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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2015 SIWFF 상영작 미리보기] 스웨덴 여성영화 특별전


이상향의 아이콘 스웨덴, 그곳에서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Feminist Initiative! 등 2010년 이후 제작된 영화 상영

스웨덴영화진흥원 대표 안나 세르네르 키노트 스피커로 내한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다가오는 5월, 지역 특별전의 국가로 스웨덴을 선택했다. 많은 영화제에서 지역 특별전은 한 지역의 특징을 균질하게 규정하고, 세계영화계에 드러나지 않았던 지역을 발굴하고 소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올해 지역 특별전으로 스웨덴이라는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이와는 다르다. 스웨덴의 영화산업의 규모는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세계영화계에서 숨겨져 있던 국가는 아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지역 특별전으로 스웨덴을 선택한 이유는 현재 스웨덴영화계가 추진하고 있는 영화산업에서의 성평등 정책과 그 성과를 소개하고, 이 사안이 시급함을 국내에도 알리기 위해서다. 더불어, 스웨덴 여성감독들의 섬세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성장영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특별전은 스웨덴 대사관과 스웨덴영화진흥원(Swedish Film Institute)의 든든한 후원으로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스웨덴은 이제 거의 유토피아의 아이콘이 된 것 같다. 국가와 정부가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복지는 어느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할지, 민주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성평등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등 선진국의 기준을 논할 때면 늘 언급되는 국가 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방송 시사 다큐멘터리에서 대안을 제시할 해외사례를 보여줄 때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단골 소재가 된다. 심지어 한국 정치인들이 외치는 정책의 내용만을 볼 때(즉, 실제 실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언젠가는 획득해야할 지향점처럼 상정된다. 그 중에서도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 및 문화는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스웨덴 여성영화 특별전에서 상영될 영화들. 왼쪽부터 Feminist Initiative!, Eat, Sleep, Die, 2 .

2015년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이렇게 종종 우리의 이상향처럼 종종 언급되곤 하는 스웨덴에서 어떤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스웨덴 여성영화 특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스웨덴 여성영화 특별전”은 주로 2010년 이후 제작된 여성감독들의 영화를 통해 스웨덴 여성 영화의 현재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스웨덴 사회가 정말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룩했는지, 사회 내 다른 갈등은 없는지, 수치로 나타난 현상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룩했는지,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어떤 삶들을 살아가고 있는지 등에 대한 내부의 시선과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특별전에 상영되는 작품 중 스웨덴에서 페미니스트 정당의 창당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Feminist Initiative! (2015), 씩씩하고 매력적인 노동계급 소녀를 통해 스웨덴의 경제악화로 인한 실업과 이주를 다룬 장편 Eat, Sleep, Die (2011), 청년 취업과 거주의 문제를 코믹하게 다룬 중편 (2014) 등은 스웨덴 사회를 엿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한편 최근 스웨덴 여성영화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성장영화의 강세다. 현재 스웨덴영화진흥원(Swedish Film Institute)의 전폭적인 성평등 지원정책으로 재능있는 신인 여성감독들이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 젊은 여성감독들이 완성도 높은 흥미로운 성장영화들을 다수 내놓고 있다. 올해 2월에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스웨덴 영화들이 모두 여성감독의 작품이었는데, 이 중 성장영화를 상영하는 제너레이션 섹션에서 스웨덴영화 두 편이 청소년과 아동 부문의 최고작품상인 크리스탈 베어를 수상했다(My Skinny Sister, Flocking). 스웨덴 여성감독들의 성장영화의 특징은 아이들을 훈육대상이나 미성장한 존재가 아닌 하나의 행동 주체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게는 충분히 자신의 정체성, 욕망, 현실과 드잡이하며 방황할 여지가 주어진다. 섹슈얼리티, 노동, 경력, 감정, 관계의 모든 측면에서 소녀들은 이미 결정되고, 분류되고, 명명화된 어떤 체계에 갇혀있기 보다는 그 체계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들과 겨루거나 혹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복잡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에 따라 영화는 감정적으로 복잡하고, 세련되며, 섬세한 터치를 보여준다. “스웨덴 여성영화 특별전”은 이렇게 새롭게 부상한 여성감독들의 소녀성장영화들을 집중해서 보여줄 예정이다.   

영화제에서 지역 특별전은 한 민족-국가, 지역의 특징을 규정하고, 세계영화계에 드러나지 않았던 지역을 발굴하고 소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올해 지역 특별전이 스웨덴이라는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조금 다르다. 스웨덴의 영화산업의 규모는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세계영화계에서 숨겨져 있던 국가는 아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지역 특별전으로 스웨덴을 선택한 이유는 스웨덴영화계가 추진하고 있는 영화산업에서의 성평등 정책과 그 성과를 소개하고 그로부터 이 사안이 시급함을 국내에도 알리기 위해서다. 스웨덴영화진흥원은 2012년 스웨덴 영화산업이 다른 분야에 비해 젠더적으로 불평등한 구조를 갖고 있다며, 2015년까지 영화산업에서 성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결과 2012년 약 30%에 불과하던 여성감독의 비율은 2015년 현재 거의 동수에 다다르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스웨덴영화제작의 거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스웨덴영화진흥원이 성별 비율에 있어 거의 동수에 가깝게 지원 선정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 영화를 제작하는 여성감독의 우수작품을 선정해 제작비 전체를 지원하는 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의 성별 비율에 대한 상세한 통계와 보고서를 통한 끊임없는 모니터링은 문화산업의 성평등 정책추진에 논리적 근거와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현재 스웨덴 영화계의 눈에 띄는 성과는 일반적인 영화인들의 편견(“재능있는 여성감독이 얼마 없다. 여성 감독은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남성들만큼 많지 않다. 남성과 비교해 여성의 퍼센티지를 따지는 것은 평등과 관련이 없다.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데 관심이 없다.”)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스웨덴 여성영화인 모임 도리스(Doris) 리더 필름

이런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스웨덴여성영화인 스스로도 1999년 도리스라는 여성영화인단체를 만들어 여성주의적인 영화와 비디오 게임을 직접 제작하고, 도리스 메니페스토를 발표했다. 도리스 메니페스토는 다음과 같다. “모든 시나리오는 여성작가에 의해 쓰여야 한다. 모든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여성이어야 한다. 주요 결정을 내리는 모든 직책이 여성이어야 한다. 영화음악 역시 여성 작곡가의 것이어야 한다.” 또한 엘렌 테일레(Ellen Tejle)는 2012년부터 스웨덴의 아트하우스 극장을 중심으로 여성 캐릭터 재현의 평등 지수라고 할 수 있는 벡델 테스트를 적용한 ‘A 등급’을 부여하고 명시하는 운동을 시작해 세계영화계에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더 나아가 이 운동은 스웨덴영화진흥원 대표의 공개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들에 'A'를 부여하는 운동을 시작한 엘렌 테일레

'A'는 통과(Approved)의 A 또는 벡델 테스트를 만든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의 A를 가리킨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와 같은 스웨덴 여성영화인들의 노력이 어떻게 영화에 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도리스 제작 영화를 상영하고 그들의 활동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영화는 성평등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포럼을 열 계획이다. 또한 포럼에는 영화산업에서의 성평등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스웨덴영화진흥원(SFI)의 대표 안나 세르네르(Anna Serner)가 키노트 스피커로 발표를 할 예정이다. 이번 포럼이 한국영화산업에서의 성적 불평등 문제에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리라 기대된다.  


글: 조혜영 /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