 남성 관객이 그런 질문을 하던 때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내 주변에는 왜 우리가 저들을 환대해야 하는 것이냐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게 아마 재작년의 일이었으니, 그 이전엔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여하튼 그 후로 영화를 보는 관점이랄까, 그런 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단 걸 느꼈다. 여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문제되지 않던 것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질문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영화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레 세상에 대한 질문으로 번져나갔다. 더 가관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과 부딪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사소한 술자리 대화조차 불편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변하지 않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나만 힘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여전히) 상처를 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진 : 제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마더> GV)

또 한편으로 기억나는 때는 2010, 클레르 드니 감독의 <백인의 것> 상영 이후였다. 평소 아트레온 근처에선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서울의 시네필들이 총출동한 듯한 진풍경이 연출됐었다. <마더>가 상영되던 날의 분위기도 그랬다. 하지만 이들과 <다가올 그날>이 어떤 방식으로 가족의 분리를 보여주는 지에 대해 대화를 나눠볼 수는 없었다. 왜냐면 영화제 이후 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마주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포털 사이트에서 이 영화와 관련해 몇 개의 포스트가 검색되는지 세어봐도 체감할 수 있다.) 보고 나면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데, 라며 혼자 아쉬워했던 기억. 혹은, <파로에서 온 내 친구>가 얼마나 멋진 성장영화인지 대화를 나눠볼 기회도 별로 없었던 기억까지도! 이런 의견을 트위터에 남겼을 때 리트윗을 걸었던 몇몇 아이디를 나는 기억한다.

 

올해로 14. 책장 한 켠에는 여성영화제를 열렬히 응원하던 기사가 실렸던 <키노>가 누렇게 바랜 채로 꽂혀 있다. 유난히 여성감독들의 데뷔작이 눈에 띄는 현실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때의 상영작들과 지금의 상영작들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때의 관객들과 지금의 관객들은 또 얼마나 다를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영화 한 편 달랑 보고 지나쳤던 내가 봉준호 감독에게 <마더>에서 느껴지는 모성혐오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영화가, 혹은 영화제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올해는 또 어떤 관객들이 찾아올지 나도 궁금하다.



- 김현수 SBS 접속!무비월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