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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한국의 여배우들

아픔 품고도 절도를 갖춘 배우, 한은진

아픔 품고도 절도를 갖춘 배우한은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4탄 한은진




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양장에 모자를 멋지게 쓰고 명동을 걸으면 남자들은 혼백이 빠져서 바라봤다는 젊은 날의 한은진을 본 일은 없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후줄근한 아낙네, 김승호의 아내 역부터이다. 

60년대 한국영화의 가장은 단연 김승호였지만 그 아내가 한은진이냐 황정순이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엄격하고 절도 있는 한은진의 내조에 비하면 황정순은 약간 변덕스럽고 정감 있는 안주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사람을 라이벌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한은진과 황정순은 누가 뽑히느냐에 따라 배역 하나를 잃게 되어있어 이건 생존에 관한 숙적이 아닐 수 없다.


1967년 여름, 나는 담양에서 <산불>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을 함께 카메라 앞에 세웠고 출연 여배우 50여 명은 드라마 상으로 양분되어 한은진 쪽은 국군, 황정순은 빨치산 가족이었다. 

이 영화는 차범석의 희곡을 영화로 옮긴 것인데, 6.25 때의 좌우대립과 전쟁, 궁핍, 불안, 성의 억압 문제가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다. 남자는 모다 국군 아니면 산사람이 되어 마을을 떠났기 때문에 여자들만이 남은 산골에 젊은 도망병이 진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물론 여기서는 드라마보다 두 베테랑 여배우의 연기 대결이 더 궁금하겠지만 도망병 신영균과 주증녀, 도금봉이 벌이는 삼각정사도 단연 화제가 되었다. 대나무 밭이 소각되어 사내는 아우성치다가 소사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황정순이 한은진을 찾아가 벌이는 싸움판은 연기의 수준을 넘어 평소의 감정이 터져 나온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 배우 한은진 ©한국영상자료원(조희문 기증)


머리채를 움켜쥔 두 사람은 맨땅 위를 구르며 서로를 공격하는데, 감독이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이 없다. 끝내는 한 움큼씩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것을 동네사람들이 떼어놓았다. 연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정의 표현이 아닌가.



그때 경무대 이승만 대통령은 여배우들의 새해 세배를 처음 받고 있었다. 김지미, 엄앵란 등이 늘어선 눈부신 미인들 앞에서 노대통령은 숨이 막혀 ‘뭐하는 사람들인가’ 물었다. 인솔자가 한국의 영화배우들입니다 했더니, ‘배우, 처음 듣는 말인데 무슨 글자를 쓰느냐’고 했다. 배우(俳優)라고 아뢰오니, ‘인(人)변에 아닐 비(非), 인(人)변에 근심 우(憂). 사람이 아니면서 사람을 근심시킨다’는 말에 놀라면서 미국에서는 뭐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다. 비서가 ‘연기자라고 부릅니다’ 대답했다. 대통령은 즉석에서 ‘배우란 말 대신 연기자라고 해라. 그러면 너희들 소원대로 국산영화에 세금을 없애주겠다’, 이것은 동석했던 한은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진부를 가릴 길은 없다. 다만 그 후 한동안 배우를 연기자라고 부른 때가 있었다. 


한은진은 신필름의 연기실장을 한 일이 있다. 그러나 직접 신인들에게 연기를 가르친 것은 아니고 최은희와의 돈독한 우정 때문에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65년 <막내딸>에서 김승호 아내로 나오는 한은진은 분장이 너무 진해서 할머니처럼 보여 영감과 나이 밸런스가 안 맞았다. 김승호는 감독 귀에 대고 ‘황정순인 바쁜가?’ 했다. 나는 ‘시나리오 안 보셨어요? 연상의 아내예요’라고 둘러댔다. ‘미안 미안’ 하고 영감은 물러섰다. 이 영화에 나오는 유주용과 태현실은 너무나 신인. 나는 한은진에게 연기 지도를 부탁해서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기도 했다. 


한은진은 다른 표현에 비해 웃는 것이 서툴다. 서툴다기 보다 소극적으로 웃는다. 무슨 사연일까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훗날 그럴 만한 이유를 찾았다. 

장애가 있는 딸을 시설에 맡기고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러 다녔다. <산불>은 황정순을 제치고 한은진이 대종상을 받았다. 그녀는 인사차 찾아와서 딸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늙어 죽으면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나는 지금도 그 딸이 잘 지내고 있는지 마음에 쓰인다.






▶ 배우 한은진 ©한국영상자료원(조희문 기증)



글: 김수용 감독


한은진은 1918~2003년, 서울 출생. 서울 효창국민학교 졸업, 19세에 동양극장 청춘좌의 연구생으로 시작,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닦고, 1939년 <무정>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영화에 데뷔, 60여 년간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



 

김수용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0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 1958년 육군 대위로 예편 후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 이후 50여년 간 109편의 영화를 만듦. 1984년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동경 국제영화제, 아세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회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민원로회의 의원 등 역임.