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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5회(2013) 영화제

10대가 이야기하는 그 작품 :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10대가 이야기하는 그 작품 :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이틴즈 리뷰

* 아래 글에는 해당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라 폴리 | 캐나다 | 2012 | 108' | 35mm | color/b&w | 다큐멘터리



아마 우리가 우리들의 엄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하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과 모성애에 초점을 둔 다큐멘터리가 나올 것이다. 우리들에게 엄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인식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감독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엄마’로서의 삶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자신의 엄마이자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이기도 했던 배우 다이앤의 삶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감독은 가족들에게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한다. 다큐는 감독 자신과 가족들이 기억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는 점점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과 가족, 지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각기 다른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감독은 각기 다른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하나씩 맞춰가며 하나의 이야기로 형성해나간다. 

이 다큐에서 엄마 다이앤의 기억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감독은 엄마 다이앤의 스캔들과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감독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이 엄마의 불륜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적 이였다. 그들은 엄마를 비난하지 않고 엄마가 불륜을 통해 엄마라는 이름이 아닌 한 여성으로 사랑 받을 수 있어 행복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절대 용인되지 않을 불륜이, 엄마의 행복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는 태도가 내게는 살짝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곧 그들이 다이앤을 엄마로서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삶 모두를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사실 감독의 개인적인 일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엄마’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바라 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글 : 아이틴즈 이송하



이번에 아이틴즈 활동을 통해 보게 된 다큐들에서 딱 내 생각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다큐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자연다큐감독이 꿈이지만, 드라마틱하면서도 리얼한 나만의 새로운 다큐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영화와 다큐를 같이 공부하고 있었다. 

내가 본 지금까지의 다큐멘터리는 거의 항상 사회적인 문제를 소재로 끌고 와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리거나, 시대를 기록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역할을 해왔었는데, 이 다큐는 돌아가신 자신의 엄마의 인생을 소재로 끌고 와서, 지극히 가족적인 이야기를 통해 엄마, 혹은 여성의 현재 사회적 위치나 권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다큐를 보고 나서 잠시 생각해보니 나도 여성이면서, 지금까지 나의 권리인 여성인권에 대해서 한 번 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권리를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줄까? 자신의 권리를 찾고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자신의 권리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동안 내가 여성인권에 대해서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웠다. 

또, 이 다큐는 나에게 엄마를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그 곳의 엄마들의 역할과 의무는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자칫 간과하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엄마의 희생을 이 다큐에서 정확히 꼬집어 주고 있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뭇 사람들은 이 다큐를 보고 자연스레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의 희생에 대해 감사하고 엄마에게 죄송스런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 다큐속의 엄마는 어떻게 보면 그냥 남편을 둔 채 다른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던 여자로 보이기 쉬운데도, 그 엄마의 가족들은 엄마를 불륜을 저지른 나쁜 엄마로 보지 않고 엄마가 여자로서, 사랑받으면서 살다가 가셨다는 사실에 행복해 한다.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사랑받으면서 사셨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저 딸이었다면 나도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우리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의 엄마의 삶은 어땠는지, 그냥 한 여자로서의 삶으로도 지금도 만족하면서 사시고 계셨는지, 궁금해져서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엄마가 어떤 삶을 살고 계셨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시는지 그 답은 잘 모르겠다. 아직 그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우리 엄마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며 예쁘게 귀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1인당 6시간이 넘는 인터뷰에, 재연 상황들에, 엄마가 나온 옛날 비디오를 인용하는 등, 다큐적인 부분과 극영화적인 부분까지, 편집되지 않은 정말 다양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소스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그 모든 자료들을 하나하나 다 보고 자칫 주관적인 가족사 회고록처럼 될 수 있었던 다큐를 관객들에게 현재의 여성인권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폭 넓은 다큐로 만드신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무거워 질 수도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재치 있게 풀어 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다큐였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다른 다큐들처럼 카메라를 숨기면서 사실성을 주려고 하지도 않고, 처음에 내레이션을 녹음하는 과정부터, 재연상황을 필름카메라로 찍고 있는 장면까지, 지금 보고 내가 있는 것이, 다큐라고 대놓고 보여주는데도 다큐에 완전히 몰입이 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힘 있는 다큐를 만드신 감독님이 존경스러워졌다. 

다큐감독이 꿈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존경하는 다큐감독은 따로 없어서 누군가 어떤 감독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항상 대답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젠 누구라도 나에게 좋아하는 다큐 감독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사라 폴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 아이틴즈 배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