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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2015 SIWFF 미리보기] 아이다 루피노 회고전: 누아르 퀸, 금기를 찍다

아이다 루피노(1914-1995) - 누아르 퀸, 금기를 찍다 

Ida Lupino – Noir Queen Crosses Taboos in Hollywood


 

 - 최초의 강간복수극을 찍은 감독

 - 필름 누아르를 만든 최초의 여성감독

 - 클래식 할리우드 시기의 거의 유일한 여성감독 

 - 금기시 되던 소재를 소규모 자본의 장르 영화로 구현해 냈던 ‘B’ 무비의 여왕

 - 여성의 문제를 냉철한 현실의 관점에서 선정적이지 않게 풀어낸 페미니스트 영화의 선구자 

 - 카메라 앞에선 지적이고 아름다운 팜므 파탈(femme fatale), 

   카메라 뒤에선 스스로를 ‘어머니(Mother)’라 부르며 거침없이 영화 현장을 지휘했던 팜므 오떼르(femme auteur)

 - 배우,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 텔레비전 시리즈 연출자까지 다재다능했던 예술가



선구적인 길을 걸어간 전설적인 아이다 루피노 감독의 영화를 국내 최초로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공개합니다 !

올해 회고전에서는 1940-60년대 할리우드에서 도로시 아즈너와 더불어 거의 유일한 여성감독으로 활동했던 아이다 루피노의 영화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루피노는 메이저 스튜디오에 소속된 할리우드의 스타였다. 영국에서 태어나 배우 수업을 받았던 루피노는 1940년대 할리우드로 건너 와 48년 동안 59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7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루피노는 <그들은 밤에 달린다 They Drive by Night>(라울 월시, 1940), <하이 시에라 High Sierra>(라울 월시, 1941), <어둠 속에서 On Dangerous Ground>(니콜라스 레이, 1951), <빅 나이프 The Big Knife>(로버트 알드리치, 1955), <도시가 잠든 사이 While the City Sleeps>(프리츠 랑, 1956)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루피노는 특히 필름 느와르에서 지적이고 자신감 있는 캐릭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녀는 카메라 앞의 팜므 파탈 역할에만 머물러 있기를 거부했다. 워너브라더스 같은 거대 회사에 소속되어 있던 루피노는 역할이나 캐스팅과 관련해서도 영화사가 제안하는 역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거절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는 때가 많았다. 소속사와 사이가 껄끄러워진 루피노는 한동안 연기를 쉬면서 연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촬영현장에서도 늘 연출에 관심이 많았던 루피노는 1949년 워너브라더스를 나와 당시 남편 콜리어 영화 함께 직접 필름메이커스(the Filmmakers, 1949-1966)라는 독립영화사를 세웠다. 이 영화사에서 루피노는 제작자뿐만 아니라 배우, 각본가. 감독의 역할을 수행했다. 루피노는 여기서 12편을 제작하고. 1편을 공동제작 했으며, 7편을 감독 혹은 공동감독 했다. 이중 5편은 공동으로 각본을 썼으며, 3편에는 직접 출연도 했다.

  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은 의도치 않게 맡게 되었다. 루피노와 남편 콜리어 영이 공동으로 각본을 쓴 <원치 않은 임신 Not Wanted>(1949)의 본래 감독은 엘머 클리프튼(Elmer Clifton)이었다. 그러나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클리프튼이 심장병으로 쓰러지면서 루피노가 대신해서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감독 크레딧에는 루피노가 아닌 클리프튼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삶과 사랑을 찾아 도시로 나간 한 적극적인 젊은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고 시설에서 아이를 낳은 뒤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그린다. 이 영화에서 이후 루피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장치들이 대거 등장한다. 느와르 특유의 독백은 여성 주인공과 세계 간의 간극 혹은 갈등을 가시화한다. 한편 회상구조는 거리에서 유모차에 있던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착각해 데리고 가다가 유괴혐의로 감옥에 갇힌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루피노는 첫 영화 이후 당시에는 금기시되었던 여성 관련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이슈의 영화화를 필름메이커스만의 특화된 전문분야로 만든다. 혼외임신, 강간, 중혼,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등이 영화의 소재가 된다. 여성감독이 극히 드문 할리우드에서 이와 같은 이슈를 다룬다는 것은 상당한 금기를 깨는 일이었다. 또한 이러한 금기를 다루는 경우 훌륭한 홍보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대형 영화사들에 맞서 소규모의 독립영화사가 취할 수 있는 니치 마켓을 찾은 것이기도 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 작품이 세 번째 연출 작품인 <아웃레이지 Outrage>(1950)다. <아웃레이지>는 보통 최초의 강간복수극으로 평가된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헤이즈 코드(the Hays Code)라는 영화제작규범(Production Code)이 있었다. 엄격한 자체검열제도인 제작 규범은 범죄, 마약 복용, 음주, 강간, 간통, 불륜관계 등은 12개의 금지 항목을 영화에서 다루지 못하게 했으며, 종교의식이나 성조기는 존엄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1948년 '파라마운트 반 트러스트' 판결로 배급업자들이 MPPDA에서 분리, 독립하게 되면서 협회의 힘이 약해져 더 이상 영화자체검열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헤이즈 코드는 규제의 힘이 점점 약해지다 1968년부터는 검열 대신 권고의 형식을 지닌 심의등급제도(Rating System)로 대체되게 되었다. <아웃레이지>(1950)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영화였다. <아웃레이지>(1950)는 할리우드에서 강간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영화였다(강간을 다룬 첫 번째 영화는 <조니 벨린다>[장 네굴레스코, 1948]이다). 


 아직 검열제도의 영향력이 살아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웃레이지>는 ‘강간’의 직접적인 묘사는 물론 그 단어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모두 암시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간 이후에 일어난 사건과 상황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영화는 강간을 당한 이후 여성의 심리와 법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평소처럼 직장에도 나가고 완벽하다고 믿었던 약혼자와의 관계도 이어나가려고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주인공이 일상을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든다. 친절한 호의도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가출한 주인공은 오렌지 농장에서 새 삶을 살아가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다. 실제 강간범에 대한 복수가 아닌 간접적인 복수이긴 하지만, <아웃레이지>의 시도는 의의가 있다. <아웃레이지>는 강간을 당한 후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에게 트라우마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법정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와 정당방위의 문제까지 주제를 확장시킨다. 이 영화는 루피노 특유의 부드러운 카메라, 느와르적인 그림자 연출, 외부의 세계와 드잡이하고 갈등하는 여주인공의 주관적인 시청각 표현으로 점철되며 작가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선정적일 수도 있는 소재는 여성의 관점에서 매우 현실적으로 다뤄지면서 선정적이고 감정적으로 과장된 내러티브와는 거리를 취한다.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이지만 선정적지 않게 다루는 루피노의 작가적 특징은 남성 버디물 <히치하이커 The Hitch-Hike>(1953)나 <중혼 The Bigamist>(1953)에서도 빛을 발한다. 여성감독이 만든 최초의 누아르 영화로 알려진 <히치하이커>는 루피노의 영화 중 유일하게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며(오프닝의 여자의 비명소리를 제외하고는) 최고 흥행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여타의 고전 누아르 영화와 달리 남성을 고독한 아웃사이더로 낭만화하거나 영웅화하지 않는다. 참전용사인 두 친구는 전쟁 후 처음으로 가족을 남겨두고 남자들끼리만 낚시여행을 간다. 도중 히치하이킹을 하는 한 낯선 남자를 태우는데, 곧 그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세 남자의 남성성은 그것이 연쇄살인범이든 두 친구든 그다지 강한 남성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한계 내에서 루피노는 최대한의 차가운 서스펜스를 이끌어 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 없이 유지되는 톤과 극적이거나 영웅적인 사건 없이 끝나는 결말은 오히려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겨우 총 하나로 버티는 연쇄살인범이나 영웅적 행위를 시도할 때마다 어이없이 발각되거나 실패하는 두 친구는 남성성에 대한 사실적이고 예리한 시선을 담아낸다. 전후 남성성에 대한 향수나 상실감, 그리고 과장 없는 시선은 여성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히치하이커>는 여성 감독이 남성성에 대한 누아르를 만들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 모범적 답안이다.  

 <중혼>은 조안 폰테인이 성공한 사업가인 첫 번째 부인으로, 아이다 루피노가 젊은 웨이트리스인 두 번째 부인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당시 루피노의 전 남편이자 제작자인 콜리어 영이 조안 포테인과 재혼한 상태에서 이 영화를 찍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조안 폰테인은 그 전부터 루피노를 존경했고, 같이 영화를 찍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쿨’한 상태에서 이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 역시 회상과 주관적 보이스오버를 사용하고 입양기관의 조사원이 탐정으로 출연하는 등 느와르적인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른 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회상과 독백은 이중 결혼을 감행해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남자 주인공에게 부여된다. 그럼으로써 이 남자를 악인으로 몰기보다는 그의 상황을 공감하도록 만든다. 그렇다고 그를 대단한 로맨티스트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우유부단하고 취약한 남성성의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캐릭터와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는 책임을 져보려 했을 뿐이다. 이 남자가 이렇게 된 데에는 두 여성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것을 영화는 분명히 밝혀준다. 중혼은 그 남자의 캐릭터와 상황에 기인할 뿐이다. 조안 폰테인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능력 있고, 가능한 가족을 지키려 입양까지 결심한 좋은 여자였다. 아이다 루피노 역시 임신을 했지만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아이를 키워보려고 노력한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어느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다. 중혼의 사실이 드러나고 두 여자가 처음으로 조우하는 법정 장면에서 둘은 그래서 전혀 극적인 감정을 드러내지도 악다구니를 퍼붓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남자에 대한 집착과 소유권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에 대한 약간의 연민만이 법정을 맴돌 뿐이다.  

 <두려움 없이 Never Fear>(1949)와 <거칠게, 빠르게, 아름답게 Hard, Fast and Beautiful>(1951)는 멜로드라마와 누아르를 혼합한 멜로누아르(melonoir) 혹은 홈 누아르(home noir)의 형식을 보여준다. 전자가 마비증세가 오는 바람에 행복의 절정의 순간에 댄서의 길과 약혼자를 포기하게 된 젊은 여성의 진정한 독립과 자립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스포츠 영화인 후자는 테니스 선수인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녀관계,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든 스포츠 세계(특히 당시 미국의 여성 아마추어 스포츠인의 경우 온갖 후원 기업을 홍보하는 상품이 되었는데, 이것이 상당한 사회문제로 야기되었다), 야심에 가득 찬 모성, 경쟁과 성공의 의미 등 당시로는 드문 소재들을 버무려 예리한 성찰을 보여준다. 멜로드라마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멜로드라마의 과장된 감정들은 배제한 채 극단적인 대비의 명암을 사용하는 누아르의 미장센을 빌어 와 차가운 형식미 속에 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그들의 상황과 감정을 드러내는 루피노만의 역량을 보여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과장되거나 남성적 시각에서 본 여성이 아니라 실제 여성의 현실을 인식을 가능한 반영하려한 루피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출작품인 <천사들의 장난 The Trouble with Angels>(1966)은 루피노의 영화 연출작 중 유일한 컬러 영화다. 엄격한 수녀원장과 독특한 캐릭터들의 수녀들, 그리고 말썽장이 두 소녀까지, 수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갖춘 영화다. 로잘린드 러셀이 엄격하지만 지혜로운 원장수녀로 디스니 영화의 스타 헤일리 밀스 등이 말썽꾸러기로 출연한다. 늘 말썽만 부렸던 두 소녀는 성장해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한다. 우정과 성장, 소녀들이 자신의 롤 모델을 찾는 과정을 사랑스럽게 그린 영화다.  

 루피노는 1960년대 이후 배우 경력을 이어나가면서 텔레비전 제작과 연출에 집중했다. 텔레비전은 루피노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B급 장르에 일가견이 있는 루피노는 특히 미국의 전설적인 시리즈 <트와일라잇 존 The Twilight Zone>, <알프레드 히치콕 프레즌트 Alfred Hitchcock Presents>, <질리언의 섬 Gilligan's Island> 등에 게스트 디렉터로 참여해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이런 행보는 당시 영화를 위협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던 텔레비전 산업의 부상과 텔레비전의 더 많은 기회 제공의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또한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 감독들이 보다 더 남성지배적이고 유리천장이 높은 영화계를 떠나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존재하거나 접근하기 쉬운 중소규모의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는 텔레비전 영화나 쇼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회고전에서는 감독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첫 작품 <원치 않은 임신>(1949)을 제외한 루피노의 모든 감독 작품을 상영한다. 회고전을 통해 말로만 듣던 루피노의 영화세계를 확인하고, 그녀가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루피노의 경력과 행보는 여성의 관점과 소재에 집중하면서 상업적인 장르 영화라는 틀(특히 기존에는 남성적인 장르로 여겨진 스릴러나 누아르 혹은 판타지) 내에서 작업하는 모든 여성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은 낯선 아이다 루피노의 영화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회고전 부대행사로 전문가 강연과 역사적, 산업적, 미학적 맥락 속에서 루피노의 작품들을 탐구한 단행본을 준비했다. 『호기심의 찬장: 여성, 기억 그리고 영화사 Cupboards of Curiosity: Women, Recollection and Film History』의 저자이며 아이다 루피노 전문가인 아멜리 헤이스티 애머스트대 영화과 교수가 직접 루피노의 영화 세계에 대해 소개하고 일찍이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을 구현한 여성영화의 선구자로서 조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많은 관객들이 온갖 금기를 깬 누아르 퀸, 아이다 루피노의 세계에 흠뻑 빠져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글: 조혜영 /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